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득 찬 만원 버스, 지겨운 업무와 답답한 사람들 속에서 김 사원이 머릿속에 그리는 일상의 여유란 이런 것이다. 평일 오후에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창 밖 구경하기.
한때는 이 정도쯤이야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루 휴가 정도는 아침에 전화로 적당히 둘러대면 되겠지. 그리고 조금 더 눈을 붙이고 일어나 카페에 가면 되겠지. 요즘은 동네에도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이 생겼으니까 편하게 입고 나가야지.
그렇지만 마음먹은 대로 세상이 움직일 리 없다. 세상은커녕 마음도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아침에 굳이 눈을 떠서 구구절절한 연락을 하는 것부터, 아니 구구절절한 사연을 지어내는 것부터, 아니 하루 휴가 뒤에 일어날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부터 여유는 물 건너갔다.
평일 오후에 소소한 여유를 제대로 즐기려면 일단 미리 휴가를 내는 것이 좋다. 왜 휴가를 내냐는 의례적인 질문에 ‘오후에 카페에서 창 밖을 구경하려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니 병원을 간다거나 친척집에 간다는 답변을 나름 구체적으로 준비해둔다.
하루 휴가를 냈다면 휴가일까지 체력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자칫하면 정작 휴가일에는 밀린 잠을 자고 일어나 몽롱하게 집에서 뒹굴 거리다 하루가 가버릴 수도 있다.
마음의 짐도 미리 덜어놓아야 한다. 드디어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마주했을 때 ‘요즘 바쁘다고 책도 별로 못 봤고… 업무 공부도 좀 해야 되는데… 영어는… 운동화 빨 때도 됐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되레 우울함과 쓸쓸함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이 가득 찬 만원 버스, 지겨운 업무와 답답한 사람들을 견뎌내야 하는 일상에서는 이런 소소한 여유를 즐기는 일에도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