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19 08:45
음. 인생의 첫 경험이라 남겨둬야겠다.
나는 어제 처음 응급실에 갔다.
화들짝 놀랄 일은 아니다.
나는 앰뷸런스에 실려간 게 아니라
내 두발로 움직여 ..
두 시간이 지나서야 의사와 대면했기 때문.
사건은 이랬다.
고등학교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저녁이나 한 끼 하던 자리였다.
커리를 먹자길래
오! 맛있겠다!
평소에 자주 먹던 음식을 시켜 먹었다.
근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귀 뒤가 간질간질
목덜미가 간질간질
등도 간질간질
하다못해 겨드랑이 뒤까지 간질간질해져서
밥을 먹는데 사람을 앞에 두고 몸을 긁는
대단한 민폐 행동을 하고 있는 거다.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낀 것은
점점 온몸이 간지러워 지던 것
그리고 부위가 모두 뜨겁던 것
카메라로 보니 빨갛던 것
마지막으로 얼굴까지 얼룩덜룩 붓기 시작한 것
뭐 .. 이만 생략하고요.
허둥지둥 친구와 헤어지고
문 닫기 직전인 약국을 찾아 들어갔는데
‘응급실에 가셔야겠어요’
응급실이요?
제가 가도 되나요?(인생에 없던 단어)
네 요새는 진료 가능해서 가서 주사 맞으셔야겠어요.
응급실 .. 그거 어디 있는 건가요.
온몸이 간지럽고 후끈한 와중에도
귀가길이 편안하길 바라며 집 근처 응급실을 찾았다.
강남역에서 지하철 20분 .. 도보 15분 ..
도착한 응급실에서
우리는 내과적 진료는 하지 않습니다.
예?ㅠㅠ
응급에 그런 게 어딨어!
나는 응급실 문밖을 서성이며 지도를 살폈다.
다른 응급실은 전부 2km 거리.
또 갔다가 거절당하면 어쩌지?
아니 그것보다 점점 지쳤다.
당장 집에 가고 싶은데 응급실에 가야 하고
응급실에 가면 또 기다려야 할 텐데 ..
(이쯤 되니 안 가고 싶었고, 안 가도 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몸이 체념하고 나아주는 기분이랄까)
망설이다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 정보를 얻기 위해.
증상을 말하면
문자로 현 위치 주변 응급실을 5-6군데 알려주시는데
그중엔 내 등 뒤에 적힌 그 응급실도 있었다.
그러니까 난,
나머지 네다섯 군데도 신뢰할 수 없는 상태인 거지.
그중에 후기가 정말 좋지 않지만
온갖 진료는 다 하는 것 같은 응급실을 찾았다.
분위기가 참 어수선하다.
접수는 새치기.
12주 진단을 받아서 12주 입원하고 싶은 나이롱 환자.
아킬레스건이 끊긴 여학생과 다투는 어머니.
초점을 잃고 실려가는 어떤 중년 아저씨.
나는 한참을 기다려 초진을 받았다.
의사들은 내 심장소리를 듣더니 수액을 놔줬다.
아마 항히 어쩌고 일 테다.
수액을 맞으니 2분 만에 피부가 진정된다.
이제 아픈 건 주삿바늘이 꽂힌 팔목뿐이었다.
잠이 쏟아져서 눈을 감고 있는데
옆 베드가 소란스러워졌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황처럼
공간의 모든 의료진이 베드를 둘러싸고 커튼을 쳤다.
수많은 기계가 베드 주위로 모여드는데
그 와중에 누군가 아주 크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았다.
누구야 응급실에서.
매너가 없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는데
의료진과 보호자의 대화 소리가 조금씩 들린다.
뇌출혈이고요.
사진에 보면 흰색이 전부 피라서..
아마 전으로 돌아가긴 어렵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돌아갈 수 없다고요?
흐느끼는 소리
코 고는 소리는 내 옆 베드에서 나던 소리였다.
뇌출혈이 심하게 오면 호흡부전의 신호로
아주 거친 코골이를 한다고 한다.
그 뒤로도 한참
옆 베드는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검사를 받았고 거세게 피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 나는 수액을 모두 맞았다.
저릿한 팔목에서 드디어 주삿바늘을 빼냈다.
3일 치 약을 처방받았는데,
증상이 호전됐다고 중간에 끊지 말고
끝까지 복용하라는 당부도 있었다.
응급실에서도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애피타이저로 먹은 단호박 수프
커리에 들어있었을지 모를 새우 페이스트?
아니면. 아니면 도저히 모르겠다.
일주일 사이 여러 약을 먹는다.
내년에 먼 길을 떠나느라 몸이 재정비를 하나.
여덟시에 증상이 시작되었는데 집에오니 자정이었다.
집에 와서는 피로에 못 이겨
깊은 잠을 자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코골이 소리가 귀에 돈다.
너무 아프지 않으셨으면 한다.
0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