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㊶ 칸옥션 제32회 미술품 경매
칸옥션은 한국의 고미술품 전문 경매회사다.
최근 들어 좋은 물건을 시장에 많이 소개한다.
젊은 운영자 두 분도 강단 있고, 정직하며, 성실하다.
앞으로 주목해보면 좋겠다.
가장 먼저 주목해봐야 할 것은 고미술 전문가가 새로 발굴해 이번 경매에 처음 소개하는 숙종대왕의 글씨 두 점이다.
숙종은 즉위한 뒤 줄곧 창덕궁에 머물지만, 정국이 혼란스러우면 경희궁에 가서 지내곤 했다고 한다. 경희궁에는 승휘전(承輝殿)이란 전각이 있었는데, 이곳은 광해군이 경덕궁을 영건할 당시 세자가 머무는 동궁으로 지은 것이다. 1698년 승휘전에 불이 나 나인(內人) 두 명이 세상을 떠났다. 숙종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애통한 마음에 글 한 편을 썼다. 숙종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는 귀한 유물이다.
承暉殿先自天廚起火 深夜蒼黃未及走避
兩內人燒死尤可驚慘
萬丈烈炎連斗牛 可憐白骨燼餘收
無限煩寃無處觧 天陰兩濕聽啾啾
승휘전이 수라간에서부터 불이 나 한밤중에 창황하여 달아나지 못하고
두 나인이 불타 죽었다고 하니 더 놀랍고 참담하였다.
만 길이나 되는 거센 불꽃 북두성에 잇닿을 듯, 가련하다 불타고 남은 뒤 수습한 백골이여.
한없는 번뇌와 원통함 풀어줄 곳 없고, 어둑해지자 내리는 빗방울 소리만 후득 후득.
숙종은 경희궁에 새로 정자를 짓게 하고 가끔 들러 관악산을 바라보며 꽃놀이를 즐겼다. 1704년 갑신년 겨울의 일이었다. 이때 광명전(光明殿) 서쪽에 지어진 정자를 춘화정(春和亭)이라 했다. 준공 때는 가보지 못했고, 이듬해 8월 중순 마침 영소전(永昭殿)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처음 정자에 든다. 경매에 나온 두 번째 유물은 이때 친필로 지은 시다.
歲在甲申之冬 爲治亭舍于光明殿之西 命名春和
越明年秋八月中旬 有事于永昭殿 遂臨此亭
新閣崢嶸暎翠南 霜天秋色葉先含
使人一上忘歸意 佳景今辰正賞堪
갑신(1704)년 겨울, 광명전의 서쪽에 정자를 짓게 하고 이름을 춘화정이라 하였다.
이듬해 가을 8월 중순에 영소전에 일이 있었기에 드디어 이 정자에 임하였다.
새집이 영화당, 취한정 남쪽에 우뚝도 하니, 서리 내린 하늘에 잎이 먼저 가을빛 머금었네.
사람 시켜 한 번 오르게 하니 돌아갈 뜻 잊었다나, 아름다운 경치를 오늘 아침에야 즐긴다네.
기왕 임금의 친필이 나왔으니 정조대왕의 글씨도 함께 소개한다. 이 글씨는 정조대왕이 세손 시절이던 14살 때 쓴 것으로, 1765년(영조 41) 10월 11일 경현당(景賢堂)에서 거행된 수작례(受爵禮)에서 영조가 지은 시에서 깊을 심(深) 자를 운으로 받아 지어 올린 것이다. 뜻을 풀면 “잔치에 모시며 술잔을 바치니, 경축함이 매우 깊도다”이다.
그림으로는 조선의 마지막 초상화가 석지 채용신(蔡龍臣, 1848-1941)이 그린 <태호 정영원 초상(台湖 鄭榮源 肖像)>이 단연 주목된다.
정영원(1853~1940)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일찍이 노사 기정진(奇正鎭, 1798~1879)과 송사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경전에 해박했다. 바른 학행을 몸소 실천하여 주변에 명성이 높았고, 이에 학행으로 천거돼 유릉참봉(裕陵參奉)을 지냈다. 부모를 섬길 때나 선조의 덕업을 받들 때 모두 정성을 다하고 공경했으며, 말년에는 고향에 태호정(颱湖亭)을 세워 후학을 길렀다. 전북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472-1번지에 정영원 시은비(鄭榮源施恩碑)가 세워져 있다.
초상화의 일인자답게 얼굴의 잔주름과 요철, 수염 한 올까지 대단히 섬세하게 묘사해 살아 있는 인물을 대하는 것처럼 생동감이 가득하다. 작품 보존 상태가 매우 우수하고 장황 또한 처음 제작된 형태 그대로 보존돼 있어 사료적으로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초상화와 함께 정영원의 아들인 농산 정휴탁의 호패, 정휴탁의 아들인 정동환 부부의 전신좌상 초상화 한 쌍, 정영원의 조부인 정면규의 과지 두 점과 정영원이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관복과 신발 등 정영원 집안의 전래 유물이 일괄로 출품됐다.
다음은 매화로 일세를 풍미한 조희룡의 매화, 난초 그림 한 쌍이다. 조희룡은 19세기 여항문화를 이끈 대표적인 서화가로 매화와 난을 주로 그렸으며, 그림과 글씨에 모두 뛰어났다. 출품작 역시 그런 화가의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난초 그림의 묵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寫蘭 雖小技 可怡養性靈 何翅却病 可以延年
난초를 그리는 것은 작은 기예이기는 하나, 심성을 함양할 수 있으며 병을 물리칠 뿐 아니라 수명을 연장할 수도 있다
이번 경매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주 진귀한 그림이 한 점 나와 눈길을 끈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운해 위로 솟은 기이한 형태의 암석에 복숭아꽃이 만발한 마을을 그린 것으로 동양의 이상향을 대표하는 무릉도원을 개성 있는 구도로 표현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옅은 먹을 썼고, 분홍색으로 표현한 복숭아나무와 옅은 청색으로 그린 운해가 대비를 이루며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존의 도상이 아니라 무릉도원의 이미지 자체를 형상화한 형태로 그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더군다나 봉우리와 암석을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놓았다. 이런 묘사는 금강산 그림에서 자주 보던 것이니, 그림이 제작된 시기도 그로부터 유추해볼 수 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별격의 작품이다.
츠지 가코 <조선 노인(朝鮮 老人)>, 종이에 수묵담채, 135.5×31.4cm
아사카와 노리타카 <도자(陶磁)>. 종이에 수묵, 137×33.2cm
일본 화가의 작품으로는 츠지 가코(都路華香, 1871~1931)의 <조선 노인(朝鮮 老人)>,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으로 잘 알려진 아사카와 노리타카(浅川伯教, 1884~1964)의 백자 그림을 주목해서 보면 좋겠다.
이번 경매에는 아주 특별한 현대사 관련 유물들이 대거 출품돼 비상한 관심을 끈다. 이 그림은 서양화가 박영선(1910~1994)의 작품 <5월 16일 새벽>이다. 5월 16일이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소장을 필두로 한 군부 세력이 일으킨 군사 정변을 보여주는 기록화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해병대와 공수부대가 한강인도교(한강대교)를 건너는 모습을 그렸다. 같은 구도의 사진을 보고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오른쪽 아래에 <5月 16日 새벽> 이라는 제목과 함께 Y.S. Park이라는 화가의 서명이 있다. 화가가 자발심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주문을 받아 그렸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박영선은 박정희 정부의 기록화 작업에 참여해 <이등박문을 총살하는 안중근 의사>(1976), <현충사>(1973), <인천판유리>(1975) 세 작품을 남겼다. 정확한 계기나 제작연도는 확인되지 않지만, 이런 영향 아래에서 그린 거로 보인다. 그것 자체로 희귀하다. 김원(1912~1994)의 <소양강 다목적 댐>도 비슷한 맥락에서 특이한 작품이다.
이른바 3김 시대의 주역 중 한 명인 김종필(1926-2018) 전 총리의 그림과 글씨도 눈여겨 볼만하다. 보통은 과거 유명 정치인들이 글씨에서 다들 한가락 한다는 사실이야 익히 알려졌는데, 김종필 전 총리는 그림 솜씨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실제 비율 이상으로 크게 그려진 나무에는 봄을 알리는 노란 꽃이 가득 피었고, 등산객들이 이 더없이 화사한 봄의 제전을 한껏 만끽하는 모습이다. 오른쪽 아래에 J.P.라는 서명이 보인다.
이 글씨 역시 김종필 전 총리의 것이다. 이것 외에 서양화가 안영이 그린 김종필 초상화, 그리고 김종필이 중국, 일본의 서화가와 정치인으로부터 받은 그림과 글씨까지 모두 10점이 일괄로 출품됐다.
이 사진에 주목해보자.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이른바 3김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사진 속 세 사람은 아직 젊다. 사진에 각자 서명을 한 것은 2006년. 그해에 누군가 세 사람을 만나 서명을 받은 것이리라. 사진은 그냥 사진일 뿐이었지만, 서명이 더해지면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게 됐다. 경매의 또 다른 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