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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Nov 22. 2019

“그림은 짧고 고통은 길다”

노원희 <얇은 땅 위에>(학고재갤러리, 2019.11.08.~12.01)

“내가 생각하는 현실은 얇은 땅입니다. 나는 그 위에서 내 머리 속에 있는 입을 벌려 세상사를 삼킵니다. 그 세상사 중의 일부를 캔버스에 붙들어 놓는 것이지요.”


‘얇은 땅 위에’ 발을 딛고 선 현실은 위태롭습니다. 불안하죠. 자리 잡지 못한 것들은 끊임없이 깃들 곳을 찾아 떠돕니다.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시인과 소설가는 그런 현실을 글로 표출하고, 화가는 붓을 들어 화폭에 그려냅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시대의 기록자이기도 하겠죠.


서양화가 노원희는 동시대의 역사, 세상살이, 그리고 사건들을 담담하게 화폭에 담아온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노원희의 그림은 어둡고 무겁습니다. 캔버스에 가득한 현실 자체가 더없이 어둡고 무겁기 때문이죠. 화가의 붓은 명확하게 동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얇은 땅 위에,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채, 162.1×130.3cm×2


전시 제목이기도 한 ‘얇은 땅 위에’는 캔버스 두 개로 이뤄진 작품입니다. 단단하고 높은 단절의 벽 왼쪽 아래 무릎 꿇고 엎드린 이들이 보입니다. 화가가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의 시위 모습을 보고 그렸다고 합니다. 굴복하고 체념한 모습이죠. 대각선으로 시선을 옮기면 벽 너머 위에 양복 입은 남성이 서 있습니다. 그 앞에서 뭔가를 들고 호소하는 한없이 작은이의 외침이 과연 들리기나 할까요. 힘세고 완고한 권력자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 민중의 초상입니다.


그 아래에 보이는 연못처럼 커다란 구덩이는 싱크홀을 참고해서 그렸다고 합니다. 한없이 연약한, 그래서 부서져 내리기 쉬운 얇은 땅 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것이 바로 화가가 목격한, 우리가 딛고 선 세계의 모습입니다.


기념비 자리 2,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162.1cm


이 그림에 표현된 이미지는 위의 것보다 더 직접적이고 선명합니다. 화폭 한가운데 둔중하게 솟은 검은 구조물이 보이고, 그 아래 모인 사람들은 할 말이 많은 듯 저마다 손에 종이를 들고 있죠. 군데군데 묘소를 연상시키는 작은 둔덕들도 흩어져 있고요. 그리고 얼굴 없는 사람들 사이에 안전모와 마스크를 쓴 이가 보입니다.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입니다.


얼마나 많은 죽음이 더 필요한 걸까. 죽은 이들의 육신을 묻은 땅, 그리고 그런 죽음들 사이에서 고통 받는 산 자들의 외침. 화가는 바로 그 자리에 묵묵히 기념비를 세웁니다.


광장의 사람들,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162.1cm×2


광화문 촛불집회를 소재로 한 그림입니다. 집회 현장에 나온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이런저런 자세로 형상화한 뒤 사이사이 여백에 이름을 빼곡하게 적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삼성반도체 산재 희생자, 민주언론시민연합 후원회원과 주변 인물 등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 넣은 겁니다.


안 들리는 경고, 2019, 캔버스에 유채, 130.3×162.1cm


이 그림 역시 광화문 촛불집회를 소재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다른 집회 현장으로 볼 수도 있겠죠. 화면의 먼 쪽을 향해 앉아 있는 사람들 너머로 형태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람의 벽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 형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답답한 현실의 한 단면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그림 제목은 이렇습니다. ‘안 들리는 경고’


노원희의 붓질은 연대의 촉각적 감각이다그러나 그녀의 붓질이 작품 속 인물을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보며 그 고통에 반응하는 행위라는 섣부른 해석으로 향해서는 안 된다그것은 개개인의 삶을 촘촘히 바라보며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지각색 모양을 충실히 담아내려는 작가의 태도이자 정서라고 할 수 있다.” - 장파 인간의 삶그림의 쓸모』 중에서


노원희 작가의 그림을 처음 접한 건 2017년 개인전에서였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평생 무거운 소명의식을 안고 캔버스 앞에서 늘 치열하게 그림을 그려온 작가일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언젠가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힘없는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화가의 말이 더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옵니다.


희생자피해자들의 인생에 가해진 무겁고 무거운 고통의 무게와 그림에 실린 나의 진정성이라는 것의 가벼운 무게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아무리 생각해도 그림은 짧고 고통은 길다.”


머리가 복잡하다, 2018, 캔버스에 유채, 132×230cm


그런 인간적 고뇌, 예술적 고민이 녹아든 작품입니다. 화폭 안에서 여러 모습을 한 사람들은 결국 화가 자신이죠. 여러 자아가 이런저런 모습으로 번뇌하고 있습니다. 자화상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는 화가가 이례적으로 화면 아래에 자신의 모습을 명료하게 그려 넣었습니다. 배낭 메고 시장 다녀오는 평범한 일상인으로서의 나.


1960년대 후반에 대학시절을 보낸 작가는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사회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을 이끈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한 이래 줄곧 삶과 예술이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뚜렷한 소신을 견지해온 보기 드문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91년 이후 두 번째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는 화가가 1995년부터 2019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 38점이 선보입니다. 


한숨,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80.3×100cm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문학의 쓸모’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문학은 무지(無知)를 추문(醜聞)으로 만든다고. 그림의 쓸모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좋은 그림은 우리가 몰랐던,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불편한 현실이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노원희의 그림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밀려난 이들뿐 아니라 실은 우리 모두의 삶이 ‘얇은 땅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일깨워줍니다.


■전시 정보

제목: 노원희 개인전 <얇은 땅 위에>

기간: 2019년 12월 1일까지

장소: 학고재갤러리 전관

작품: 회화, 설치 등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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