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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Jan 02. 2020

'빈센트 그리고 테오' 독서감상문

고흐가 주는 삶의 위로, 그리고 그를 통해 남겨진 세 가지 질문

이 글은 데보라 하일리그먼이 쓴 '빈센트 그리고 테오'에 대한 저의 감상문이자 송규봉 교수님과 주고 받은 메일 내용입니다. 교수님께서 선물해주신 이 책에 제가 감상문을 써서 교수님께 메일로 보내드렸고 교수님은 감사하게도 제 메일에 대한 회신을 정성스럽게 써서 보내주셨습니다.



송규봉 교수님은 지리공간 빅데이터를 통한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GIS UNITED의 대표이자 현재 연세대학교와 국민대학교의 겸임교수이십니다. 그동안 삼성전자, SK텔레콤, 서울시청, 경기도청 등 다양한 회사와 공공기관과의 빅데이터 프로젝트를 수행하셨으며 본격적인 강의의 길로 나서신 이후에는 2017년 연세대학교 최우수강사 총장상 등을 받으시며 강의 실력을 인정받으셨습니다. 저는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에서 교수님을 만나 교수님의 팬이 되었습니다.(수줍) 그리고 현재는 가끔 교수님과 책이나 삶에 대한 편지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주고 받은 글의 양이 좀 많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이 고흐와 다양한 인물들을 통한 삶의 위안과 통찰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올릴 수 있게 허락해주신 송규봉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성동의 편지 - 독서 감상문(빈센트 그리고 테오)과 새해 인사 드립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메일을 드립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7월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기들과 함께 마련한 자리에서 교수님께서는 정성스럽게 쓰신 편지와 함께 책을 한 권씩 나눠주셨지요. 저에게는 아주 두껍고,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미술가인 고흐에 대한 책을 주셨습니다. 사실 책을 주신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지만, 도대체 왜 저에게 이 책을 주셨는지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나니 왜 이 책을 주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고흐는 왜 화가가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미술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미술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동굴 벽화까지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고대 동굴 벽화는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정보를 전달하고 사냥 성공을 기원하는 목적이 더 컸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문자가 대신하게 되고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아름다움과 자아 실현에 대한 욕망이 진정한 미술의 시작을 가져왔을 것 같습니다. 완벽한 인간의 비례를 찾으려고 하고,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담기 위해 노력하는 예술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미술이라는 분야가 정보전달, 종교적 목적에서 독립된 하나의 아름다움과 자아를 드러내기 위한 영역으로 더욱 발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미술의 기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왜 고흐가 화가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봤기 때문입니다. 고흐가 바라본 미술이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제 생각에 그에게 미술은 무에서 자신의 자아와 영혼을 표현하고, 경제적 영역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고흐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남기기 위해,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가족에게 도움이 되어 인정받기 위해 그림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창조적인 영감과 계시가 그를 그림으로 이끌었다기 보다는 경제적 존재로서의 고흐와 자아실현을 꿈꾸는 고흐가 함께 합의를 볼 수 있었던 영역이 그림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삶에서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이루고 싶다.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그리고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편지지나 만들며 살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어떻게 해야 그는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동시에 가족과의 유대도 지킬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오의 조언이 맞았던 것이다. 잘 하면 그는 제도가가 되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 제도가가 되어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그는 자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집에 보탬을 줄 수도 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운 좋은 예술가들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후원자를 두기도 한다. (...) 그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기를 원한다."


고흐에게 미술은 현실 세계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단순히 자아를 완성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고, 경제적인 부분까지도 충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통해 인생에서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누구나 돈을 생각하지 않는 최고의 선택을 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흐 또한 경제적 자립을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으로 그림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저의 선택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그림을 완성하기 까지 많은 방황이 있었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고흐가 그렇게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완성하기까지 많은 방황의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목회자가 되어 봉사의 삶을 살려고 할 때도 있었고, 화랑에 잠시 발을 담군 적도 있었던 그는 처음부터 화가가 되기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을 찾는데 많은 방황의 시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화가가 되기로 결정하고 수양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자신의 길에 대해 회의하고 번민하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예술이 빈센트의 삶을 채웠던 때가 있었다. 헤이그, 런던, 브뤼셀, 파리 등지에서 접했던 아름다운 회화와 드로잉 작품들, 그런가 하면 종교가 삶의 이유가 된 때도 있었다. 광부들이나 아픈 사람들, 부상당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그의 내면을 채워준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봉사의 삶 역시 선택지에서 사라져 버린 듯 하다. 그는 모든 것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 그는 신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지난해 여름에 집어들었던 미술 연필도 내려놓았다. 그의 삶은 빛이 들지 않는 광산만큼이나 어둡고 캄캄하다. 그는 스스로가 만든 두려움과 분노, 번민과 절망의 감옥에 그만 갇혀 버렸다."


그는 그림을 통한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기대하다가도 어느 날은 감정의 감옥에 갖혀 괴로워 하는 시간들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는 방황을 거쳐가며 빈센트라는 인생의 그림을 완성해나갔습니다. 그에게는 방황했던 시간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방황하며 자신의 길을 고민하던 그의 삶은 결국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저 또한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고민하고 있고, 그 길을 찾는다고 해도 계속해서 회의와 번민에 사로잡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빈센트의 삶을 보며 지금 이 시간과 그 이후의 시간에도 모두 의미가 있을 것이며 지금도 저라는 인생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고통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 읽은 '일'에 대한 책에서 발견한 '천직은 찾는 것이 아니라 키워나가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고흐의 기이한 행적들은 그의 천재성을 포장하는 소재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처음부터 천재였고 화가를 시작한 순간부터 화가로 완성되어 있었던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는 화가로서의 삶을 운명처럼 찾은 것도 아니며 처음부터 좋은 화가도 아니었음을, 그리고 좋은 화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책의 곳곳에서 그가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방황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연습하고 노력해왔었던 것입니다.


"초조한 마음에 힘이 없고 잠도 못 이루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린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4시 전에는 밖으로 그림을 그리러 나간다. 봄이 찾아와 '지나다니는 사람과 장난꾸러기 아이들 탓에 낮에는 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사물들이 아직 색조를 잃지 않은 아침이야말로 전체 윤곽을 보기에 최적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못마땅한 세간의 시선과 스스로의 분노에 찬 생각들로부터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다. "

"최근 빈센트는 계속해서 미술의 핵심기술인 해부학, 원근법, 색채를 독학으로 익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빈센트는 우울한 감정에 빠진다. 겨울의 누에넨,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은 너무 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손에서 붓을 놓지 않는다. 낮에는 회화 작품을 그리고, 밤에는 서른명의 사람 두상을 근접해서 그리는 드로잉 시리즈를 진행해 나간다."

"빈센트는 보색뿐 아니라 밝은 색깔을 사용해 가면서 실험을 계속한다. 물감을 붓에 잔뜩 적셔 두껍고 무거운 필치로 종이에 내려놓는다. 어떨 때는 물감이 마르는 시간을 채 기다리지 못하고, 젖은 물감 위에 또 젖은 물감을 덧칠한다."


천재는 처음부터 천재일 수도 있고, 완성되어 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고흐는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자신의 감정과 색채를 그림으로 승화시킨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까지는 두꺼운 껍질 안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색채로 이루어진 감정들을 캠버스로 옮기던 그의 치열한 노력이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힘들었던 방황의 시간은 빈센트만의 감정과 색채들을 만들어내었고 치열한 노력으로 그 색채를 캔버스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고통의 순간 속에서도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그림 기법들을 실험해보고, 자신만의 색채를 만들어 나가던 그의 투쟁이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흐의 그림은 안타깝게도 사후에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래도 어쨌든 그의 그림이 사후에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길에 대한 갈등과 번민 속에서도 그는 해야 할 일을 해나갔습니다. 세상의 인정이 없어도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결국 동생의 집에 가득 걸려있는 자신의 그림을 보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며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그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삶의 끝에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 또한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스스로를 인정하며 뿌듯해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저 스스로를 위안해보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일찍 일어나 집 안 곳곳에 널려 있는 자신의 그림들을 둘러본다. 식당 벽난로 위 선반에 있는 감자 먹는 사람들, 침실에 걸린 꽃이 핀 과수원, 응접실에 걸린 아를의 풍경과 론 강위의 밤하늘 그림, 그리고 피아노 위에 있는 꽃이 핀 아몬드 나무 그 밖에도 집 안 도처에는 액자에 담지 않은 그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침대 밑에도, 소파 밑에도, 작은 예비 침실의 벽장에도, 그의 그림이 없는 데가 없다. 빈센트는 그림들을 모두 꺼내어 하나씩 찬찬히 살펴본다. 테오도 그와 함께한다. 10년간의 업적, 빈센트의 업적, 그리고 테오의 업적."


빈센트가 테오의 집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돌아보는 이 부분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머리속에 그려지면서 전율을 가져다 줍니다.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느끼게 해주는, 스스로에게 보상을 받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빈센트와 테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빈센트에게 테오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유일한 존재였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빈센트는 자신을 완성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의미와 몰입, 자유를 주고 목표를 세울 수 있게 해주는 저만의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찾는 것 만큼 먹고 사는 문제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 만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한 빈센트라는 자아와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테오라는 자아가 내 안에 모두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두 자아는 그리 친하지 않았습니다. 한 쪽 자아는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하며 '재능도 안보이면서 나만의 길을 찾겠다는 너는 허풍쟁이이다'라고 반대 쪽 자아를 비하했고 한 쪽은 '한번 사는 인생에서 성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 너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반대 쪽을 미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빈센트가 테오에게 의지하고, 테오가 빈센트를 인정했듯이 제 안에 있는 두 자아가 서로를 인정하고 의지하며 지향점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비록 둘 다 몸이 아프긴 하지만, 그들은 함께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어렸을 적 풍차를 향해 함께 걸어가면서 꿈꾸었던 대로 서로의 꿈을 나누면서, 준데르트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맛과 쓴맛을 맛보며, 때로는 갈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한데 모아지기도 하는 길을 따라, 그 모든 세월을 형제로서 또 친구로서 함께 뭉쳐 여기까지 왔다. 단순한 형제를 넘어 단순한 친구를 넘어, 빈센트는 이렇게 쓴다. 그 두 사람은 '운명의 동반자'이다."


교수님께서 이 책을 왜 주셨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고흐는 방황의 끝에서 미술을 만나게 되었으며, 좋은 화가가 되기 위해 부던히 노력해왔고,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가면서도 계속해서 고통스러워하고 번민하였으며, 살아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에 노력하여 죽음 후에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았습니다.


교수님께서 이 책을 고르신 마음을 책을 읽어가며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 이리저리 흔들리며 방황하고 있는, 서른이 넘어서도 아직 내 갈 길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오늘의 먹고사는 문제만으로도 힘겨워 하는 저를 보시면서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내다보면 인생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격려를 건네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셨을까요. 교수님의 따뜻한 마음이 책으로 느껴지는 듯 합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2020년을 그려나가겠습니다.

교수님, 저는 지난 번 교수님과의 만남에서 말씀드렸던, 계획하고 있던 일들에 대해 모두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여전히 저는 저만의 길을 완전하게 발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중입니다. 현실적인 문제, 부족한 추진력, 부족한 재능, 부족한 확신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자신의 길에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저는 오늘도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면서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저는 마음의 곤궁함과 괴로움을 느낍니다. 교수님께 제가 노력하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을지 부끄럽기도 합니다. 때로는 길이 보이는 것 같다가도 사방이 벽에 막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에는 최고의 선택은 아니어도 저만의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계속해서 방황하면서 노력하겠습니다. 계속해서 방황하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살기 싫을 정도의 순간이 오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그 길을 찾아가며 저라는 인생의 그림을 완성해 나가기 위해 외부와 내부의 장애물과 싸워나갈 것입니다.


내년에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모임을 만들어 이끌어 나가보려 합니다. 모임의 성격과 함께 공부해나갈 영역을 기획하였으며 1월부터 모임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던 대학원 이후의 저만의 대학원을 만드는 셈입니다. 여기서는 독서모임과 앞으로 지식 노동자로서 살아가기 위한 기술들을 함께 공부해 볼 생각입니다. 이 또한 앞으로 계속해서 잘 될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갈등과 번민을 반복해가면서 오늘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면서 살아낼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고흐의 삶을 통해 말씀해주셨듯이 제 삶의 결과물들을 사는 동안 인정 받지는 못하더라도 제 스스로 나중에 돌아봤을 때 아름다웠던 길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도록 제 안에 있는 빈센트와 테오와 잘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9년 12월 마지막 날.

김성동 올림


PS : 이 책을 통해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도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빈센트 미술관에 꼭 가고 싶습니다. 그의 인생을 이해한 후의 그림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답신 - 고흐가 남겨준 질문 세 가지


지난 주에 이화여대 ECC 빌딩 안 '모모'라는 극장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본 영화는 [고흐, 영원의 문에서 (At Eternity's Gate, 2018)]였습니다. 스물 일곱 때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가 처음으로 기획해서 세상에 내놓은 [고흐 - 영혼의 편지]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교과서 속 암기대상이었던 화가가 다른 의미로 제 인생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할 때 한국에서 출장온 친구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고흐전]을 관람했습니다.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5년 후 유럽 출장길에 네덜란드 고흐 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만약 [고흐 - 영혼의 편지]를 읽지 않았다면 작은 자화상 앞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는 관람객들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자기 인생의 별자리가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제가 별자리에 분류한 사람들은 이제는 세상에 없는 분들입니다. 살아있는 분들 중에도 그런 영감을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좀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런 분들을 '등대'라고 부릅니다. 별자리는 우러러 보게 되고, 등대는 절실한 마음으로 찾게 됩니다. 하지만 별자리와 등대가 제 인생의 목적지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분들은 제 인생의 어두운 구간을 비춰주는 안내지도일 뿐입니다. 저는 제 인생을 항해하고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받는 좌표계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 여전히 제가 가려는 길이 무엇인지 제가 스스로 풀어가야 합니다. 제 눈의 파도는 제가 감당해서 여정을 이어가야 합니다.


1866년 프랑스 화가 쥘 홀차펠(Jules Holtzapffel)은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프랑스 황실이 주관하는 '살롱전'에서 연달아 낙선한 까닭입니다. 그가 남긴 메모에는 “심사위원들은 나를 거부했다. 따라서 나는 재능이 없다. 나는 죽어야 한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스물 세 살, 저는 스스로 글쓰기의 재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자기 재능을 완전히 부정하는 사람은 그 분야에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쓰기를 포기했습니다. 문제해결은 올바른 문제의 진단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문제진단을 '하늘이 내린 재능'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3년만에 '재능 없음'으로 판결을 내린 셈입니다.


1866년 프랑스 황실이 주관하는 '살롱전'에서 3년째 낙선한 폴 세잔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합니다. 꼭 황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살롱전'에 입상한 작품들은 오래된 회화의 전통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작품은 올바른 원근법과 익숙한 예술적 전통을 따라야 했고, 현미경 수준으로 정밀하고 제대로 ‘마무리’가 되어야 했으며, 형식에 맞게 표구되어야 했다"고 미술평론가는 전합니다.


1874년 폴 세잔은 ‘살롱전’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직접 대중들 앞에 작품을 전시하자는 모네의 제안에 따라 첫번째 「인상주의 작품전」에 참여합니다. 드가, 기요맹, 모네, 피사로, 르누아르, 시슬레 등이 동참했고 세잔은 석 점의 작품을 전시합니다. 하지만 인상파와 세잔의 시도는 주목을 끌지 못하며 비평가들의 비웃음거리가 됩니다.


1887년 서른 여덟의 세잔은 큰 결단을 내립니다. 그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리라는 결심을 품습니다. 조용히 그림 연구와 작업에만 몰두하기 위해 파리를 떠나 고향 엑스 근처로 옮깁니다. 계속 은둔생활을 지속하며 50대에 이르러서야 파리에서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고흐가 파리를 방문하며 화풍이 크게 바뀐 것은 사실입니다. 1886년부터 약 2년 동안 동생 테호와 함께 생활하며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남프랑스로 옮겨가 막바지 명작들을 그립니다. 작품수를 계산한 자료를 읽어봤는데 고흐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스물 일곱부터 사망까지 10년 동안 이틀에 한 작품씩 꾸준히 작업했습니다.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작품을 만드는 것에 전력투구했을 것입니다.


한때는 '있어 보이기' 위해 고흐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고흐는 일종의 자기과시용 '아는 체'를 채워주는 레퍼토리였습니다. 겨우 책 한 권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얄팍한 과시욕 너머로 가면 도대체 예술가로서 고흐의 삶이란 무엇인가? 자기경영에 실패한 불행의 아이콘이거나 닮지 말아야할 극복대상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예술혼을 불태웠다고 하지만 생전에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쥔 피카소를 더 높이 평가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드문드문 피카소, 폴 세잔, 자코메티, 호크니, 추사 김정희, 김환기에 대한 자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있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제 자신을 위해서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화가든 음악가든 철학자나 과학자건 아니면 요리사건 그들의 삶에서 제가 품고 싶은 것은 제 인생을 대하는 색다른 눈입니다. 화가와 과학자 그리고 철학자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부터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며 다른 방식으로 엮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남프랑스의 밀밭을 바라본다면 제 눈에는 고흐와 같은 꿈틀거리는 빛깔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견디기 힘든 지루하고 밋밋한 풍경이었을지 모릅니다. 호크니의 고향 요크셔는 그저 덤덤한 농지가 펼쳐진 평범한 교외지역에 불과합니다. 호크니는 만약 고흐에게 미국 캘리포니아의 황야와 사막지역에 일주일 보내게 했다면 그는 놀랍도록 생생하게 살아있는 풍경화를 그렸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말년의 추사 김정희는 이런 글을 편지에 썼습니다. "내 글씨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나는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예술가들에 대해서 살펴볼수록 저는 스물 세살 수준에 멈춰 있는 저의 '재능론'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재능은 무엇인가를 얼마나 많이 천부적으로 물려받았는지를 살피는 고정형(fixed mindset)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붙들어야 십 년 이 십년 한 평생 몰입할 수 있는가? 재능이 고체형태가 아니라 물기 많은 찰흙처럼 다양한 형태로 변주할 수 있는 변화가능성(growth mindset)을 더 중요하게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막대한 양적 투여의 충분한 밑변을 확보한 후에 빙산의 일각 수준으로 최상부의 소수 명작이 탄생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글쓰는 작가도 비슷합니다. ‘이상문학상’ 수상자 40명이 첫작품을 발표한 시점부터 수상 시점까지 조사해보면 평균 15년이 걸린다는 것도 엑셀 시트로 계산해보았습니다. 현대문학상 시부문 작가상을 수상한 70명의 사례도 평균 17년이라는 숫자가 나왔습니다.


이제 '나에게 재능이 있는가'라는 단답식 의문문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붙들어야 15년 17년 즐겁게 몰입하며 점점 나아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박경리 작가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강의한 창작론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밑줄 그은 대부분을 필사했습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인생은 '남의 삶을 표절하는 인생'이라 했습니다. 이 구절은 도끼처럼 썩어서 무너지는 가지들을 내리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자기 인생 자체를 예술이라 느낄 수 있도록 살아가라 하십니다. 고흐는 세속적 기준에는 실패한 삶일지도 모르지만 박경리 선생의 기준을 따르자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삶입니다.



옛날에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본 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자신의 삶을 예술로 승화한 사람들, 그러니까 인생 자체가 예술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 예술이라는 말 대신 아름다움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승화된 삶이라 해도 좋겠지요. 크나큰 사랑 말입니다.

둘째는 삶 속에서 이룩하지 못한 이상과 영원을 예술이라는 작업으로 재현하는 것, 이 경우에도 반드시 문학이나 미술이나 기타 예술행위에 한정된 것이 아닌 일이라 해도 좋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이라 해도 좋습니다. 정직하게 열중하며 그것이 설령 비생명적인 대상일지라도 생명, 즉 자신의 혼신을 불어넣는 경우 그만큼 삶은 값진 것이 될 것입니다.

셋째는 알기 쉽게 말하면 속물의 삶이지요.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소설의 속의 주인공을 모방하는 인생입니다. … 멋지고 취미가 좋고 교양 있고 세련되고 그것이 꾸밈이며 꾸밈에 가치를 둘 때 자신을 기만하고 남을 기만하고 인생을 껍데기로, 시간을 무가치하게 허비하는 것입니다. 남이 하니까, 좋아 보이니까 모방해보는 그런 모습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박경리,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현대문학, 1995, pp. 25~47



세상의 기준으로 가장 성공한 화가라고 평가받는 피카소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가진 목소리가 있습니다. 평론가 존 버거는 피카소의 60대 이후 작품을 냉정하게 비판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위대한 화가들 중 자신이 늙어감에 따라 그 작품이 심오성과 독창성을 더 해가지 않았던 예가 하나도 없다. 벨리니, 미켈란젤로, 티찌아노, 틴토렛토, 푸생, 렘브란트, 고야, 터어너, 드가, 세잔느, 모네, 마티스, 브라크 이들은 모두 자신의 가장 위대한 작품 몇 점을 나이 65세가 넘어서야 만들어냈다"고 전제합니다.


"1945년(피카소 64세) 이후의 피카소의 작품을 아무리 호의적으로 평가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그가 그 전에 창조해 낸 것에서 진일보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들은 쇠퇴를 나타낸다. ... 피카소의 후기 주요 작품 대부분은 다른 화가로부터 빌어온 주제를 변주라는 그 특이한 사실만은 남는다. ... 왜 아무도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는가? ... 아무도 감히 실패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사정은 피카소의 집 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외관상으로 우리는 피카소의 성공을 그 자신이 믿는 것 이상으로 믿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존 버거,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미진사, 1984, pp. 219~224


어쩌면 제 인생은 세상이 미리 정해준 성공의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시절, 그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몸부리치던 시절, 그 기준에 의문을 제기한 시절, 나의 내면과 세상이 공히 인정할만한 새로운 성공의 기준을 모색하고 실험하는 시절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남의 삶을 선망하고 흉내만 내고 각각 조각들을 가져다 제 삶을 레고블록처럼 조립했다면 박경리 선생의 기준으로는 '실패등급'입니다.


결국 박경리 선생 기준도 남의 기준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들립니다. 저는 지금 고정되고 획일화된 성공기준 자체를 재정립하려 합니다. 그러니 기존 성공기준을 새롭게 진단하고 더 괜찮은 기준을 정립하는 과정에 도움되는 관점들을 통해서 새로운 생각을 해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들에 갇히지 않고 저만의 설득력 있는 가치를 세워보고 싶습니다.


지난 토요일 저는 우연히 초등학교 실과 선생님이 쓴 논문을 두 편 읽었습니다. 초등학생을 위한 실과 교육내용을 재정립하기 위해서 교사 20명과 학생 10명을 대상으로 설문과 토론 그리고 의견서를 취합하여 오픈 소스 R 프로그램으로 텍스트마이닝을 이용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실과'의 커리큘럼을 재정의하는 내용입니다. 일단 너무 놀랐습니다. 그래서 같은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실과'라는 개념에 대해서 어떻게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공부를 하셨더라고요.


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신 것으로 짐작됩니다. 지도교수와 공동논문을 쓰셨더군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헤겔과 마르크스까지 역사 속에서 주요 철학자들이 노동과 실천을 어떤 식으로 해석했고 그런 연구의 관점 중에서 오늘날 초등학교 실과 교육내용에 부족한 문제점을 어떤 식으로 극복할 것인지 고민을 정리한 것이었습니다. 한번 더 놀랐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자기 방식으로 꿰어가고 있는 치열함과 진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흐, 세잔, 피카소, 김정희를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인생으로 취급할 것인가? 이 대목에서 니체는 매우 날카로운 문제를 제기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열등감 때문에 탁월한 사람들을 '천재'로 취급한다고 의심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무능이 상처받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고흐, 세잔, 피카소, 김정희를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서 일반인들과 태생부터 차별적이라고 신화로 만들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극히 평범한 처지나 그저그런 수준에서 시작하여 10년 20년 30년 40년 또 그 이상 특정 장르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매일매일의 지난하고 일상적인 노력을 외면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출발을 비범한 경지가 아니고 평범한 단계로 재해석하면 전혀 다른 감상법이 열립니다.


니체는 이렇게 운을 뗍니다. "그러나 … 천재의 활동도 결코 기계의 발명가, 천문학자 또는 역사학자, 전략의 대가의 활동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이 모든 활동은 자신의 사고를 한 방향으로 활용하거나 모든 것을 소재로 이용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내적인 삶을 진지하게 관찰하며 여기저기에서 모범과 자극이 되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들을 자기의 수단으로 짜 맞추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니체는 소설가를 예로 듭니다. "어떻게 하여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 ‘나에게는 재능이 충분치 않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질을 전제하고 있는 말이다. … 2페이지를 넘지는 않지만 거기에 포함된 모든 단어가 필연적이라고 할 만큼 명확한 소설을 백 개 이상 습작해보라. 가장 함축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일화의 형식을 배울 때까지 매일 일화를 쓰도록 하라. 인간의 유형과 성격을 수집하거나 윤색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라. 특히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효과를 유심히 바라보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에게 말을 자주 하고 남이 말하는 것을 귀를 쫑끗 세워 듣도록 하라. … 이와 같은 다양한 훈련으로 20~30년을 보내라. 그 후에는 작업실에서 창작된 것이 거리의 빛 속으로 나가도 좋다."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전집 7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 책세상, 2001, pp. 179~184


고흐로 시작해서 니체를 인용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제가 니체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저작을 다 읽었거나 다 이해할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만약 그의 정신세계를 호수에 비유한다면 저는 그 호숫가에서 겨우 손을 뻗어 한 컵의 물을 떠서 다급한 갈증을 해소하는 수준일 것입니다. 가끔 그가 던진 질문이 떠오릅니다. 너는 지금의 삶을 영원히 반복해도 좋은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기 위한 존재다. 이런 글귀들입니다. 술자리의 과시용이 아니라면 나는 도대체 나를 어떻게 초월한다는 말인가? 이런 막막한 질문을 던져 놓은 지 오래입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실과 선생님의 논문을 읽으며 노트에 메모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초월의 3가지 방향을 메모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2개의 아이디어는 실과 선생님의 논문에 나온 '일(노동/실천)의 의미'를 되새기며 얻었습니다.


첫째, 노동은 자기 자신이 좋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발견하고 확인하고 그 안에서 과거보다는 나아지는 자기를 만나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두번째 초월은 다른 사람을 향합니다. 작업이나 창작활동은 타인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계수단이건 사회적 공헌이건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뛰어넘는 두번째 장르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유한한 삶을 뛰어넘을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어떤 자기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동시에 극복할 것인 것, 질문하라는 요구입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다시 영화관 모모에서 상영중인 [고흐, 영원의 문에서]가 떠오릅니다. 만약 고흐가 당대에 가장 잘 팔리는 그림만을 추구했다면 <감자 먹는 사람들>과 같은 농부들의 거친 손과 어두운 조명을 대형 화폭에 담아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도 가장 잘 팔리는 그림은 있었을테고, 그림판매원인 동생이야말로 그런 트렌드와 유행을 체크해주는 적임자였을 것입니다.


그의 편지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그림을 대했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말씀처럼 방황하는 신학도에서 화가로 변모해가는 그의 10년 세월과 편지 속의 고뇌는 전혀 다른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오는가? 새삼 반문하게 됩니다. 고흐는 그가 14살부터 영재성을 인정받고 이미 20대에 유명해져 30대에 백만장자가 되어 대저택을 구입한 예외적 성공에서 비켜나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모릅니다. 고흐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죠. 저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그는 당대에 성공하지 못하고 삼십대 중반에 삶이 마감됨으로써 안타까운 연민을 이끌어냅니다. 그의 그림은 하나같이 자연이나 정물과 인물을 그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곧바로 공감하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의 화풍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독자적인 경지에 도달하여 완성도를 만들었습니다. 그 압축적인 드라마에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대입하고 다른 방식으로 비추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인생을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들어줍니다.


진짜 성공한 공연은 어떤 건가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편집장의 질문에 환갑에 이른 첼리스트 요요마는 잠시 뜸을 들입니다. "만약 어젯밤에 제가 공연을 했고, 친구 두 명이 제 공연을 왔다고 가정해봐요. 그런데 오늘 그 친구끼리 만나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근데 어젯밤에 우리 뭐했지?' 이렇게 말하면 제 공연은 실패한 거예요. 공연이 끝난 후에도 제가 연주한 음악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으면 그건 성공한 공연이에요."


만약 환갑의 요요마가 제시한 기준을 적용하자면 피카소와 고흐 중에서 누가 더 성공한 화가인가요? 누구의 가슴에 얼마나 더 뜨겁게 살아있는가? 물어볼 일입니다.


연초의 계획을 회고하는 것이 무참해지는 연말입니다. 그래서 올해 세운 계획 중에서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실패했는가, 따져보는 질문법에서 한 발 더 나가보고 싶습니다. 올 한 해 무엇이 내 가슴을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는가? 무엇이 잠시 숨을 멎도록 나를 사로잡았는가? 그런 것들 중에서 내가 무엇을 붙들어야 이전의 나와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새해를 위한 질문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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