가짜가 진짜를 위로하는 하이퍼리얼리티에 대하여
새벽 1시 편의점 냉동고 앞. 성에가 낀 유리문 너머로 온갖 아이스크림들이 아우성치고 있지만, 나의 시선은 단 하나의 아이스크림에 고정된다.
자연계에서는 결코 자생할 수 없는 완벽한 직육면체. 눈을 시리게 만드는 저 채도 높은 형광 연두색의 '메로나'.
나는 차가운 냉기 속으로 손을 뻗어 메로나를 꺼내 든다. 얇은 비닐 포장지 너머로 전해지는 딱딱함과 차가운 감촉. 계산을 마치고 편의점을 나서자마자, 포장지를 뜯는다. 포장을 뜯으면 진짜 멜론보다 더 멜론 같은 폭력적이고 직관적인 합성착향료의 향기가 콧속 깊숙이 스며들어온다. 그리고 나무 막대기에 꽂힌 이 네모나고 초록한 물질이 내 혀에 닿는다. 아주 달고 시원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멜론을 내 돈 주고 사 먹은 지 아주 아주 오래되었다. 뭐랄까. ‘진짜’ 멜론은 두꺼운 껍질을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혼자 먹기엔 부담스러운 크기와 가격,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산 멜론이 달 것인가 밍밍할 것인가 하는, 가챠 뽑기 같은 불확실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진짜’ 멜론 대신, 주저 없이 ‘메로나’를 손에 쥐기로 했다. 혀에 닿는 순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강렬한 단맛과 부드러운 유지방의 질감.
“행복한 맛이군.”
복잡하고 피곤한 하루 끝에, 이토록 저렴하고도 확실한 맛을 보장하는 메로나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 준다. 유기농 멜론이 몸에는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메로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는 진짜의 불확실성보다 가짜의 확실성을 더 사랑하는 꽤나 자본주의적인 인간인가 보다.
재미있는 건 메로나가 사실 ‘멜론맛’이라기보다 어딘가 참외 쪽에 더 가까운 맛이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멜론을 먹으며 이렇게 말한다.
“와, 메로나 맛 난다.”
원본이 복제를 닮아가고 자연이 인공을 모방하며, 마침내 절대적이었던 기준은 전복된다.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는 아이러니. 현실보다 더 리얼한 ‘대체 현실’ 속에서, 메로나는 인공이 자연을 압도하는 이 시대의 가장 달콤한 증거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진짜’들은 지금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까?
불편하고 밍밍하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것들—진짜 관계의 피로함, 진짜 노동의 고단함, 진짜 감정의 거친 질감—은 이제 귀찮은 것으로 치부되어 쉽게 외면당한다. 그 빈자리는 메로나처럼 반듯하게 재단되고 균일하며, 즉각적인 만족을 보장하는 것들이 차지해 버렸다.
이를테면 ‘진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번거롭다. 시간을 들여 약속을 잡고, 상대를 기다리며, 미묘한 서운함의 결을 말로 풀어 설명해야 하니까. 반면 ‘대체 관계’는 놀랍도록 간편하다. 이모지 하나, 무심하게 누른 하트 하나, 심지어 '읽씹'이라는 행위조차 관계가 굴러가는 듯한 착각을 준다. 아니, 적어도 매끄러운 화면 속에서는 실제로 잘 굴러간다.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마약에 취해, 고유한 원본이 가진 그 울퉁불퉁하고 투박한 가치를 너무 헐값에 처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작된 ‘확실한 달콤함’에 완벽히 길들여진 혀는 결국, 수고롭고 ‘느리며 거친 진짜’의 맛을 영영 잊어버리고 있다.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린 끈적하고 달콤한 메로나를 닦아내며 생각한다. 이토록 쉽고 달콤한 투항의 대가는, 언젠가 우리 삶에 어떤 형식으로든 청구될 것이라고. 나는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지만, 이 현실을 잠시나마 외면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