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집을 세운다면

소공녀 (2017)

by 이다솜X김세계

집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려 본 날이 있는지. 그런 말은 생각의 속도보다 빨라서 입밖에 튀어나온 진심을 듣고 나서야 자신의 피로를 알게 되는 법이다. 그렇지만 집 안의 공기조차 나를 안아주지 못할 때, 혹은 최소한의 온기를 기대해 볼 지붕과 벽조차 없을 때는 어디를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하 스포일러)


미소는 홈리스다. 한국 국토교통부는 인간다운 주거를 위해 필요한 최소 면적을 1인 기준 14제곱미터로 정의했다. 기후위기와 빈부격차의 시대, 마음 놓고 숨 쉬고 잘 수 있는 공간이 그럴듯한 환경이길 바라서 누구나 각자의 방법으로 애쓴다. 집이 있다는 이들조차 바닥은 부채요 천장은 이자인 곳에서 마음껏 쉴 수는 없다.


미소는 빚도 집도 선뜻 포기한다. 애초에 둘 다 요원한 일이므로. 그런데 공간의 최소 단위인 몸조차 미소에게는 편안한 곳이 못 된다. 젊은 여자의 몸뚱이는 길바닥에 널브러질 자유가 없다. 그는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바닥 삼는 청춘을 누리지 못한다. 신뢰하는 친구의 집이라도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미소의 포기는 얼핏 산뜻해보인다. 그는 자신이 가진 건 무엇이든 충분한 안식처가 될 수 없음을 안다. 담배, 위스키, 연인만이 안식처인 삶이란 곧 능력이나 자산이라는 안식처를 기대할 수 없는 포기의 굴레다. 안식처가 될 수 없는 것들을 안식처로 삼은 미소는 친구들의 거절을 마주하다 이내는 관계라는 거처에서도 미끄러진다.

소공녀 (2017)

미소의 일터는 남의 집 안이다. 적어도 일을 할 때만은 편안하고 안락해 보이는 집 안에 있을 수 있다. 일터가 아니라도 미소에게 주어지는 그럴듯한 집은 늘 남의 집뿐이다. 시간을 들여서 휘발성이 아닌 취향과 생각을 쌓아갈 수 있는 남의 공간에서 남의 것을 정리하고 남의 때를 닦는 미소는, 어쩐지 그 일에 능숙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실은 세상살이라는 일 자체에 능숙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미소는 젊은 여자나 철딱서니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다. 그에게는 일종의 꼿꼿함이 있다. 빚도 자산 삼아 불려야 한다는 세상에서, 미소는 빚 없이 살겠다는 목표와 타협하지 않는다. 홈리스라는 상황에서도 친구를 위해 지붕 밑을 떠나고, 흥정하지 않고, 남에게 마음을 내어준다.


소설 <소공녀>의 세라 크루는 가족을 잃고 다락으로 쫓겨나서도 남을 헤아리고 상상을 펼쳐 불운을 가리는 인물이다. 세라에게서 보이는 어떤 품위는 자신과 친구, 이웃, 그리고 독자를 위로한다. 미소가 만들 수 있는 집은 그런 마음의 집이다. 세라와 같은 행운이 미소에게도 있기를 바라게 되는 따뜻한 마음이, 미소에게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