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를 털어내지 못하는 시대

회귀물이 인기인 이유는

나는 역사를 전공했다.(역사학도라고 스스로를 부르기는 부끄럽다.) 역사라는 학문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은 'if'라고 배웠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해석하는 학문이다. 그러니 '만약'을 생각하는 것은 역사를 연구하는데에는 그리 의미가 없는 행위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역사를 배우는 기본 원칙을 알면서도 'if'를 좋아했다. 그런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생각해보면 어릴 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삼국지의 팬이었고, 특히 촉나라와 제갈량의 팬이었다. (내 또래라면 다들 그랬을 것이다.)


만약 관우가 형주를 뺏기지 않고 살았다면? 만약 이릉대전에서 유비가 패하지 않았다면? 제갈량이 죽지 않았다면? 이루지 못한 좌절을 해석하기 보다 나는 만약을 더 많이 생각했다. 그런 관심은 '반삼국지'와 같은 대체 역사물로 이어지기 까지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역사학도로서 싹수가 노랬다.


기존의 스토리에 'if'를 섞어 비트는 대체 역사물에 이어, 아예 회귀를 해 역사를 다시 쓰는 작품들도 좋아했다. 대학 시절 내가 제일 좋아했던 소설의 주요 줄거리는 파병을 나가던 한국군이 알 수 없는 사고에 휘말려 개화기 초기의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고 서구 열강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역사를 새롭게 쓴다는 이야기였다. 해석보다는 상상에 빠져 살았으니 역사를 전공할 수는 있었어도 역사학도가 되지는 못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회귀물은 당시 흔하지 않은 장르였다.


그런데 지금은 회귀물이 넘쳐나는 시대다. 웹툰 앱을 열어보면 '깨어보니', '일어나보니' 무엇이 되었다는 제목들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이제는 회귀물이 아닌 것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최근 회귀물의 기본 뼈대는 지금 현재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후회되는 주인공이 과거이든, 판타지 세계든 어디든 돌아가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며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과거 SF인 백투더퓨쳐와 요즘 회귀물의 차이는 백투더퓨쳐는 자신의 인생의 어떤 지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고, 회귀물은 완전 다른 인생으로 다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돌아가는 곳이 재벌집이 되거나, 판타지속의 귀공자가 되거나 하는 변주가 있을 뿐이다. 이걸 보면 사람들이 어떤 인생을 다시 살아보고 싶은지에 대한 욕망을 읽어볼수도 있다.


회귀물이 넘쳐나는 요즘 상황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사람들이 이런 회귀물을 많이 보고 돈을 쓰니 계속해서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왜 사람들이 회귀물에 빠지는지, 특히 최근 더 많은 사람들이 회귀물에 빠지는지를 생각해봤다. 그건 사람들의 마음 속에 '후회'라는 감정들이 털어낼 수 없을 정도로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참 전에 유행했던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의 핵심 가사는 '인생은 한번 뿐 후회하지 마요'였다. 한번 뿐인 지금의 인생을 후회없이 살자고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해가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위로가 통했던 시절에 살았다. 이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낭만을 가지고 도전도 해보고 실패도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실패한 지점에서 후회를 털고 다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한번 커리어가 꼬이면 회복하기가 어렵다. 오죽하면 첫 직장을 어디로 택하는가가 커리어의 전체를 결정한다고도 하지 않나.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내가 원하는 삶이 이것이었나라는 후회가 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온 것만 같고, 그 후회를 털어낼 수 없으니 그 좌절감과 실패감을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회귀물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러니 실패한 인생을 마법같이 벗어나 2회차 인생으로 다시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것이다. 비록 나의 현실은 바뀌지 않지만 말이다.


나도 가끔은 회귀물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새롭게 인생을 살아나가는 주인공을 보면 부럽기 때문이다. 나도 지금의 삶을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회귀물이 아무리 넘쳐나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생은 한번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계속해서 고쳐나가며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이 인생이다.


매 순간이 후회스러운 내 인생이지만,

그래서 나를 스쳐지나간 선택들이 '만약'이라는 후회로 쌓여 털어내기 어렵지만,

그것마저도 내 삶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회귀물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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