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좋은 그림은 볼수록 새롭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가니

석기자미술관(187)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

by 김석

여기저기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한국 근현대 미술품을 전면에 내세운 전시를 동시다발로 열고 있다. 일찍이 이런 적이 있었는가 싶다. 그 첫 순서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그림이라는 별세계: 이건희컬렉션과 함께》에 이어 이번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한국근현대미술 I》을 소개한다.


20250508_130448.jpg 이수억, 폐허의 서울, 1952, 캔버스에 유화 물감, 71.6×95.3cm, 국립현대미술관



이 전시를 꼭 봐야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6·25 전쟁 시기의 그림 가운데 내가 이제껏 못 본 것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이수억의 1952년 작 <폐허의 서울>이다. 도판으로만 보아 오던 이 작품을 실물로 영접한 건 처음이다. 1952년이면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지만, 크기로 봐도 그렇고 작품의 완성도를 봐도 그렇고 화가가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각 잡고 공들여 그린 그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건물 잔해 밑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싸쥐고 있는 인물의 절망적인 모습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한국미술사에서 전쟁을 이야기할 때 절대 놓쳐선 안 되는 작품이다.


20250508_130500.jpg 이응노, 재건현장, 1954, 종이에 먹, 색, 43×51.8cm, 국립현대미술관



또 하나 빼놓아선 안 될 중요한 작품은 이응노의 1954년 작 <재건현장>이다. 전쟁 시기에 종군화가단을 중심으로 전쟁의 현장을 담은 그림을 제법 많이 남겼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은 이 작품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여기저기 무너지고 부서진 건물 위에 올라가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현장감 있게 그렸다. 틀림없이 현장 사생을 바탕으로 그렸을 것이다. 도판으로 볼 땐 작은 그림인가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크기도 상당하다. 전쟁을 그린 다른 동양화가가 또 있을까 싶다. 귀한 그림이다.


20250508_130421.jpg 이철이, 학살, 1951, 패널에 유화물감, 23.8×33cm, 국립현대미술관
20250508_130432.jpg 김두환, 야전병원, 1953, 캔버스에 유화물감, 116.3×90.3cm, 국립현대미술관



작가 70명의 작품 145점을 아우르는 규모를 자랑하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방’ 세 곳을 포함해 대한제국부터 6·25 전쟁까지를 9개 소주제로 나눠 보여준다. 전쟁 시기의 그림은 제7부 ‘폐허 위에서: 한국전쟁과 조형실험’에서 만날 수 있다. 이철이의 1951년 작 <학살>은 화가가 직접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단순화한 형상과 강렬한 색채로 표현했다. ‘죽음’을 직접 목격하고 화폭에 남긴, 한국미술사에서 극히 드문 사례다. 김두환의 1953년 작 <야전병원>까지 전부 이번 전시에서 처음 본 것들. 이 작품들을 본 것만으로도 전시에 다녀온 보람이 크다.


20250508_122620.jpg 정찬영, 한국산유독식물, 1940년대, 종이에 색, 국립현대미술관
20250508_123524.jpg 변월룡, 어느 흐린 날의 금강산, 1953, 캔버스에 유화 물감, 35.7×55.5cm, 국립현대미술관



좋은 그림은 보면 볼수록 새로움을 준다. 이영일의 <시골소녀>(1928)와 정찬영의 <공작>(1937)이 그렇다. 식물도감을 위한 표본을 세밀화로 그린 정찬영이 1940년대에 그린 <한국산유독식물>을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봤다. 아마도 한국 미술사에서 정찬영이 이 분야의 선구자가 아닌가 한다. 금강산 그림도 한 전시실에 모였는데, 변월룡의 금강산 그림 두 점이 유독 눈에 띄었다.


20250508_123719.jpg 나혜석, 화령전 작약, 1930년대, 패널에 유화 물감, 33.7×24.5cm, 국립현대미술관
20250508_123840.jpg 임용련, 에르블레 풍경, 1930, 카드보드에 유화 물감, 24.2×33cm, 국립현대미술관
20250508_124042.jpg 이인성, 주전자가 있는 정물, 1930년대, 패널에 유화 물감, 36.5×45cm, 국립현대미술관



남아 전하는 그림이 많지 않은 나혜석의 <화령전 작약>(1930년대), 임용련의 <에르블레 풍경>(1930)은 희소가 가치가 매우 크다. 정물화 중에선 이인성의 <주전자가 있는 정물>(1930년대)가 단연 주목되고, 고희동의 자화상이야 여러 차례 봤지만, 승동표, 이정수, 손응성, 이철이, 전선택의 자화상은 생소한 화가들의 이름만큼 처음 보는 것들이다. 김종태의 <노란 저고리>(1929), 이제창의 <독서하는 여인>(1937),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1935)도 눈에 담았다.


20250508_124825.jpg 오지호, 남향집, 1939, 캔버스에 유화 물감, 80×65cm, 국립현대미술관
20250508_124911.jpg 오지호, 열대어, 1964, 캔버스에 유화 물감, 90.5×77cm, 국립현대미술관



첫 번째 작가의 방을 장식한 화가는 오지호다. <처의 상>(1936), <남향집>(1939), <열대어>(1964), <항구>(1969)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전시 공간을 채웠다. <남향집>과 <열대어>는 올해 초 전남도립미술관 전시에서 본 것들인데, 역시 좋은 그림은 다시 봐도 새롭고 좋다. 최재덕의 <농가>(1940), 장욱진의 <공기놀이>(1938), 박상옥의 <유동>(1940), 김기창의 <정청>(1934), 김은호의 <화기>(1960년대) 등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들을 눈여겨봤다.


20250508_130005.jpg 박래현, 여인, 1942, 종이에 먹, 색, 94×80.3cm, 국립현대미술관
20250508_130528.jpg 이규상, 구성, 1959, 캔버스에 유화 물감, 69.5×55.7cm, 국립현대미술관
20250508_130930.jpg 권진규, 모자상, 1960년대, 테라코타에 채색, 29×14×17cm, 국립현대미술관



두 번째 작가의 방은 김기창과 박래현 부부의 그림이 장식했다. 박래현의 <여인>(1942)은 김영나 교수의 책 <한국의 미술들>의 표지를 장식한 바로 그 그림이다. 종이가 여기저기 갈라져 보존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이규상의 <구성>(1959)과 권진규의 <모자상>(1960년대)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본 것들이다. 권진규의 조각은 얼마 전 황정수 선생 소장품 전에서 본 것들만큼이나 작지만 조형미가 돋보인다. 권진규의 조각을 보고 있으면 뭔가 처연한 기분에 젖어든다. 그의 비극적인 마지막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0250508_131030.jpg 이중섭, 소년, 1943-1945, 종이에 연필, 26.2×18.3cm, 국립현대미술관
20250508_131137.jpg 이중섭, 황소, 1950년대, 종이에 유화 물감, 26.5×36.7cm, 국립현대미술관
20250508_131257.jpg 이중섭, 정릉 풍경, 1956, 종이에 연필, 크레용, 유화 물감, 43.5×29.3cm, 국립현대미술관



마지막 작가의 방은 이중섭을 위한 공간이다. <소년>(1943-1945), <세 사람>(1943-1945), <흰 소>(1950년대), <황소>(1950년대)까지 이중섭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둘도 없는 친구를 위해 그려준 <시인 구상의 가족>(1955)에 등장하는 이중섭의 모습 역시 어딘가 외로운 모습이다. 이중섭이 그린 유일한 서울 풍경화 <정릉 풍경>(1956)은 이중섭이 세상을 떠나던 그해에 그린 것이다. 이번 전시를 봐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된 중요한 작품이다. 이중섭의 <부부>(1953)는 더없이 사랑스럽다.


6·25 전쟁 이후의 한국 미술은 6월 26일 개막하는 2부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20250508_131352.jpg 이중섭, 부부, 1953, 종이에 유화 물감, 40×28cm,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정보

제목: MMCA 과천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

기간: 2025년 5월 1일(목)부터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문의: 02-2188-6000


20250508_123755.jpg
20250508_124351.jpg
20250508_131911.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림이라는 별세계를 보았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