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Aug 05. 2019

역사 이야기

(1) 역사는 반복되고, 우리는 평가받는다. - 윤치호의 삶을 돌아보며

최근 일본과의 갈등으로 벌어진 무역분쟁 상황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생각과 선택을 보며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참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과거 구한말, 일제 시대에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자신이 속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을 것이며, 누군가는 다른 이의 힘을 빌려서 나라를 구원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행동했을 것이다. 어떤 누군가는 무력하고 무능한 왕실과 정부를 조롱하고 비하하며 차라리 타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누군가는 어떠한 관심도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각자의 최선이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신념에 따라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나라의 생존이든, 자신의 생존이든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살아간다. 오늘날 다시 일본과의 갈등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라보며, 난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다가 어떤 한 사람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윤치호는 구한말부터 광복 초기까지 활동한 사상가이자 지도자였다. 그의 생각과 행동은 아주 긴 시간 동안 그가 쓴 '윤치호 일기'에서 자세히 드러난다.

그는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실패하고 피신하였다가 독립협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독립협회 운동 이후 나라를 개혁하고 싶었으나 독립협회에서의 활동 경력으로 인해 자신이 생각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권력이 주어지지 못했다.

그는 일본을 좋아했다. 그에게는 미국 유학시절 당한 인종차별이라는 개인적인 원인이 있었다. 거기에 제국주의로 대표되는 백인들의 횡포에 대한 불만이 더해지면서 일본인에게 강한 동지애를 느끼게 된다. 그에게 일본은 백인과 맞서 이겨낸 아시아 유일의 문명국가였다. 그의 일기에서 그는 조국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일본을 선택하겠다고 말할 만큼 일본을 동경해왔다. 그러나 윤치호는 일본이 조선의 발전보다 이권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게 된다.

1905년, 윤치호는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다 결국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사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을사조약에 반대하는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일본에 점점 국권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을 상소문, 자결, 의병운동 등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개혁과 독립의 의지가 꺾여 개인적인 계몽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그의 관념 속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국제정세가 마련되지 않았고, 민족의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본에게 저항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차라리 일본에 적극 협조하여 호감을 얻음으로써 조선의 앞날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전후 처리 문제가 논의될 파리 강화 회의가 개최되자 윤치호의 주변에서는 그가 파리에서 조선의 독립의지를 전달해주기를 원했다. 그는 끝까지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세계열강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본과 싸워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조선은 투쟁이 불가능한 나라이며 약자로서 더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점차 3.1 운동의 계획에 대해 알게 되자 그는 자신이 이끌던 YMCA가 이 운동에 연루되어 피해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기만 했다. 일본에 투쟁해봤자 내부적인 동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투쟁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결국 만세시위를 목격한 윤치호는 YMCA 회관을 완전히 봉쇄하였다.

그는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완용(4월 2일)보다도 더 일찍(3월 6일) 3.1 운동에 반대하는 6가지 이유를 설명하였다. 핵심적인 이유는 '투쟁해봤자 지금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설사 독립을 한다 한들 조선이 살아남을만한 역량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이 상황에서 일본의 식민통치를 변화시키기 위해 조선인들의 불만사항을 일본의 주요 관리들에게 전달하고 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일본을 동경했지만, 일본의 수탈에 실망했고, 조선의 독립과 개혁을 갈망했지만, 조선과 조선인의 부족한 역량이라는 현실 앞에 좌절한 그에게 이러한 행동은 나름 자신의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다.

그는 끝까지 3.1 운동에 연관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게  당시 일본은 동경의 대상이지 넘어설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민족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실력양성 운동에 매진했다. 일본으로부터 언젠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실력 양성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지향점에는 조선의 독립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 시점이 아주 모호하고 막연했을 뿐이었다. 그에게 독립운동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만 하는 무모한 행동일 뿐이었다.

윤치호는 결국 광복이 되자 이것은 우연의 산물이며, 독립운동가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친일파로 몰리며 규탄당하였다. 그리고 뇌출혈로 사망한다. 사후, 그는 독립유공자로 서훈대상에 들어갔다가 부일, 친일 협력활동으로 인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2002년에는 친일파 명단에 수록되었고, 2009년 친일 반민족 행위 705명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009년 그의 공적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3기 중 발견된 2기가 강제 철거당했다.

세상의 수많은 일 가운데 모든 사람은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의 기저에는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형성된 관념의 뿌리가 자리 잡고 있다. 윤치호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입각해 3.1 운동에 대해 이것으로 조선이 독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신이 속한 YMCA가 여기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치했다. 또한 일제의 통치 속에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최대한 협조하면서 나아갈 길을 찾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죽으면서도 억울했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의 마지막 유언이 "모든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는 삼가라!"였을까. 이는 그가 스스로 친일파나 민족반역자가 아님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좌절과 최선에 대해 심정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는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 조선을 개혁하기 위해서 갑신정변에 가담했으며, 독립협회 활동을 했다. 그러나 여러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게 되자 자신이 동경해왔던 일본을 통해 조선의 현실을 개선하고 내부적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의 역량 강화의 완성 시점은 너무나 모호했다. 그는 끝까지 조선인들의 역량에 대해 신뢰하지 못했다. 아마 일본이 패망하면서 조선이 독립하지 못했다면 끝까지 조선의 역량이 충분치 않아 독립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큰 흐름 앞에서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다했지만 민족사의 흐름에 제대로 응하지 못했다. 그는 독립운동을 멀리하고 최대한 일제에 협조하는 삶을 살았다.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자 그는 어디가 이길지 확신하지 못하고 번민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결국 일제가 패망하자 친일파로 몰리다 사망하였고 죽어서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사유하고 선택하고 주장한다.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나는 불매운동에 대해 반대하고 이 사태의 책임이 우리 정부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무조건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발목을 잡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갈등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 갈등이 빨리 해결되기를 원할 것이다. 일본을 동경할 수도 있고, 아직은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기에 멀었고, 오히려 우리의 피해가 더 클 수 있으니 냉정한 관점에서 원만하게 갈등을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갈등의 시작이 우리 정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각자의 최선에 의한 선택과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윤치호의 삶을 보면서 역사가 정말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뿐이다. 결국 역사는 흘러가고 그 결과물이 오롯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모든 행동에 대해 평가받는 날이 올 것이다.

각자의 생각과 선택은 자유지만, 역사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글은 노상균 (2018). 방관과 친일 사이. 정신문화연구, 41(4), 7-37와 위키백과에서 윤치호에 대한 항목을 참고하였다.)

작가의 이전글 '놀면뭐하니' 첫방 감상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