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flakes가 Passenger가 된 이유

- 한 곡에서 한 앨범으로

by 김세은

그렇게 한 곡을 완성했고 나는 이것을 스스로 기념하고 싶었다.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 마음으로 음악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고, 내 삶을 대해야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꼭 기억하자'



그래서 나는 바로 근처 레코딩 스튜디오를 서칭 했다. 인터넷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참 편리하고 무서운 세상이다.

몇 군데를 알아보고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주로 작업하는지, 어떤 아티스트와 작업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들도 꼼꼼히 들어보고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 한 곳을 정했다.

그 후, 담당자와 이메일로 가격이나 자세한 사항들을 협의하고 바로 녹음 날짜를 잡았다.


평소에 의뢰받은 직업적인 일 이외의 대부분에 있어 최고의 게으른 태도를 취하던 내가,

나를 위한 작업에 이토록 실행력을 보인 이유는 아마도 이 곳에 머무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곡을 기념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던 당시, 내 기억으로 10일 정도 후에 남부 프랑스 마르세유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정은 즉흥적이었지만 밀도 높게 진행됐다.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작 내 작업에 우선순위를 두지 못했다.


가끔은 생각이 많은 게 도움이 되지만 방해가 될 때가 있는데, 자발적인 시작과 제한된 시간적 상황은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생각이나 걱정을 완전히 덜어주었다.


‘프로페셔널’이라는 나의 기준조차 의미가 없었다.

새롭게 부딪치는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반갑고, 재밌었고, 어떠한 책임감도 들지 않았다.

그저 지금의 나의 마음이 중요했다.

어렵게 찾은 내면의 해방감이 당시로서는 가장 중요했고 그것으로 이미 목표는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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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JRS 레코딩 스튜디오




음악을 작업할 때 주로 녹음 스튜디오는 '1프로'라고 해서 3시간 30 정도를 최소기준 단위로 하는데 이 곳은 하루 단위 또는 반나절, 이런 조금 독특한 단위로 운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페이는 최소 단위인 당시 협의를 6시간 정도로 한 것 같은데 막상 녹음실을 부킹 한 뒤 휑하니 남는 녹음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한 곡, 한 곡 추가하기 시작했다. 본전 찾겠다는 이 알뜰함이란 결국 1곡 녹음에서 1장의 앨범으로 기어이 8곡을 채우고야 말았다. 물론 아주 짧은 습작들 같은 느낌의 곡들이 많고 이전의 앨범을 즉흥적으로 피아노 솔로 곡으로 연주한 곡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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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 로즈(Fender Rhodes) 일렉트릭 피아노


키보드나 소프트웨어의 샘플과 Vsti로만 들었던 실체인 진짜 '일렉트릭 피아노'이다. 실제로 들으면 가상 악기에서 들을 수 없는 정말 아름다운 소리다 난다. 약간의 그 노이즈마저 너무나 아름답다.

이 일렉 피아노를 본 순 간, 그 자리에서 바로 3곡을 녹음했다.

즉흥적이고 짧은 곡들이었지만 이 사운드로 간직하고 싶었다.

치는 내내 기분이 너무 좋았다. 펜더 로즈는 마치 별이 부서지면서 나는 소리처럼 매우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사운드가 나온다. 한국에서 리얼 펜더 로즈 사운드를 듣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라 스튜디오에서 이 것을 본 순간 너무 반가웠다.





그렇게 구색을 맞추었는데도 예약한 시간의 반도 채 쓰지 못했다.

이 날의 녹음시간은 거의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거의 한 곡당 2~3번 정도면 끝났고 그냥 단 한 번의 호흡으로 1 Take으로 한 번에 완성된 곡들도 있다.

거의 에디팅(Editing)이라는 편집을 하지 않은 채, 재즈곡도 아닌 다정한 곡들을 마치 재즈 즉흥연주를 하듯이 오직 감성과 한 번의 호흡으로 뱉어내며 자연스럽게 연주했다.

‘어떻게 해야겠다’라는 스스로의 틀에서 벗어나 마음의 소리에 최대한 집중해서 손가락이 가는 데로 부족하면 부족한 데로 내 안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부끄러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한 번 툭 뱉어봤다.


앞으로의 나에게 지금의 이 작업이 분명히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렇게 해도 되는 거구나’, ‘이렇게 시작할 수 있겠다’


무언가 제대로 할 말이 생긴 것 같았다.

예술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예술이라는 것이 뭔가 그래야 될 것 같았고 그래서 좋았다.

뭔가에 이끌리는 예술을 감상할 때 항상 어렵고 복잡한 철학적인 사고들을 포괄하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한 번의 클릭'으로 연결해주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 무언가를 느끼면서 아주 오랫동안 그것들을 동경하며 갈망해왔다.

‘과연 무엇이 그것을 빛나게 하는 걸까?’, ‘무엇이 이들을 다 똑같아 보이는 모래사장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하나의 모래알처럼 특별하게 만드는 걸까?’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는 단 하나의 개념으로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계속 말할 뿐이다.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의 몫이다.


그것을 돌아보는 그 누군가, 그 가치를 알아봐 주고 발견해 주는 그 누군가.


이를테면, 당신.

당신이 바로 그 누군가인 것이다.




그렇게 'snowflakes'는 한 장의 앨범의 '타이틀 곡'이 되어야 했기에,

나의 1집 앨범의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1집 타이틀 곡은 cherry blossom, 앨범 타이틀은 Atmosphere였다. 보통의 앨범은 접근이 어렵게 이런 식으로 배치하지 않는다.)

나는 앨범의 타이틀과 메인타이틀 곡의 제목을 일치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앨범의 제목은 [Passenger, '여행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