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처음은 나쁘지 않았다. ‘카톡’은 즐거웠고 대화는 이어졌다. 카레를 좋아한다는 이야기에 일본과 인도를 오가며 우리의 대화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여권 없이 세계를 여행했다. 전공을 이야기하며 지식을 자랑했고 경험을 공유했다. 서로를 알아갔고 공감했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과 취미, 관심과 진로를 이야기하며 숨바꼭질하던 공감대를 색출하고 순탄한 출발에 운명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또 첫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그렇게 또 안 맞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잘 보이고 싶었던 나의 마음과 노력을 가볍게 무시하듯 운명은 우리 둘 사이에 숨어있던 벽을 세워 처음처럼 다시 갈라놨다. 그래서 좀처럼 풀리지 않던 대화를 풀어보려 하면 할수록 서로 간에 연결된 짧은 끈마저도 싹둑대는 가위질에 곧 잘릴 듯이 느껴졌다. 불안함은 표정을 통해 그 숨은 존재를 드러냈고 서로의 머릿속엔 실패의 예감이 작렬했다. 서로의 첫 인상이 마지막 인상이 될 것을 직감한 것이다.
카톡을 하며 나눈 자연스러운 대화와 공감이 사기라도 친 것일까. 만나서는 그 많던 말들과 웃음들이 자취를 감춘다. 그리곤 나인지 상대인지 문제의 출처를 찾으려는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첫 만남에서 드러난 서로의 이질감에 놀라 서로를 포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된다. 과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 말이 무색하다.
결국 마지막까지 우리는 서로의 이름 뒤에 붙은 '씨'자를 떼내지 못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언제부터 면전을 겁내고 작은 휴대폰에 가려진 모습에만 편해진 우리가 된 것일까. 왜 항상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좇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않는지 모르겠다. 만남의 소중함보다 컸던 만나서의 걱정이 만나기 전만을 신경 쓰게 했고, 설렘보다 컸던 불안함이 최선보다 최악만을 대비하게 한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조건에 만족해 이뤄낸 만남에서까지 마지막 퍼즐을 맞춰보는 우리는 항상 흐릿하게 남긴 인사로 아쉬움을 느끼지만, '바쁜 현대인들의 종족성' 아래서 서로의 환경 차이를 극복할 동기까지는 느끼지 않는다. 인연을 기다린 것이 아닌 찾아 나선 우리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순탄함을 둔갑한 작위적인 것들에 기대만 분식시킨 빌어먹을 설렘을 키우고 감정과 시간을 지불한다. 소개팅이야말로 가장 고약한 작위적인 만남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