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장난을 그만두고 싶다면
누구든 숱하게 남의 고통을 목격하지 않는지.
남은 남일 뿐이라며 무심하게 고개를 돌릴 줄 아는 능력, 시선을 거두고 불안을 파묻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은 대개 잘산다. 그건 공기가 움직이면 바람이 부는 것처럼 자명한 사실이다. 이를 두고 그렇게 잘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맞냐고 캐묻는 말장난을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장난 바깥으로 가자는 장난을 치고 싶다. 잘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거두면 드러날 빈 자리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물론 여기에는 나와 남을 동시에 안심시킬 만한 말이 이어진다. 나도 잘만 살고 싶다. 어찌나 그러고 싶은지 가만히 있으면서도 숨을 헐떡일 때가 있다. 역사이 길이 남은 천재들이 남긴 프레스코화와 거짓말 같은 구름이 떠오른 남태평양을 보러가려면 나는 꽤 잘살아야 한다. 아름다운 가구와 조명을 알아보는 눈은 한 번 가지면 좀처럼 버려지지 않는 법이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배터리 공장에서 일어난 참사와 유가족들에 대한 기사를 클릭하면서. 만난 적 없는 타인의 사연을 읽고 청원에 이름을 올리면서. 물려받은 핏줄과 요람이 놓인 자리가 이스라엘의 증오를 샀다는 이유로 죽어가는 아기들을 보면서. 선을 긋는 것도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쉽게 눈 돌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는 주어지고 만다, 새로운 삶을 고안해낼 의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