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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대신 빗자루로 그렸다…화가 노정란의 색면추상

석기자미술관(172) 노정란 개인전 <Colors Play>

by 김석
20250325_122617.jpg Colors Play Sweeping #87, 캔버스에 아크릴릭, 158×158×3cm, 2009



빗자루는 치우고 비우는 데 쓰이는 도구다. 어느 날 화가에게 빗자루가 커다란 붓으로 보였다. 화가는 그날로 붓 대신 빗자루를 들었다. 캔버스를 눕혀 놓고 아크릴 물감을 부은 뒤 빗자루를 들고 한쪽으로 힘차게 쓸어 나갔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 색이 두터워지면서 색감이 한층 더 풍부해진다. 화가의 빗자루는 커다란 붓이다. 화가의 빗자루질은 노동이자, 수행이며, 작업이다.


20250325_122502.jpg Colors Play Sweeping #208, 캔버스에 아크릴릭, 168×168×4cm, 2014



노정란 작가가 색면추상에 몰두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 공간 속에 생생하게 존재하는 색을 구현해 보자는 목표로 ‘색놀이(Colors Play)’ 작업에 천착했다. 그러다 2005년 붓 대신 빗자루를 사용하면서 작업이 ‘색놀이-쓸기(Colors Play-Sweeping)’로 진화한다. 그렇게 만들어낸 깊이 있는 색감과 빗자루질의 흔적은 이제 작가만의 고유한 조형 언어가 됐다.


“밭을 갈아엎는 화전민의 심정으로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쓸어가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 무아지경에 이르게 된다.”


20250325_122330.jpg Colors Play Sweeping #214, 캔버스에 아크릴릭, 178×183×4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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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의 결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노정란의 그림은 따뜻하다. 어떤 그림은 광활한 대지와 드넓은 바다를, 또 어떤 그림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의 응어리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거리를 좁혀 그림에 바짝 다가가서 보면 모래알 같은 작은 돌기가 보인다. 빗자루로 색을 반복해서 쓸어가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생겨난 물감 덩어리다. 뭔가를 치우고 비우는 데 쓰이는 빗자루가 만들어낸 예기치 않은 흔적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삶이라는 것도 그렇다. 예술은 결국, 생의 반영(反映)이다.


20250325_122128.jpg Colors Play Sweeping #287, 캔버스에 아크릴릭, 38×72×3cm, 2020



■전시 정보

제목: 노정란 개인전 <Colors Play - 색의 흐름, 시간의 결>

기간: 2025년 4월 19일(토)까지

장소: 두손갤러리 (서울 중구 덕수궁길 130)

문의: 02-544-8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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