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경기청년 갭이어 프로그램을 만나다

by 이다솜X김세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인류의 역사 중,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너의 열정을 따라가라'는 말을 듣게 된 건 근래의 일이다. 이 땅에서는 일백 년은커녕 채 반 세기도 되지 않았다. 나는 운 좋게도 비교적 최근에 태어난 덕분에 어릴 적부터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꿈을 쫓아가면 된다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는 말들 너머에 성적이나 성공 같은 게 비쳐 보일지라도, 진정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내겐 흥미로운 일이 한없이 많아 보였다. 진로 희망 조사서에 무엇 하나를 적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청소년이 되어서는 문과에 갈지 이과에 갈지를 두고 얼마나 끙끙댔는지 모른다. 배부른 소리라고 해도 할 말 없을 고민을 품고서는, 이제 막연히 전해지는 유럽의 교육 정책은 꿈만 같아 보였다. 세상에 갭이어(gap year)라는 게 있다지. 시간을 두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의 목표를 찾아간다니 너무나 부러웠다.


고민 많던 어린이는 순조롭게 고민 많은 어른으로 자랐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방황 중이었다. 슬슬 문어발을 하나로 모으기를 포기하면서, 관심 분야가 넓은 어른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중구난방이 자신의 핵심이라 인정한 청년에게 덜컹 날아든 소식이 있었다. 또 다른 경기도민 청년이 전해준 청년 프로젝트 이야기였다.

갭이어 포스터(FV).jpg 2023년 경기청년 갭이어 프로그램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기회!" 세상에, 이렇게 달콤한 말이 또 있을까. 들여다보니 경기도일자리재단의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적부터 경기도에 살아왔으니 넓게 보자면 경기도가 실질적인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주제와 인원에 제한이 없는 자율 프로젝트라니. 대개 이런 프로그램이 창업이나 취업 위주인 것과는 달랐다. 그러니까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모집 마감일까지도 프로젝트 주제를 두고 거듭 고민한 건 사실이지만, 아무튼 시간 내에 서류를 부쳤다. 국내 수많은 지자체에서 다양한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기획하지만, 이렇게 자율적일 수 있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았다. 내가 처음에 호기롭게 내놓은 계획서는 청년들의 워라밸과 일자리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자는 청년포럼 이야기였다. 제출한 서류의 내용을 살짝 보이자면 이랬다.



개요

보통의 청년에게 취업이란 관문은 문이 아닌 벽처럼 느껴집니다. 좋은 일자리란 한정되어 있고, 아무리 노력해 봤자 나는 남들에게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나의 일자리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어렵게 얻은 일자리를 잃거나 일터를 떠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누구나 '워라밸'이 좋은 삶을 꿈꿉니다. 그런데 살펴보면 이 말 안에서도 '일(Work)'이 '삶(Life)'보다 앞에 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면 좋은 일자리를 찾아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청년들 스스로 좋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모두의 일자리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표

(1) 일, 삶, 청년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직업과 삶의 관계를 고찰하고, 동시대 청년들의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2) '대기업'이나 '고소득'이 아닌 평범한 일터에서 하루하루 충실히 일하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3) 프로젝트 내용을 기록하고 번역하여, 이를 통해 국내외 청년과 꾸준한 네트워킹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세부내용

① 저자 또는 단체 강연 [일하는 삶의 자세(가제)]: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문화연구자 엄기호, 『출근길의 주문』, 『내일을 위한 내 일』 이다혜 기자, 『일할 자격』 기록노동자 희정 등 작가를 초청하여 진행하는 북토크

② 청년 토크 [청년들, 어떻게 일하고 있나요(가제)]: 인턴, 알바생 등 비정규직, 비영리단체 활동가, '문송'한 청년 등 기존과 다른 청년 패널의 일하는 삶 좌담회

③ 번역 배포 [한국, MZ세대, 일(가제)]: 활동, 강의 내용, 후일담 등 번역 후 웹페이지나 언론 등에 게시하여 동시대 타국 청년과 교류하며 네트워킹 지속



이 프로젝트 기획은 취업을 두고 좌절을 겪고 힘들었던 기억과 여전히 커리어를 두고 고민이 많은 심정, 그리고 또래 청년들과 교류하며 들었던 생각을 모두 정리해 놓은 결과였다. 그래서 내심 자신이 있었다. 일자리를 두고 고민하지 않아 본 청년은 단 하나도 없을 테고,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그런 청년들의 목소리를 모아보자는 거였다. 지원금이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이었다. 진심이 통한 것인지 다행히 면접 통보를 받았다.

KakaoTalk_20230905_132013122.jpg 면접일은 햇살이 내리쬐는 7월의 막바지 중이었다.

내게 사업 소식을 알려준 청년도 면접 안내를 받았다고 했다. 각자 꼭 붙자는 다짐을 나누고 면접심사 장소로 향했다. 면접이 이루어지는 곳은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경기도일자리재단의 남부사업본부였다. 대기장소에는 적당한 긴장과 설렘이 감돌고 있었다. 경기청년 갭이어 프로그램은 올해 1기와 2기를 선발했고, 두 기수는 딱 한 달의 차이를 두고 진행되었다. 나는 2기 참여자였다.


인원이 수백 명에 달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면접은 단체로 이루어졌다. 예상 질문과 답변을 머릿속에서, 입속에서 굴려본 후 면접장에 들어갔다. 면접자 각자의 프로젝트 계획이 사회에 어떤 가치를 주겠냐는 마지막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모으자는 일입니다. 긍정적인 가치를 찾자면 거기에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내가 프로젝트 목표를 몇 번이나 뒤집을지 모르는 채로.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