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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Nov 23. 2020

수많은 이를 매료시킨 중세의 여인 조각상

Q. 당신을 미술계로 인도해준 어느 특정한 순간이나 경험이 있습니까?     

A. 그건 무척이나 어려운 질문입니다. (중략) 하지만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이야기가 있으니 그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것은 나의 첫사랑으로, 사실 책 속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움부르크 대성당에 있는 우타 후작 부인입니다.      



2015년 6월, 이 사진을 만나는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역사상 최장수 관장이었던 필립 드 몬테벨로의 첫사랑 고백은 제게도 마찬가지 감정을 불러일으켰죠. 저는 이 조각상에 완전히 넋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사진으로만 보았는데도 말이죠.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느낌이 휘말렸다고 해야 할까. 필립의 대답을 더 들어봅니다.     


A. 나는 그녀를 여자로서 사랑했습니다. 내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앙드레 말로의 《침묵의 소리 Les Voix du Silence》를 집으로 가지고 오셨습니다. 네 가지 색조로 멋들어지게 표현된 흑백 도판들을 훑어보던 내 눈앞에 우타 부인이 나타났습니다. 높이 올라온 아름다운 깃과 부은 눈꺼풀을 가진 그녀는 마치 사랑의 밤을 보낸 듯했습니다. 대성당의 서쪽 성가대석 높은 곳에 있어서 가까이 볼 수 없었던 그녀가 그때는 내 손안에 있었습니다.     


이 목가적인 대화를 수록한 책 《예술이 되는 순간》(디자인하우스, 2015)에는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의 《침묵의 소리》에 나오는 똑같은 도판이 그대로 실렸습니다. 필립 역시 책에 실린 사진을 보고 번개가 치듯 강렬한 감정적 끌림을 체험했던 것이죠. 그 책을 펼쳐보고 싶어 우리말 번역본이 있나 찾아봤더니 완역본은 없고 다만 《침묵의 소리》 1장을 수정해서 번역한 《상상의 박물관》(동문선, 2004)이란 책이 나와 있더군요. 이 책에 문제의 도판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필립의 대답을 마저 들어봅니다.     



A. 나는 지금도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 그녀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녀를 매혹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장미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자 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유럽 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가운데 누구와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죠.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나움부르크의 우타와 함께하고 싶군요.” 이런 대가조차도 숨길 수 없었던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조각상 속 여인 ‘우타’를 다시 만난 건 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의 책 《난생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사회평론, 2017)에서였습니다. 

    

에크하르트 2세와 우타, 1240~1250년, 나움부르크 대성당


책이 나온 것이 2017년이니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고딕 미술의 역사에서 우타 조각상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더군요. 독일 나움부르크 대성당에 있는 우타 조각상은 당시 이 지역의 영주였던 에크하르트 2세와 나란히 성가대석 뒤쪽에 빙 둘러서 있는 성당 건립 기부자들 사이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움부르크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일 뿐만 아니라, 독일 고딕 조각이 정수로 찬사를 받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죠.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가 우타 조각상을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고, 미국과 독일은 사이가 좋지 않았죠. 그래서 미국의 영화 제작사가 독일을 상징하는 여인 우타를 나쁜 왕비로 표현했다는 겁니다. 우타의 얼굴은 그 뒤에 나치의 선전에 이용되기도 했으니, 700여 년 전의 조각 하나가 후대에 끼친 영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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