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23) <불멸의 화가 반고흐>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사랑받는 화가 빈센트 반고흐의 전시가 2024년 11월 29일부터 2025년 3월 1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2007년 <불멸의 화가 반고흐>, 2012년 <반 고흐 in 파리>에 이어 12년 만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반고흐 전시다. 애초 2022년 개최 예정이었다가 코로나 사태로 연기된 끝에 성사됐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반고흐의 작품 76점이 전부 네덜란드 오털루에 있는 크뢸러 뮐러(Kröller-Müller Museum) 미술관 소장품이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고흐 미술관에 이어 단일 미술관으로는 반고흐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해 ‘반고흐의 두 번째 집’으로 불린다. 이 미술관이 소장한 반고흐의 작품은 유화 92점, 드로잉 180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유화와 드로잉을 포함해 76점이 이번 한국 전시에서 선보인다.
전시 포스터를 장식한 그림은 반고흐의 1887년 자화상이다. 반고흐는 서른일곱 짧은 생애 동안 30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다. 그중 파리 시절에만 약 25점을 그린 것으로 확인된다. 가는 붓으로 짧은 붓을 반복해서 쌓아 올리는 반고흐 특유의 회화 기법을 볼 수 있다. 세로 32.8cm, 가로 24cm로 작은 그림이지만, 이번 전시의 대표 이미지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반고흐 하면 기대하는 유명한 그림은 없다. 미술 기자로서는 반고흐의 잘 알려진 대표작이 없다는 점이 몹시도 아쉽지만, 미술 애호가로서는 국내에선 보기 힘든 반고흐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 필요 이상으로 신화화한 반고흐라는 화가와 그의 예술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들여다볼 기회라는 점에 주목했다.
전시는 반고흐의 생애를 따라 연대순으로 구성된다. 1장은 네덜란드 시기(1881~1885)로 헤이그에서 18개월의 수련을 통해 기본적인 화가 수업을 받은 뒤 반고흐가 그린 초창기 그림들을 보여준다. <직기와 직조공>(1884), <삽질하는 사람>(1885), <여인의 두상>(1885), <밀다발>(1885) 등 인물화와 풍경화를 볼 수 있다.
2장 파리 시기(1886~1888)에서는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로부터 영향받아 자기 화풍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기법을 실험한 반고흐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몽마르트 언덕>(1886), <식당 내부>(1887), <자화상>(1887), <석고상이 있는 정물화>(1887), <파란 꽃병에 담긴 꽃들>(1887) 등을 보면 반고흐다운 예술이 나오기 전에 화가가 어떤 모색과 실험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3장 아를 시기(1888~1889)는 비로소 자기 예술의 길을 찾은 반고흐 화풍이 한껏 무르익은 시기다. <씨 뿌리는 사람>(1888), <조셉 미쉘 지누의 초상>(1888), <생트 마리 드 라 메르의 전경>(1888)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아를 시절 반고흐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4장 생레미 시기(1889~1890)에선 <협곡>(1889), <정신병원 정원의 길>(1889), <정신병원 정원의 소나무>(1889), <밀단과 떠오르는 달이 있는 풍경>(1889), <슬픔에 잠긴 노인>(1890) 등과 더불어 밀레의 그림을 오마주한 <씨 뿌리는 사람>(1890), 들라크루아를 오마주한 <착한 사마리아인>(1890) 두 점이 눈길을 끈다.
마지막 5장 반고흐 생애 마지막인 오베르 쉬르 오아주 시기(1890)를 대표하는 작품은 <젊은 여인의 초상>(1890), <가셰 박사의 초상>(1890) 등이다. 이와 별도로 1장과 2장 사이에 반고흐의 드로잉만을 모은 전시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여러 작품 가운데 <난롯가에서 책 읽는 남자>(1881)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표정부터 자세까지 책 읽는 노인의 모습이 실로 경건하기 그지없다.
참고로 전시장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