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⑥크리스마스 스페셜 <마음을 잇다.>
2011년과 2012년 부산, 토마토, 미래, 프라임 등 부실저축은행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창고 등에 방치돼 있던 고가의 미술품이 대거 발견된다. 이 미술품들이 경매회사를 통해 팔리면, 돈은 부실저축은행 피해 예금자에게 배당된다.
예금보험공사가 올해 11월 말까지 매각한 미술품은 모두 8천 16점. 이를 통해 240억 원을 회수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미술품 가운데 예술성과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미술품 19점을 이번에 판매와 경매에 부친다. 동시에 일반 관람객에게도 무료 전시를 통해 작품들의 면면을 공개했다.
이 전시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는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중 한 명인 제프 쿤스(Jeff Koons)의 <Encased-Five Rows>. 1983년부터 1993년까지 10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농구공과 축구공 30개를 진열장에 가지런히 모았다. 제프 쿤스의 여러 연작 가운데 하나인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시리즈 가운데 완성도가 가장 높은 작품이라고 한다. 즉시 구매가 16억 원, 경매 출품가 14억 4천만 원으로 전시작 19점 가운데 역시나 몸값 1등이다.
제프 쿤스의 또 다른 작품 <Cow (Lilac) : Easy Fun>(1999)도 눈길을 끈다. 소머리 형상의 작품 앞에 서면 반짝이는 표면에 내 모습이 그대로 비친다. 제프 쿤스의 작품에는 이처럼 표면이 거울처럼 관람객을 비추는 것이 꽤 많다. 처음엔 이게 뭐지 하다가도 놀랍도록 반들반들한 표면을 자꾸만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리움미술관 달걀, 신세계 명품관 옥상 하트도 그랬다.
작품이 가장 많이 출품된 작가는 프랑스계 포르투갈 미술가 조안나 바스콘셀로스(Joana Vasconcelos). 일상의 오브제와 재료를 활용한 그의 작품은 기발한 상상력과 독창성, 위트와 완성도까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제2의 루이스 부르주아라고 불리기도 한다고.위 사진은 1층 전시장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바스콘셀로스의 작품 <Sugar Baby>이다.
1층 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섬유를 재료로 한 작품 <Victoria>, 캔버스에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포장재를 붙여 완성한 <Hyperconsumption>, 콘크리트 조각에 아크릴 페인트와 섬유로 완성한 <Romeo>가 관람객을 맞는다. 3층에는 헝겊을 매듭처럼 길게 연결한 가로 10m짜리 대형 작품 <Pantelmina #2>, 목욕탕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타일로 만든 배 모양의 작품 <Barco da Mariquinhas>이 전시장 벽과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바스콘셀로스의 작품만 6점. 저축은행 한 군데서 나온 게 틀림없다.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풍크(Phunk)의 작품도 두 점이 선보인다. 이들은 동양적인 요소와 현대 디자인을 결합한 독특한 그래픽 작품으로 현대 도시의 역동성과 전통적 요소 사이의 조화를 꾀한다.
중국 전통 공예부터 철학과 민속학, 홍콩 무협지, 일본 만화와 오타쿠 문화, 서구 대중문화 등 광범위한 문화적, 예술적 자산을 작품 안에 끌어들였다. 1층의 <Control Chaos (Golden Age)>와 3층의 <University II in Duotone Red>을 보면, 이들만의 확실한 개성을 볼 수 있다. 작품을 뜯어보다가 문득 얼마 전 작고한 김정기 작가를 떠올렸다.
중국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 겅슈에(Geng Xue)의 작품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삶과 죽음의 순환 등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동양의 전통과 현대적 요소를 결합해 도자기와 애니메이션 등으로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
따로 제목이 없는 출품작 석 점은 접시처럼 납작하고 둥근 백자 위에 형상을 빚어 넣고 청화 안료로 장식한 것들이다. 각도에 따라 여러 얼굴을 보여주는 독특한 작품이다.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는 가는 철사 망으로 사람과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박성태 작가의 작품 두 점, 먼지로 도시 풍경을 그려내는 강상훈 작가의 독특한 작품, 파랑을 주조로 한 홍원석 작가의 풍경화, 김태연 작가의 소품 인물화를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은 전시장에서도 구매할 수 있고, 12월 30일부터 내년 1월 9일까지 진행되는 케이옥션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에도 오른다.
뮤지엄 웨이브는 우리옛돌박물관 건물 내 전시공간이다. 그래서 실내 전시를 다 본 뒤 4층을 통해 밖으로 나오면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빼어난 경치와 더불어 야외 공간을 빼곡하게 수놓은 석물들을 감상하는 안복(眼福)을 누릴 수 있다. 단언컨대 눈이 호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