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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Aug 01. 2021

결혼 생활의 지속조건은 맛있는 음식이다(?)

임경선, 평범한 결혼생활

죽음과 결혼은 늦을 수록 좋다는 박명수의 말이 떠오른다. 주변에 미혼들을 만날 때 나는 항상 결혼을 최대한 천천히 하라고 조언해왔다. 해볼 것을 다 해보고 정말 할 것이 없으면 결혼을 하라고 이야기 한다.(출산과 양육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결혼해보니 행복하고 즐거웠던 신혼 초반이 지나 감당해야 할 현실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혼의 행복 이후 후불로 감당해야 하는 괴리감과 괴로움이 너무 큰데 그것을 환불하는 것은 가능은 하겠지만 너무나 어렵다. 그러니 결혼은 절대 신중하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 나는 결혼이 신중했었는가? 절대 아니었다. 나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뜨거웠다고 생각했던 연애시절이 있었다. 만난지 2주만에 결혼을 약속할 정도로 서로가 좋았고, 군 입대 전까지 매일을 만났으며, 장교 생활로 3년간 떨어져 있을 때도 주말마다 서울로 기를 쓰고 올라갔다. 심지어 장교 시절 위수 지역을 넘어 아내를 만나러 갔다가 대응 시간에 늦어 처벌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아내와 함께하고 싶었고, 서둘러 결혼을 했다. 아직도 신혼 시절 사진들을 꺼내어 보면 웃음이 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신혼 시절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지금도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결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뻔한 소리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아무리 신데렐라라고 하더라도 왕자님과 결혼한 후 아이를 낳고 현실을 살아가며 괴로운 일이 없었을까. 그 현실은 냉정하다. 사랑으로 인한 생체적 유효기간이 3년밖에 되지 않으며, 결혼 후 서로가 헤쳐나가야 할 현실의 세계가 만만치 않다. 먹고 살아야 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며, 결혼 전에 알지 못했던 서로의 진면목을 확인하며 실망하는 부분도 있다.


같은 토양에 뿌려진 두 씨앗의 결과는 다를 수도 있다. 사랑의 결실로 탄생한 결혼이라는 씨앗이 현실 위에 뿌리를 내리고 건강하게 자라는 경우도 있고,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버리기도 한다. 아는 형님의 SNS에서 알게 된 '평범한 결혼생활'을 읽으면서 그런 의문이 생겼다.


'결혼 후 환상이 사라지고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동일할 텐데, 결혼과 이혼의 갈림길을 선택하는 부부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보다 10년이 넘게 결혼생활을 지속한 작가가 들려준 조언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고, 결혼의 환상은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며, 결혼과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은 답도 나오지 않으니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결혼생활과 궁극적인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평범한'이라는 결혼에 대한 작가의 수식어는 바로 이러한 의미를 응축한 것이 아니었을까. 결혼은 생각보다 평범하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함께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에서 인간의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맞닿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의 당위나 절대성을 진지하게 사유하기 시작하면 급 피로가 몰리고 피가 머리를 쏠려 편두통이 재발할 것이다. 그럴 때는 운동화를 신고 동네로 산책을 나가 맛있는 스콘을 사 먹는 것이 현명하겠다. p.128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 중)


결국 같은 조건에서 결혼의 결말이 다른 것은 결혼이 생각보다 평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느냐의 차이이다. 결혼 후 환상이라는 안개가 걷힌 후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현실, 서로의 본모습, 그리고 변해가는 서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느 누구와 결혼하더라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범함을 잘 즐길 수 있는 무던한 사람들이라면 환상과 열정이 현실로 변해가는 순간을 함께 잘 넘기며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결혼 생활도 현실을 살아가며 가끔은 즐겁고, 가끔은 (조금 많이) 괴롭기도 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평범한 하루를 잘 살아가는데 집중하려 한다. 내일은 가족들과 맛있는 샤브샤브를 해먹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적당한 때가 오면 부부가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각잡고 사색하지 않아도 그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어쩌다 한 번 씩 알려줄 테니까. 마치 이제 알았냐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툭 치면서.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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