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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Sep 06. 2024

‘환기 블루’의 절정을 보여주는 명작을 만나다

석기자미술관(90) 크리스티 홍콩 김환기 전면점화 서울 프리뷰

김환기 <9-XII-71 #216>, 면에 유채, 127×251cm, 1971 (CHRISTIE’S IMAGES LTD. 2024)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운 이름들, 사무치게 보고 싶은 얼굴들이 하나둘 별이 되어 떠오른다. 그 간절한 마음을 담아 화폭에 점을 찍는다. 점 하나에 이름과 점 하나에 얼굴과 점 하나에 그리움을 아로새긴다. 수없이 많은 점에 담긴 화가의 염원이 메아리가 되어 동심원을 그리며 화폭에 번져나간다. 1971년 12월 9일, 김환기는 그렇게 또 한 점의 그림을 완성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 가로로 긴 화폭을 물들인 푸른 빛은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파란 물감으로 저렇게나 다채로운 색의 변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다른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김환기만의 푸른 빛. 그래서 ‘환기 블루’라 했던가. 뉴욕의 겨울밤을 환하게 밝힌 보름달을 보았을까. 잔잔한 물결에 파문이 일 듯 소용돌이치며 뻗어나가는 무늬가 만들어낸 것은 아련한 달무리. 저만한 화폭에 커다란 우주를 담아낼 줄 알았던 화가 김환기. 그는 진정한 거인이었다.   

  


김환기가 1971년 12월 9일에 완성한 푸른색 전면 점화 <9-XII-71 #216>이 9월 26일 홍콩 현지에서 열리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출품됐다. 세로 127cm, 가로 251cm 크기로 전면 점화로는 드물게 가로로 긴 작품이다. 마로니에북스가 2012년에 펴낸 김환기 작품집에 도판이 실렸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아시아 컬렉터가 20년 넘게 소장했던 까닭에 실물을 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우리에게 <우주>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김환기의 1971년 작 <05-IV-71 #200>이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130억에 가까운 액수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쓴 사실을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을 당시 경매 전에 환기미술관 프리뷰 때 처음 봤고, 경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갤러리현대에서 전시할 때 다시 봤고, 이 그림을 낙찰받은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이 사옥 1층 갤러리에 걸었을 때 한 번 더 봤다. 그 감동이 아직 잊히지 않는데, 이번에 나온 그림은 색감 면에서 <우주>를 능가하고도 남는 김환기 최전성기의 최고 걸작이라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푸른 빛이 흐리고 뿌연 내 안구를 말끔하게 정화해주었다.     


이 귀한 그림이 딱 사흘 동안 서울에서 공개된다. 경매 결과에 따라 국내에서 실물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단, 사전예약이 필수다.

     

전시 정보

제목김환기 서울 프리뷰

기간: 2024년 9월 8(오후 6시까지

장소크리스티 코리아 (서울시 종로구 팔판길 5, 2)

예약문의: 02-6410-8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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