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Dec 29. 2019

토르부터 로키까지…북유럽 신들의 이야기

H. A. 거버 《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2015)

새로운 소재에 목이 말랐던 할리우드는 기어이 북유럽 신화에 눈을 돌립니다. 영화 <토르> 시리즈가 그렇게 탄생했죠. 뿐만 아닙니다.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 <나니아 연대기>도 북유럽 신화에서 이야기를 가져 옵니다. 한없이 생소하기만 했던 북유럽 신들이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스며들고 기억됐죠.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힘입니다.


신화는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의 샘입니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신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스 로마 신화와 달리 북유럽 신화는 좀 더 비극적인 줄거리를 품고 있다고 알려져 있죠. 죽음을 모르는 다른 신화의 신들과 달리 북유럽의 신들은 인간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이었습니다. 좀 더 인간적인 신들이었죠.


스웨덴의 조각가 벵트 엘란드 포글버그(Bengt Erland Fogelberg)의 <토르>와 영화의 한 장면


북유럽 신화에서 모든 신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신은 오딘(Odin)입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 자기 한 쪽 눈을 기꺼이 뽑아버린, 그래서 태양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 바로 그 신입니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를 대표하는 신은 토르(Thor)입니다. 망치를 든 이 수호자는 고대 북유럽인들에겐 가장 큰 숭배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요일 이름으로 이 위대한 신을 기억했습니다. 토르의 날(Thor’s day)은 목요일(Thursday)로 남았죠.


영화에서 토르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로키(Loki)는 영화가 묘사한 것처럼 잔꾀와 술수에 대단히 능한 신이었습니다. 장난꾸러기에 사고뭉치였죠. 오죽했으면 다음과 같은 시 구절이 남아 있을까요.


오딘의 전당에 찾아오는

모든 문제는

원인을 찾아보면 로키가 나오네.


영화에 등장하는 북유럽의 신 ‘로키’와 ‘헤임달’


이 책을 읽어 보면 영화에서 묘사된 신들의 캐릭터가 신화의 기록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결정적인 순간 아스가르드의 수호자이자 토르의 조력자로 맹활약을 하는 헤임달(Heimdall)은 모든 신으로부터 사랑받았다고 할 정도로 선한 신으로 그려집니다. 반대로 악한 신을 대표하는 로키의 악행 역시 신화의 기록 그대로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서로 다른 신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야기의 친연성(親緣性)입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제목으로도 알려진 발키리(Valkyr)는 전사자를 선택하는 이였습니다. 오딘의 특별 수행원으로 전투가 벌어지면 전사자의 절반을 골라 말에 태우고 돌아오는 것이 임무였죠.


영국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존 찰스 돌맨(John Charles Dollman)의 <말을 탄 발키리(The Ride of the Valkyrs)>


발키리들은 평생 처녀로 살았습니다. 여기서 ‘사연’이 탄생하죠. 인간세상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잦다 보니 가끔 조용한 곳을 찾으면 백조 깃털로 만든 옷을 벗어던지고 목욕을 즐긴 겁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죠. 어느 날, 발키리들이 목욕하는 틈을 타 삼형제가 백조 옷을 감춰버립니다. 지상에 발이 묶인 발키리들은 꼼짝없이 삼형제의 아내가 되죠. 이후 9년 동안 부부로 살다가 결국은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북유럽 신화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놀랍도록 흡사한 이야기죠.


또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바이킹이 덴마크 땅을 침략해 ‘마법의 맷돌’을 손에 넣습니다. 노예들을 배에 태워 쉴 새 없이 소금을 만들어내라고 하죠. 그렇게 엄청난 양의 소금이 쌓이자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배가 그만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립니다. 이때 어마어마한 소금이 온 바다로 퍼져나갔고, 그때부터 바닷물에서 짠 맛이 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우리 구전 설화에 나오는 바로 그 이야기와 꽤나 비슷합니다.



우리 옛 이야기와 닿는 부분들이 대단히 흥미로운 다가옵니다. 다시 말하지만 신화는 모든 이야기와 생각들의 뿌리입니다.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의 원천이죠. 이 시대의 문화와 예술이 북유럽의 신화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지는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지만, 그걸 만들어내고 기록한 이는 결국 인간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옛 기록에서 아픈 역사를 마주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