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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사원 Apr 23. 2017

1000에 38짜리 원룸에는 베란다가 없었다.

회사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월세방을 얻으며 서울의 1인 가구가 되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가 38만 원이었다. 관리비와 인터넷비와 수도세가 포함되어 있었고 전기세와 가스비가 별도였다. 방과 화장실이 있는 3평 공간에 냉장고부터 세탁기, 전자레인지, 옷장, 책상, 책꽂이 등이 다 들어 있는 이른바 풀옵션 원룸이었다. 이 동네 원룸은 다 고만고만했다. 부모님은 이런 곳에서 어찌 사냐며 못 마땅해했고 요즘 들어 언론에서도 청년들의 주거 현실을 고발하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고 나에겐 소중한 독립 공간이었다.


부동산을 다니며 둘러본 원룸에는 하나같이 베란다가 없었다. 어릴 때 살던 다세대 주택에도, 조금 더 커서 살게 된 아파트에도, 천안에서 대학을 다닐 때 자취했던 방에도 베란다는 있었다. 그런데 나의 첫 독립 공간을 고를 때는 베란다를 가질 수 없었다. 베란다의 역할과 소중함은 처음으로 베란다가 없는 곳에 살면서 비로소 알게 된다.


둘 곳이 없는 탓에 새 물건을 쉽게 사지도 못했지만,
돈이 없는 탓에 가진 물건을 쉽게 버리지도 못했다.


베란다는 삶의 필수조건이었다. 베란다가 없으니 빨래 건조대를 방 안에 두어야 했다. 건조대를 펼쳐 둔 날에는 방을 드나들 때 건조대를 이리저리 밀고 다녀야 했다. 그래도 겨울에는 습도를 높여줘서 좋았지만 여름에는 말이 달랐다. 회식으로 고깃집이라도 다녀온 날에는 고기 냄새가 폴폴 밴 옷에 페브리즈만 뿌려서 방 안에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삼겹살과 페브리즈가 뒤섞인 오묘한 향기가 방을 뒤덮었다. 내가 살던 곳은 그나마 세탁기가 현관 쪽에 있었고 미닫이 문으로 방과 분리되어 있었다. 안 그랬다면 세탁기를 돌릴 때 덜덜거리는 소음과 진동을 오롯이 견뎌야 했을 것이다. 베란다는 겨울에 한기를 막아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베란다가 없으니 바깥과 맞닿은 벽에서 한겨울의 냉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람이 사는 데는 물건이 많이 필요했다. 사둬봤자 몇 번 안 쓴다고, 이사 갈 때 걸리적거린다고  줄이고 줄여도 다이소에서 사 와야 할 자질구레한 일상용품이 한가득이었다. 사계절 날씨는 우리나라의 자랑이라 배웠지만 계절 옷을 쌓아둘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만약 본가에 둔 계절 옷을 다 들고 온다면 행거라도 마련해야 할 테고 그러면 잠자리를 내줘야 할 지경이었다. 물건들 사이에 내가 끼어사는 느낌이랄까.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이라지만 대체 얼마나 더 줄여야 하는지, 아니 얼마나 더 포기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둘 곳이 없는 탓에 새 물건을 쉽게 사지도 못했지만, 돈이 없는 탓에 가진 물건을 쉽게 버리지도 못했다. 언젠가 필요해진다면 다시 사야 할 테니까. 어떤 물건은 사치스러운 자질구레였다. 다시는 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꼭 가지고 싶은 책 같은 물건. 하지만 때로는 이 자질구레가 삶을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베란다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내 위시리스트에 베란다가 들어왔다.


통돌이 세탁기도 싸구려 수납장도 작은 텃밭도 좋았다.
나의 베란다라서.


그러다 결혼 준비를 하며 신혼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전세, 매매, 주택, 아파트, 대단지, 연식, 계단식, 교통, 난방, 수도, 평수…… 따져야 할 조건은 끝이 없었다. 조금 넓다 싶으면 교통이 별로였고, 단지가 커서 좋다 싶으면 녹물이 나왔고, 조금 싸다 싶으면 중앙난방이라 마음에 걸렸다. 기왕 대출받는 거 천만 원, 아니 이천만 원, 아니 삼천만 원만 더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결국은 정해진 예산 안에서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선택해야 했고 지난한 선택의 연속 끝에 드디어 베란다를 가지게 되었다.


세로로 한 걸음, 가로로 대여섯 걸음 정도 되는 베란다를 보며 머리 속에서 세탁공간과 수납공간과 작은 텃밭을 그려나갔다. 먼저 세탁기부터 들여놓고 바로 위 상부장에 세탁용품과 청소용품을 정리해 넣었다. 이제 맞은편 벽 전체를 수납공간으로 만들어 일상용품을 깔끔하게 넣어둘 차례였다. 그런데 머리 속 그림에는 없던 요소가 튀어나와 계획을 방해했다. 바로 비상용 경량칸막이였다.


거실과 방 하나가 있는 12평짜리 집에 작은 옷방과 작은 서재와 작은 침실을 마련했더니 일상의 자질구레를 편하게 둘 곳은 베란다뿐이었다. 수납장을 벽 앞에 둘 수 없다면 베란다 창문을 따라 가로로 두어야겠다고 잠시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베란다 채광이 너무 아까웠다. 창문이 달랑 하나 달린 월세방에서 이사와 보니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큼지막한 햇빛이 얼마나 좋던지, 주말이면 거실 바닥에서 햇빛을 따라다니며 일광욕을 하던 때였다.


벽 가운데 부분을 손가락을 톡톡 쳐보니 콘크리트 벽과는 다르게 얇은 두께감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화재 같은 비상시에 이 벽을 발로 뻥 차고 이웃집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지금은 나의 베란다 그림을 망치는 방해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고민 끝에 일단 자취할 때 쓰던 싸구려 책꽂이를 벽 앞에 두고 일상의 자질구레를 올려두었다. 뒷부분이 뚫려있는 가벼운 책꽂이니 옆 집이든 우리 집이든 비상시에 벽을 뚫을 수는 있겠지 하며. 그런데 옆 집도 이 벽 앞을 비워놨을까 하며.


→ 베란다 텃밭 공간(왼쪽 사진), 방울토마토 모종에서는 금세 열매가 하나둘 달렸다.(오른쪽 사진)


이삿짐은 영원히 거실에 널브러져 있을 것 같았고 셀프 인테리어는 도저히 그 끝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나날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봄기운이 났다. 가까운 꽃 시장에 가서 방울토마토 모종 3개, 대파 모종 3개를 4천 원에 사왔다. 이제 베란다에 텃밭까지 생겼다. 처음 머리 속에 그렸던 베란다 그림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지만 그럼에도 나의 베란다였다. 베란다에 들어서면 새로 산 통돌이 세탁기도 좋았고, 싸구려 책꽂이에 나란히 쌓여 있는 자질구레도 좋았고, 하루하루 눈에 띄게 자라는 모종도 좋았다. 돈을 조금 더 모으면 적절한 수납장을 다시 마련해야겠지만.


여전히 또 하나의 베란다를 그린다


필요한 물건이 생길 때면 둘 곳이 없거나 살 돈이 없어서 고민하기는 여전하다. 그래서 여전히 또 하나의 베란다를 그린다. 그곳에서는 오후의 채광을 온전히 누리고도 자질구레를 마음껏 쌓아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꿈에서 깨어나 은행 대출금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차라리 더 치열하고 현명한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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