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85)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이것은 나바호족의 노래. 8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 밤, 가만히 전시장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멀리 북극으로부터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 만나는 곳까지 광활한 북미 대륙에 570개가 넘는 부족이 터를 잡고 살았다. 그들은 평화로웠다. 1492년 미지의 땅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그 땅을 인도로 착각한 바람에 그 땅의 사람들이 인디언(Indian)으로 불리기 전까지는.
총과 대포를 앞세워 자기네 땅을 점령하려는 이방인들에게 맞서 싸운 원주민들은 싸우길 좋아하는 호전적이고 잔인한 미개인으로 간단하게 정의됐다. 합법적이고 정의로운 약탈과 정복의 명분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원주민의 활과 칼로는 이방인의 총과 대포를 이길 수 없었다. 문명의 이름으로 학살과 파괴가 자행됐다. 고전이 된 서부 영화 <역마차>(1939)에서 북미 원주민은 시종일관 ‘극단적이고 단순한 야만인’으로 그려졌다. 노만 로크웰이 1966년에 리메이크된 영화 <역마차> 광고를 위해 그린 일러스트에서 원주민은 명백한 가해자로 묘사됐다.
서부극 시대가 낳은 전설적인 배우 존 웨인은 1971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위대한 나라를 그들로부터 빼앗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중략)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땅이 필요했고, 원주민들은 그 땅을 그들만 가지려고 했어요.” 북미 원주민 부족의 하나인 클링깃족 화가 제시 쿠데이는 <웨인의 세계>라는 그림에서 존 웨인의 얼굴과 그가 했던 말을 자기 부족의 의식용 가면과 겹쳐서 보여줌으로써 존 웨인이라는 시대의 우상으로 상징되는, 원주민을 향한 인종차별주의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이것은 북미 원주민의 잠언. 그들은 세상 모든 것에 저마다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를 채취할 때도 경건한 마음으로 풀에 깃든 정령에 기도했다. 정복과 지배가 아닌 공존과 공생의 삶을 살았다. 그것은 곧 생명 존중의 정신이다. 북미 원주민의 인사 ‘미타구예 오야신’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북미 원주민의 삶과 문화, 예술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전시다. 미국에서 원주민 예술품을 최초로 수집하기 시작해 관련 소장품만 1만 8천여 점을 보유한 덴버박물관에서 공예품, 사진, 회화 등 150여 점을 엄선했다.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에 걸린 <인디언의 힘>이라는 그림은 북미 원주민의 당당하고 늠름한 기상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강력한 이미지로 이번 특별전의 대표 이미지로 쓰였다. 말을 탄 원주민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주먹을 불끈 쥔 채 하늘을 향해 오른팔을 치켜든 모습을 역동적으로 묘사했다. 그 덕분에 1970년대 내내 무수하게 복제되며 원주민의 자결권과 행동주의를 웅변하는 시각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내 의지로 내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굳은 결기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