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쪼개기를 그만둘래

이게 바로 번아웃일까, 그렇다면 분절에서 통합으로

by 이다솜X김세계

올해 추석 연휴는 며칠이나 이어진다. 보름달과 함께 10월을 맞았다. 푹 쉬고 밀린 할일을 해내면 마음이 풍성해질 것 같았는데, 왜 이렇게 매일 피곤한지 모르겠다. 산책도 가보고, 심지어 산에도 가보았는데, 집에만 돌아오면 몸이 축축 늘어진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이게 혹시 번아웃일까?


하지만 나는 많은 일을 하고 있을 뿐 그중 진심으로 싫어하는 일은 없는데. 업무에서는 좋아할 부분을 찾아냈고, 공부는 끔찍할 만큼 재미있는데. 사이드프로젝트니 뭐니 전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좋아하는 일을 하는 주제에 번아웃을 운운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이 피로감은 너무나 구체적인 형태로 지금도 내 어깨와 팔뚝 위에 얹혀있다. 무엇을 해야 피로가 씻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아참, 갭이어 프로그램에 기록할 내용이 쌓여가는데 언제 쓴담. 아참, 서울시에 내야 할 글도 많잖아. 아참, 성남시에 내야 할 글은 언제를 마감으로 잡을까.




나는 소셜미디어 계정이 많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트위터 계정도, 심지어 카카오톡 계정까지 여럿이다. 왠지 자꾸 나를 쪼개고 싶다. 여기에는 이 부분, 저기에는 저 부분을 보여주고 싶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부분만 드러내고 싶었다는 건, 되짚자면 그래야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건 일종의 수치심이나 강박증이라서, 이제 쪼개기를 포기해보려고 한다. 갭이어 프로그램이 실로 나라는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면, 이참에 나를 통합하여 드디어 하나로 뭉쳐봐야겠다. (여전히 어떤 면모는 가릴 수밖에 없지만 이에 대해서는 차차 말할 계기가 있을 듯하다.) 일단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겠단 이야기다.


그러자면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인생 전체를 되짚고 업데이트 하는 작업은 퍽 피곤하다. 지금은 당장 떠올릴 수 있는 프로젝트부터 떠올려본다. 올해 초가 벌써 까마득한 옛날 같다. 그럼 올해 여름부터는 어떨까. 엊그제 9월을 보낸 이 시점이 실은 적당할지 모른다.


그럼, 올해 여름부터는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의 '공익정보 아카이브 큐레이터' 활동을 시작했다. 젠더, 노동, 인공지능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쓰고 있다. 발행한 글이 많지 않은 까닭은 스스로에게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는 탓 같다. 기사와 논문을 여럿 찾아보느라 꽤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몇 편의 글을 남겨두고 있다.

b8e198558f7ec.png 당신 옆의 공익활동 (2023)

그러다 같은 센터에서 지원한 '7월은 쓰다'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어중간한 활동가로서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덕분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고, 고민을 나누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활동가 사이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있어서, 모두를 다시 만나 근황을 나누고도 싶다.


그걸 마칠 무렵, 8월부터는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에서 주최하는 '2023 저항하는 기술'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이건 또, 어중간한 창작자로 지내고 있었던 덕분이다. 여기서는 또래의 여성 창작자들을 잔뜩 만나 즐거웠다. 우리 실컷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다들 잘 지내나요,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흩어질 때의 아쉬움이란.


여기에 고민하다 더한 프로그램으로 '사이드프로젝트'라는 게 있다. 성남시의 야탑청소년수련관을 배경으로, 내가 늘 해보고 싶었던 낭독모임을 열기로 했다. 여기에 자신감을 더해준 프로그램은 또 성남시 꿈꾸는예술터에서 있었던 '위트앤시니컬_성남詩: 한여름밤, 시의 목소리'였다. 시에 대해서도 할말이 좀 있지만 나중에.


성남시 얘기가 나와서 보자면, 올해 성남시청소년재단이 주최한 '갓생클래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봄에 시작한 프로그램인데, 여기 참가한 덕분에 야탑청소년수련관이라는 공간에서 강의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서의 온라인 강의로 자연스럽게 흐름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 전부터는 성남시 청년지원센터의 '청년이 해봄'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여기선 내가 프로젝트 리더가 아닌데, 이 흐름 도중 엉뚱할 수도 있지만, 성남시를 배경으로 한 게임 시나리오를 엮어 게임북을 만드는 프로젝트로 지원해 선정되었다. 프로젝트명은 '성남RPG'이다.


한편 성남시여성지원센터의 '미소나래'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영화 평론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정지혜 영화평론가님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그때 들은 수업의 결과는 이 브런치에도 남아있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소공녀' 포스트가 실은 수업에서 제출한 과제였다.


내친 김에 경기도 안에서 들었던 교육도 몇 더 적어보자면, 광주시의 청년지원센터에서 여러 교육을 들었다. 면접 교육, 세무 교육, 투자 교육까지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수원시에서도 양질의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이다혜 기자님의 에세이 수업과, 엄기호 교수님의 이야기 수업이다.


개인적으로 해온 독서 모임이나 영화 모임 같은 건 따로 적지 않기로 하고, 올해는 이렇게 보내고 있다. 지금은 경기도일자리재단에서 주관하는 '경기청년 갭이어'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고 말이다. 적어놓고 보자니 조금은 지칠 만도 한가 싶다가, 그래도 그렇지 할일이 아직도 태산 같은데 싶다.


아무것도 새로 시작하지 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해놓고 계속해서 모임이나 사업 생각이 떠오르는 건 어떡하면 좋을까. 일단은 이것들을 해온 나를 여기에, 하나의 글에 모아놓는 데에서부터 시작해본다. 가을부터는 대학원 수업 청강을 시작했고, 수업에 가면 정말로 행복하다. 올해는 내 갭이어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작가의 이전글권유와 만류와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