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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Apr 05. 2018

무한도전 이야기 - 언젠가, 다시, 우리 함께.

무한도전 종영에 바치는 글.

                                                                                                                               (그림 출처 : 나무위키)



무한도전이 끝이 났다. 시즌 1이 종료되었다고 하지만 사실상 종영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돌아온다면 너무나 고맙겠지만, 차마 돌아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20대를 함께 했던 무도를 위해 부족한 글이나마 남기려 한다.

내가 기억하는 초기 무한도전의 원조 프로그램은 2004년 즈음에 KBS에서 방영되었던 천하제일외인구단이었다. 무한도전이 사람이 아닌 것과 대결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스포츠스타 대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천하제일외인구단은 무(모)한도전 초반 포맷과 거의 동일하게 유재석을 중심으로 출연진들이 고수와 대결하기 위한 수련(캐릭터쇼, 소위 뻘짓)을 한 뒤 스포츠스타와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SBS에서 유재석을 중심으로한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한다.)

유재석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쇼가 리얼 버라이어티로 진화하면서 성공한 것이 무한도전이다. 2005년 당시 초기 무한도전은 황소와 줄다리기, 지하철과 달리기 시합, 세차기계와 세차대결 등 정말 무모한 도전을 했다. 표절시비도 있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토요일 메인프로그램으로는 부족했는지 폐지위기를 겪던 중 김태호 PD가 제작을 맡고 스튜디오 프로그램으로 제작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스튜디오로 들어가면서 더 재미가 없어졌었다.

그러나 당시 내가 기억하기로 MBC는 프로그램이 부진하더라도 어느정도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이 있었고 무한도전은 수많은 멤버 교체와 그러면서 착실하게 쌓인 캐릭터, 거기에 도전이라는 스토리가 결합되면서 토요일 최고를 넘어 국내 최고의 예능이 되었다.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스펀지도 사라지고, 이후 무한도전을 위협하던 스타킹도 사라졌지만 무한도전은 10년이 넘는 세월을 우리와 함께 했다. 그 때 무한도전을 꺾기 위해 편성되었다가 날아가버린 타사 예능프로그램이 한트럭이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라인업(SBS)였는데 당시 최고 개그맨들이었던 이경규, 김용만에 뜨고있던 김구라 등 10명이 넘는 예능인들을 떼로 모았던 프로그램이었지만 무한도전을 꺾지못했다.) 당시 무한도전은 내가 PD가 되고 싶은 이유였고, MBC는 나의 워너비 방송국이었다.

무한도전은 항상 그들만의 세계에 갖혀있지 않았다. 시청자들과 소통했고, 사회의 아픔과 함께했다. 지난 어두었던 시절, 답답한 마음을 무한도전은 주말마다 위로해주었던 유일한 친구였다. 무한도전은 그 당시 찾기 어려웠던 소통이라는 가치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힘든 시절, 무한도전이 있어 그래도 주말이 즐거웠다. 그래서 어떤 권력자들은 무한도전을 미워하고 없애고 싶어하기도 했다.

무한도전이 점점 최고의 프로그램이 되어가면서 무한도전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도 과다하게 높아져갔다. 성인군자의 도덕 기준을 무한도전에 적용하기도 했고, 그런 과도한 부담에 잃어버린 멤버도 있었다. 가장 어이없던 상황은 수퍼7 콘서트 사태였다. 2012년 당시 파업으로 무한도전이 멈춰있을 때, 멤버들은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콘서트를 기획했다. 당연히 무대도 세워야하고 돈이 들어가니 입장권을 팔아야했을 것인데, 일부 과도한 팬들은 무한도전으로 돈을 벌려한다며 비판했고, 콘서트가 취소되고 길은 하차를 선언하기도 했다. 웃자고 하는 예능에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당시 어두운 상황 속에서 무한도전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웃자는 예능에서 조금씩 버거움과 어둠이 느껴졌다. 음주운전으로 길이 하차했고, 노홍철이 하차했다. 그리고 정형돈은 마음의 병을 얻어 무한도전을 떠나갔다. 어느 정도 마음이 회복되고 방송에 복귀했지만 무한도전에는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들의 과도한 기대가 부담스러웠던 그를 나는 이해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런 정형돈의 등 뒤로 날카로운 비판의 비수를 쏘아댔다.

그때 잠깐이라도 쉼표를 찍었어야 했다. 지친 멤버들도 위로하고 높아진 부담도 내려놓을 수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무도는 MBC 광고수입의 절반을 차지했고, 쉽사리 무도를 놓아주지 않았다. 사실상 프로그램이 뇌사상태에 빠졌고 인공호흡기에 연명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그 전부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무도 위기론은 무도 끝까지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이제 세상도 좋아지고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가고, 제대로 된 멤버들도 보강되었으니 제대로 뭔가 보여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무도는 종영(시즌1 종료라고 하지만 사실상 종영이다.)을 선택했다.

무도가 500회를 넘게했으니 보통 시즌제 예능을 12~16회로 계산했을 때 실제로는 시즌을 최소 30년을 넘게 한 것과 다름이 없다. 2005년 대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지금 아이를 가진 아빠가 되었다. 나의 젊음과 무도는 함께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무도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각별했다.

200회 특집에서 몇십년 후의 무한도전을 콩트로 보여준적이 있다. 나는 무한도전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저 그 콩트처럼 수십년을 계속 함께했으면 했다. 나의 젊음을 지나 나의 아이가 무한도전을 함께 보고 그들과 함께 늙어가고 싶었다. 많은 무도팬들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매주마다 만든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김어준이 그랬듯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상 무한도전을 비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번 주는 재미가 없어도 다음주는 좀 더 재미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무도와 친구처럼 함께하고 싶었다.

그랬던 무도가 어쨌든 끝이 났다. 몇 주 전부터 무한도전이 종영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나의 지난 20대가 송두리째 지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그러나 지친 그들을 생각했을 때 이제 무도를 놓아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BC로서도 무한도전을 놓아준다는 것이 엄청난 도전일 것이다. 당장 광고수입이 줄어들 것이다. 방송국으로서 무한도전과 같은 프로그램을 종영시킨다는 것은 큰 각오가 필요하다. 다시 충전하고 돌아올 때까지 MBC도 무한도전을 해야 할 것이다. 멤버들에게도 무도가 없는 삶이 큰 도전일 것이고, 무도팬들에게도 무도 없는 토요일이 무한도전이 될 것이다.

그래도 무한도전은 500회가 넘는 추억들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무한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케이블, IPTV채널 어딘가에서는 무한도전이 계속 방송되고 있다. 나는 기다릴 수 있다. 다시 2005년 황소를 끌던 그 시절부터 다시 한회 한회 설레는 마음으로 보다보면 어느샌가 내 옆에 어제 헤어진 친구처럼 무도가 돌아와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 때는, 과도한 기대에 무거워진 어깨를 가볍게 하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시청률이 5%도 나오지 않아도 좋고, 그래서 새벽이나 심야프로그램으로 가도 좋고, 대박 나지 않아도 좋고, 조금 재미없어도 좋으니 예능이지만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시덥지도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리웠던 그 때 그 멤버 그대로 모여서 그저 함께 늙어갔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할 것이고, 그렇게 함께 늙어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 될 것이니 말이다.

그래. 우리 함께 말이다.

"괜찮아. 잘해온거야. 길 떠나 헤매는 오늘은 풍경이 될꺼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 좋은 얘길 나누자. 시간을 함께 걷자. 그래 너여서 좋아. 그래 우리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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