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86) 기욤 티오 개인전 <어린 시절의 태양>
기욤 티오(Guim Tio)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이다. 1987년생으로 올해 서른일곱의 젊은 화가다. 아트사이드갤러리가 발굴해 2019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고, 이번에 키아프-프리즈 기간에 맞춰 두 번째 개인전이 열린다.
전시 제목은 20세기 스페인 현대 시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 1875~1939)의 시 ‘푸른 날들과 어린 시절의 태양(Estos dias azules y este sol de la infancia)’을 인용했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패배감 속에서도 잃지 않은 저항과 따뜻함을 향한 희구를 노래했다고 한다. 기욤 티오는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Samalayuca>에서 끝이 보이지 않은 황량한 모래 언덕을 홀로 오르는 한 인물을 보여준다. 이 간단치 않은 여정이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분홍빛이 어린 하늘은 이제 저 고개만 넘어가면 그토록 찾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거란 작은 희망을 느끼게 해준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산과 들판, 그리고 바다. 그 광막한 공간 속에서 작고 왜소하기만 한 인물. 기욤 티오의 풍경화는 거대한 자연 속에 홀로 선 존재의 고독을 보여준다. 명도가 높은 색상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옅은 붓질로 그려낸 풍경은 한없이 서늘하다. 스페인에서 나고 자란 화가에게 그림 속에 보이는 바짝 메마른 사막과 초원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각인됐으리란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겐 이국적으로, 또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풍경이지만, 누구든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화가의 풍경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인간 존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혼자서 훌쩍 떠난 여행지에서 갑자기 이방인이 된 자신을 깨닫는 순간, 관람자는 자신에게 묻게 된다. 지금 나는 여기서 무얼 하는 거지?
기욤 티오는 오래전부터 적당한 유머와 아이러니를 담아 ‘인간 조건’을 회화로 풀어내는 데 집중해 왔다. 화가가 말하는 ‘인간 조건’은 뭘까. 기욤은 그 답으로 작품 속 인물의 구체적인 행위를 제시한다. 자연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가 하면, 갈림길에서 이미 결정을 내렸으면서 다른 길을 돌아보기도 한다. 대자연에 한없이 경탄하는가 하면 고개 숙여 자기 그림자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집, 그 안에서 마스크팩을 한 채 깊은 잠에 빠진 인물,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사람.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음 직한 이런 행위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든 것이 멈춘 순간의 고요함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관람자에게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