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공지 입니다.]'라는 말머리로 시작하는 SNS 찌라시를 박 이사가 직원 단톡방에 공유한다. 1분도 안돼서 황 이사가 '전체 공지 바랍니다'하고 톡을 보내면 팀장이 바로 '네'한다.
회사는 마케팅 목적으로 네이버 밴드를 몇 개 운영하고 있었고, 폰트나 이미지 사용 문제로 저작권이니 뭐니 연락을 받기도 한 터였다. 그러니 예민하게 반응할 법도 했다. (참고로, 폰트 사용 관련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 읽어 보면 좋은 글이 있다. http://ppss.kr/archives/14720)
하지만 공유된 글이 얼핏 봐도 뭔가 수상했다. '서울쪽에서.. 모 밴드에서.. 저작권관련 법... 어느 사진작가..70~150만원.. 150만원 정도...' 모호한 표현이 난무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이 '긴급한 공지'를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해 공유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읽자마자 '정말 긴급하다'고 판단해 지시를 내렸다. 지시를 받은 누군가는... 굳이 생각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
황 이사는 오늘 아침 회의에서 최근 하와이 가족 여행 중 소지품과 신용카드를 몽땅 도둑맞았던 일화를 얘기했다. 그러고도 다음날 의연히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멘탈'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듯 멘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사원은 황 이사가 SNS 찌라시를 볼 때도 그 멘탈을 지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다보면 사소하고 당연한 일을 하나하나 따져서 결정할 수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서울중앙지검에서 전체 밴드를 조사하는 일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해서 "됐어, 그거 신경 쓸 필요 없어" 하는 편보다는 일단 저작권을 지키자고 하는 쪽이 더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긴급하다'고 판단했을 때 어깨에 힘을 조금 뺐다면 조금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보기 드문 그 자발성과 일사분란함이란 정말.
찌라시의 한 문장을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첫 화면에 비슷한 글이 여럿 뜬다. 이 호들갑스러운 찌라시는 2016년에도 올라왔고, 2015년에도 올라왔고, 2014년, 2013년...... 처음 올라온 글을 찾으려면 하염없이 과거로 내려가야 할 듯했다.
찾아보니 2009년에 시행된 음악저작권법 관련 글이 시발점인 듯했다. 이후 찌라시의 내용은 음악저작권법에서 저작권법으로 바뀌었고, 밴드(또는 카페)를 조사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어갔고, 연도는 그때그때 수정됐고, 중간중간 특수기호가 들어가기도 했다.
김 사원은 글을 구체적으로 쓰라고 강조했던 글쓰기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래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모호한 표현 투성이의 글을 몇 년째 퍼나르고 있고, 매번 강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생생하고 보고 있자니 뭐랄까, 글이라는 게... 그러니까... 뭐.. 그냥... 막...
아, 생각이 복잡해졌다.
#참고한 URL
- 네이버 블로그, 4월 16일 저작권법 루머. 엄청난 저작권법이 곧 시행된다고?(링크)
- 주간경향, [언더그라운드. 넷]10년 인터넷을 떠돈 ‘긴급 저작권법 공지’ 유령게시물(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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