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71) 이재삼 <달빛녹취록>
나무를 태우면 숯이 된다. 목탄(木炭)이라 부른다. 주로 소묘나 밑그림에 사용한다. 본격적인 회화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다. 가루가 날리고, 잘 부러지며, 여러 겹으로 쌓기 어렵다. 완성한 작품을 잘 보관하는 건 더 어렵다. 그래서 화가들이 애용하지 않는다. 뭐 하러 사서 고생한단 말인가. 다루기 쉬운 재료가 널려 있는데. 반대로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살린다면 목탄은 효과적인 회화 재료가 될 수 있다.
이재삼 작가가 그렇다. 미술 대학을 나와 30대 중반에 이르러 작가는 고민했다.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해야 했다. 우연히 목탄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 동안 목탄으로 그림을 그려봤다. 가능성이 보였다. 목탄을 내 재료로 만들자. 불혹을 앞둔 작가는 결심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목탄화를 그리자. 그렇게 이재삼은 목탄화가가 됐다. 숲에서 거둔 나무를 태워 목탄을 만들고, 광목천으로 캔버스를 직접 짰다. 송진과 아교로 화면을 고정하고, 자외선 차단 코팅으로 내구성을 확보했다. 20여 년 동안 수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했다.
“목탄은 나무를 태워서 숲의 영혼을 표현하는 사리이다. 나는 목탄으로 달빛이 채색된 정경을 그리는 것이 화두이다. 목탄(charcoal)은 나무를 태운 숯인데 나에겐 다소 신성함으로 다가오는 재료이다. 나무가 산소 하나 없는 밀폐된 숯가마에서 온종일 불사르고 난 후 재가 되기 전의 검디검은 자태이고, 또한 숲의 육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숲에 대한 영혼의 사리이다. 촛불은 제 몸을 불태워서 빛을 발하지만, 목탄은 나무였던 스스로를 연소시켜 자신의 온몸을 숲의 이미지로 환생시키는 영혼의 표현체이다.”
이재삼의 작업은 인물에서 자연으로 나아간다. 초창기의 <저 너머> 연작은 극사실주의 기법의 인물화가 중심이었다. 인물을 그리는 부담이 커지면 대신 동물을 그리기도 했다. 십이지신 연작이 대표적이다. 목탄이라는 재료와 친해지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었다. 전시장 가장 깊은 곳에 걸린 자화상. 서른아홉 이재삼은 목탄으로 자기 얼굴을 그렸다. 한국의 현대 미술가가 목탄으로 그린 본격적인 자화상이 또 있었던가.
목탄은 나무에서 온다. 이재삼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나무로 옮겨간다. 재료의 물성을 회화의 주제로 취한 것. 검정 목탄은 밤의 색깔이다. 작가는 밤을 그렸다. 어둠을 밝히는 달빛을 그렸다. 나무와 폭포, 물안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달빛> 연작이다. 그리고 2000년 무렵에 결심한다. 앞으로 5년 동안 달빛 연작의 완결판을 만들어보자고. 평생에 다시 없는 대작을 그려보자고.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 대작 몇 점이 완성됐다. 애초 목표에서 1년을 당겨 사비나미술관에 작품을 걸었다.
사비나미술관 2층 전시실에 올라서면 압도적인 스케일의 그림 한 점이 커다란 벽 위로 펼쳐져 있다. 달빛과 물안개에 젖은 왕버들나무의 신비로운 모습을 캔버스 21개를 연결해 완성한 대작이다. 300살이 넘은 거로 추정되는 전북 김제 종덕리의 왕버들나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벽과 벽이 만나 꺾이는 모서리를 중심으로 캔버스 21개를 조립하듯 짜맞추고 5층까지 열린 공간을 활용해 5m 높이에 달이 보이게 설치했다. 웬만한 전시장에선 엄두도 내기 힘든 장소 특정적 작품이다. 설치 회화라고 해야 할까. 작품보다는 작업에 더 큰 무게를 둔 그림이다.
3층 전시장 깊은 곳에 또 한 점의 대작이 있다. 전남 광양시 옥룡사지 터에 있는 동백나무 숲을 그린 작품이다. 목탄의 섬세한 질감을 통해 은은한 달빛이 숲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안으며 잠들어 있던 나무들을 깨우는 순간을 담아냈다. 고요한 밤 풍경 속에 숨은 자연의 에너지를 표현하며 달빛을 살아 있는 존재로 묘사했다. 가벽을 세워 캔버스를 벽의 생김새에 맞춰 연결해 길이 18m가 넘는 장대한 파노라마를 연출했다. 이 또한 장소 특정적 작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팔리지 않을 그림.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이는 <달빛녹취록> 연작은 작가의 집념 어린 작업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