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㉟ <2024 전국대전 현실유머>
서울지하철 3호선 불광역 근처 먹자골목 안쪽, 도무지 미술 전시장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낡은 벽돌 건물. 미술의 불모지나 진배없는 이곳에 ‘아트스페이스 신사옥’이라는 전시공간이 있다. 건물 1층의 요란한 식당 간판과 대조적으로 2층 창문에 붙은 ‘신사옥’이라는 글자가 수줍다. ‘신사옥’은 이지영, 옥정호 두 작가가 운영하는 곳이다.
두 사람은 한국 미술의 미래를 이끌어갈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 지난해 가을부터 전국 50개 미술대학 졸업 전시를 일일이 찾아가 관람하고, 심의를 통해 신진작가 26명을 가려 뽑았다. 그 많은 전시를 다 봤다는 것부터 대단한 열의가 아닐 수 없을뿐더러, 그 많은 미술대학 졸업생 중에서 26명을 선택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으리라.
한해 미술대학이 배출하는 졸업생의 숫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 훗날 작가로 살아남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들에게 현실의 벽은 얼마나 높고 단단한가. 바늘구멍보다도 작은 성공의 문을 통과하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선택된 26명이라고 해서 작가로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들은 다만 아주 작은 ‘기회’를 운 좋게 얻었을 뿐이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전시를 관람할 여력이 안 돼, 직접 설명해주겠다는 운영자들의 호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작품을 눈에 담았다. 섣부른 평가를 유보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려 한다. 작품 설명은 전시 안내 책자에서 작가들의 말을 최소한으로 다듬어 굵은 글씨로 표시한다. 작가의 말이 아닌 것에는 따옴표를 넣지 않았다.
“미대생인 ‘나’는 사주의 힘을 빌려 예술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날을 받는다. 길일에 발표한 ‘나’의 영상은 사주와 DNA 검사의 유사성을 다룬다. 브레이크 댄서와의 인터뷰는 선형적인 자본주의의 시간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타임라인과 연결된다. 사주를 통해 계산한 지구의 예상 수명이 기후학자들의 예측과 일치한다는 사실(믿거나 말거나)에도 체념 대신 물구나무를 준비하는 브레이크 댄서의 메시지는 개인이 운명애(運命愛)를 통해 자유를 찾는 길이 된다.”
“우리는 상상을 하고 잊어버린다. 촉매를 따라 만들어지는 기억들은 흩뿌려진 채로 잊힌다. 여기서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 중 기억이 가장 중요하다 말한다면, 결국 기억들, 즉, 우리의 일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의 나, 잃어버리는 나를 작업을 통해 붙잡아본다.”
“우리가 살아가며 알게 되는 것들은 대부분 아주 파편적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프레임 뒤가 훤히 보이는 세상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이야기들 혹은 억지로 사각지대로 밀어 넣어진 이야기들이 정말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남이 만든 프레임과 내 시야가 만들어내는 프레임들, 과연 이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디까지 보고 있는 것일까?”
“주 69시간 노동 법제화가 발단이 돼 시작한 작업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가 겪고 있는 과로, 고용 불안정, 패턴화된 삶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삶이 피폐해가는 것은 사유할 시간도 없이 분주하게 일어나는 신체 작업 때문이 아닐까. 불을 켜는 스위치들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그 순간에도 노동은 이루어진다. 깊이 잠든 사람들과 무관하게 도착해 있는 택배 상자처럼.”
“이 작품은 내가 진행해온 시대를 아우르는 문화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작업 중 하나다. 아르바이트는 친구들과 항상 모이면 나오는 대화 소재다. 아르바이트로 우리가 여러 경험이 쌓여 성숙해지는 밑거름이 되었고, 지금의 우리가 된 모습을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는 20대 청춘들을 찾아가 내가 만든 ‘이달의 알바생’ 플래카드를 작성하게 하고 그것을 들고 있는 상태로 촬영을 진행했다.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은 상장을 받은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났을 때 과학자와 의사는 백신을 만들고 환자를 치료했다. 이태원 사태가 벌어졌을 때 애도 기간에 예술가는 모든 활동을 중단당했다. 이 세상에서 예술의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을 시작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것, 가장 원초적인 것으로는 의식주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을 중시한다. 살아가기 위해선 가슴속에 무언가를 지피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의 시작과 발전 과정을 본 적이 있는가? 종교와 예술이 인간을 어떻게 나아가게 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은 하나였어도 이들은 점차 변해간다. 마치 본능처럼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종교를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무엇이든 입맛대로 바꾸면 어떤가. 그게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일상적으로 입는 옷 위에 스타킹을 신어도 그런 시선이 작용했을까?’ 페티시는 특정 물건이나 신체부위 등에서 성적 쾌감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체를 잘못으로 여기기보다는 본인의 성적 만족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경험한 피해는 오랜 기간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고, 이를 극복하고 비판적으로 해석해보고자 한 것이 작업의 동기가 되었다. 스타킹을 오브제로 이용해 전면에 내세웠다.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저 의복의 하나일 뿐, 신는 주체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섹슈얼적으로 소비하는 현실을 문제 삼아 관습적인 성 담론에 도전한다. 어떤 복수심으로 시작한 작업은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통해 전통적인 남성의 시선을 해체시키고 나의 권리를 주장한다.”
변다효는 평소에 사물을 관심 있게 바라보며 쓰임새와 목적, 조형적 해석, 이를 가능케 하는 구조와 재료를 분석한다. 이는 그의 작업이 지속되게 하는 근원적 재료가 되며, 사물의 이미지를 흉내 내 제작하는 과정에서 원본과 달리 선택한 재료와 제작 방식으로 새로운 조각을 만들어낸다. 이 결과물이 가진 원본의 이미지는 기시감을 유발하고 원본의 목적과 기능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작가가 선택한 연약한 재료가 접합의 제작 방식으로 인해 이를 다하지 못한다. 관객들은 이를 보며 기대했던 것을 찾을 수 없음과 동시에, 작가를 대변한 담론만이 제시됨을 알게 된다.
“신체 중 특징적인 부분을 선택해 본다면 3cm 정도로 작고 크기가 모두 비슷한 발가락입니다. 이 발로 제가 사는 공간을 채워 보았을 때 75개의 발로 이루어진 작은 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요즘 사는 방에서 나와 주변을 산책하고 유영하는 것을 즐깁니다. 여행을 다니며 영감을 얻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주변 풍경에서 외국인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계기로 만난 인도인 친구 슈(shu)와 나눈 대화를 시작으로 작업을 풀어나가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그에게서 들은 고향 이야기나 카슈미르 지역에 대한 상상으로 작은 드로잉과 평면 작업을 제작해 나갔습니다. 사는 방이 대략 100만 개가 이어진 거리에서 온 그를 매개로 미디어에서 접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세계와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를 찾아 나가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죽은 것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우리가 흔히 죽음을 비극적이고 두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살아있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무언가가 생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은 아주 잠깐뿐이며 곧 다시 죽은 상태로 돌아간다. 죽음은 오히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고, 생명이 이상하고 특별한 것이다. 마트의 고기들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랩에 감긴 시체들이다. 우리의 삶과 분리된 죽음이다. 이 죽음을 나열해보았다. 우리가 타자화된 죽음을 방관할 때의 감정은 무엇일까. 죽음은 어떤 식으로 내 삶에 들어오는가.”
“돌아가신 엄마를 애도하면서 과거와 현재에 대한 시차를 보게 됐다. 왜곡되거나 말소된 장면들을 사우나라는 공간 속에 그대로 담아냈다. 사우나라는 공간의 내밀함이 비극의 삶들을 희극으로 녹여낸다. 부항을 떠서 얼룩진 등을 보며 서로의 때를 밀어주고, 촌스러운 브라자와 늘어난 빤쓰를 보고, 숨겨 놓았던 뒤틀리고 후덕한 몸을 보여준다. 그때는 끓는 것 같았던 탕이 지금은 따뜻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습윤한 공기 속에서 엄마의 등을 봤을 때 왜 그렇게 쓸쓸해 보였는지, 엄마는 왜 그런 등을 하고 있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른다. 애도라는 것은 결국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을 계속해서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상반되는 개념이라도 공존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반되는 개념을 진료 현장에서 표현하고자 했으며, 혼돈은 극한의 협조도가 낮은 환자에게서, 질서는 진료팀원이 하나가 되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을 통해 ‘혼돈 속의 질서’를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오랜 시간 나 자신을 미워했다. 나는 이러한 ‘자기혐오’의 감정을 ‘지옥’과 같다고 생각했다. 길고 무거운 시간이었지만, 나의 부정적인 부분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좀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미워지는 때가 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완벽하지 않고 우울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지옥’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지옥’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부족함과 부정적인 부분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성장과 배움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지능이 뛰어나고 현명한 동물이지만 행동까지 올바르지는 못한다. 동물에게 잘못된 환경을 제공하거나 돈으로 환산되는 것 등,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며 이것의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동물원이다. 우리가 만약 현시대 동물원의 동물이라면, 마치 누군가 나를 스토킹하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우리의 사생활은 누구에게 어떻게 보호되는지 생각해 보아라. 또한, 동물원의 동물은 과연 울타리에 갇혀 지내고 싶은지, 인간과 동물의 입장을 바꿔 보았을 때 인간이 느낄 감정이 무엇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반성하길 바란다.”
“눈앞의 신체는 스스로 가격하여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저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출발점이자, 장소로서의 몸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문자언어로 표현되는 ‘나’와 실제로 존재하는 ‘나’ 사이에는 단면과 전체만큼의 간극이 있습니다. 몸 덩어리 자체는 사회적인 구분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을 감각하는 일상적 ‘나’는 그런 구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먹고, 싸고, 자고 사랑하는 것처럼 그저 신체를 가진 존재 즉, 인간으로서 신체를 가지고 산다는 감각에 저는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통제는 인간의 가장 큰 본능 중 하나다. 사람이 욕구를 가지고 각자가 원하는 대로 말하고, 상황을 만들고, 행동하고자 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 또한 그것이 생존하기 위한 방식으로 통제를 사용하는데, 이는 사회의 발전에 목적을 두고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를 바탕으로 회화 작업 <통제된 풍경>은 고도화된 과학 기술과 인간의 다양한 삶의 현장이 공존하는 공간인 공항을 소재로 시각적인 통제를 통해 그 공간이 지닌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강승호는 건축적인 요소를 통해 사회의 구조, 세대론을 다룬다. ‘하수도’는 사용한 오․폐수가 흘러가도록 만든 설비로 신체 기관 중 ‘항문’이 갖는 역할과 형태적인 유사성을 갖는다. <: o scopy>는 어떠한 결함이나 오류로 인해 ‘방향감각을 상실한 공간’에 들어가게 된 한 인물의 서사에 집중한다. 작가는 하수도를 항문으로 상정하고 ‘대장 내시경(colonoscopy)’같이 내부를 탐색한다. 작가는 그곳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를 보인다. 하지만 하수도라는 건축적인 공간에 의해 일상성은 탈각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광덕시장은 우리가 아는 시장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시장의 기능은 사라지고 현재는 일반적인 건물만 남은 형태를 띠고 있다. 주차장으로 쓰였던 건물의 옥상은 주변 주민들의 공용공간이 되었고 주민들은 옥상에 올라와 산책하고, 대화를 나누고, 식물을 기르고, 담배를 태우고 커피를 마신다. 시장이라는 공간의 용도가 변해가고 사람들이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나는 그러한 변화의 모습에 흥미를 느낀다.”
“전정자 할머니는 30대에 남편을 잃고 홀로 사 남매를 키우셨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일하며 사원과 자식들을 먹여 살리던 손은 자연히 주름졌다. 막내아들의 결혼식, 그 후련한 과거를 뒤로한 채 액자 앞에 앉은 할머니의 모습은 드라마가 된다. ‘독백극’은 연극 무대에 덩그러니 놓여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는, 할머니의 응축된 세월이다. 시집오신 이래로 평생을 살아오신 밀양 강변의 풍경만큼이나 많은 것이 변했고 무수한 기억이 얽혀 있을 테다. 자정이 넘도록 쉬이 잠들지 못하신다는 할머니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계신다.”
“가깝고도 먼 중국 동북지방, 중국어로는 ‘동베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100여 년 전, 가난과 핍박을 피해 조선의 이주자들이 이곳에 왔다. 소수민족이라 일컬어진 이주민의 계승된 생존 방식은 어느덧 과거를 잠재한 채 여행자의 얼굴로 남는다. 관음적 시선으로 타지의 풍경을 바라보는 여행자와 시대를 거쳐 변모하기에 이르는 이주한 사람들의 기억은 여성 내레이터의 음성으로 하나 된다. 뿌리 의식은 무익하지만, 타국의 한 아이는 국가라는 영토적 경계선을 횡단하는 하나의 조감도를 상상한다.”
박예원 <평생 후원 이사>, 2023, 영상, 단프라 박스, 10분 30초, 70×50×40cm
“이전의 이사는 마치 포탈처럼 원래의 집에서 나와 새로운 집으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이사를 여러 번 다녔으나 항상 포장 이사 센터를 이용했기에 짐을 옮기는 실질적인 이사의 경험은 없다. <평생 후원 이사>라는 새로운 이삿짐센터를 소개하고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 구한 두 달짜리 초단기 임대 원룸으로 이사한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자전거에 짐을 싣고 달리는 무식한 이사 노동을 한다. 이동하며 이전의 집들과 나의 관계를 정리하고 집으로, 집으로 나아간다. 파란색과 초록색을 이용하는 크로마키는 같은 배경에 다른 이미지를 손쉽게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집에 짐을 채우는 이사와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