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서 시대와 삶을 읽어내는 ‘사색의 힘’

석기자미술관(243)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

by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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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보다 위아래로 길게 그려진 인물. 중력을 거스르는 형상. 곰팡이로 온통 뒤덮인 것처럼 냄새나고 초라한 방에 앉아 있는 가난한 젊은이. 짙은 홍조를 띤 두꺼운 입술. 삼각형을 이룬 커다란 코. 그리고 높이가 서로 안 맞는 두 눈. 모델은 프랑스 화가 샤임 수틴(Chaim Soutine, 1893~1943). 화가는 저 유명한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


훗날(1985),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갤러리에서 모딜리아니가 그린 쑤틴의 초상화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비뇽 이래로 내가 은밀히 품고 있었던 쑤틴의 이미지와는 다소 다른 것이었다.


“예술가답게 가는 손목, 끝이 뾰족한 손가락에 걸맞은 뭉툭한 콧날과 촌스럽고 불균형한 얼굴 생김새가 풍기는 무골호인의 농민 같은 그의 기묘하게 분열된 풍모를, 모딜리아니는 멋지게 포착해냈다……(두 사람은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고 친했지만) 모딜리아니는 쑤틴의 농민적 체구를 갖고 있지 못했다”라고 카탈로그에 씌어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19세기의 테러리스트 같은, 말하자면 확신범 같은 면모로 보이는 것이다. 어느 편이든 간에 좀처럼 눈물 따위를 찔끔거릴 것 같지는 않다.


900_Screenshot_20250307_200306_Chrome.jpg 모딜리아니, <샤임 수틴>, 1918, 캔버스에 유채, 91.7×59.7cm,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테러리스트, 확신범, 그 어느 것도 이 책의 저자 서경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미술을 처음 접한 뒤로 지금까지 수많은 저자의 수많은 미술책을 읽어왔지만, 이토록 미술품을 대하는 자기의 감정에 섬뜩할 정도로 충실한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미술책이 아닌 에세이다. 그림은 거들 뿐 자기 고백과 사색이 중심이다.


놀라운 건 이 책이 미술을 다룬 것으론 전례 없는 베스트셀러였다는 점이다. 내가 구한 책을 기준으로, 1992년에 초판 1쇄가 나온 이래 2000년까지 12쇄, 2002년에 개정판 1쇄가 나온 뒤로 22쇄까지 찍었다. 나는 올해야 비로소 서경식의 책 『나의 일본미술 순례 1』, 『나의 조선미술 순례』, 그리고 이 책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차례로 읽었다.


Gerard_David_-_The_Judgment_of_Cambyses,_panel_2_-_The_shedding_of_the_corrupt_judge_Sisamnes.jpg 헤라르트 다비드, <캄비세스의 심판>, 1498, 패널에 유채, 202×172.8cm, 흐루닝어 미술관


책의 첫 장에서 서경식이 이 책을 쓴 동기가 된 작품을 언급한다. 우리에겐 생소한 플랑드르 화가 헤라르트 다비드(Gerard David, 1460년경~1523)의 <캄비세스의 심판>이 그것. 판사의 살가죽을 벗기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형벌 장면을 피 한 방울까지도 생생하게 재현한 리얼리즘의 극치. 서경식은 그 ‘가열한 사실정신’에 압도당했다고 고백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그림은 1498년에 오늘날 벨기에 영토에 속한 도시 브뤼주 시청사의 시참사회실(市參事會室)에 걸 목적으로 의뢰된 것이라 한다. “이 그림은 무시무시한 리얼리즘에 의하여, 모든 판사와 시참사(市參事)들에게 영원히 타락‧부패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 이어지는 대목에서 서경식은 이렇게 썼다.

흔히 ‘문예부흥’ ‘인간성 부활’이라 말하는 르네쌍스의, 몸 전체로 피를 철철 흘리며 근대를 향해 탈피해나간 추상열일(秋霜烈日)의 모습이 여기 있다. 나는 이 한 장의 으스스한 그림으로 하여, 중세로부터 근대로 이어지는 ‘서양’ 역사의 계승과 전환이 응축된 현장에 문득 맞닥뜨린 느낌이었다.


여행길에 무심코 들른 미술관이나 성당에서 갑자기 무엇에 얻어맞은 것처럼 발길이 얼어붙는 경우가 있다. 한 장의 그림, 한 덩어리 조각상이 시공을 초월해서 사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마력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내가 그런 경험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돌이켜보건대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시작이었다.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이후 많은 이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저자의 한 많은 가족사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예였기 때문이다. 서경식의 아버지는 어려서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으로 갖은 모멸과 고초를 겪으며 삶의 터전을 꾸렸다. 그 자식들은 모두 일본에서 태어났다. 두 아들은 간첩으로 몰려 조국의 감옥에 갇힌다. 서경식의 서양미술 여행은 끊임없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가족사를 되돌아보는 여정이었다. 서경식은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 일본어로 말하고 사고했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그의 국적은 한국이었다.


당연하게도 서양미술을 알려면 기독교 성경을 읽어야 한다. 이 책에 가장 많이 인용된 건 신약성서 누가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이 거기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피렌체 산 르코 수도원 2층 복도에 걸린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에서 서경식이 본 것은 ‘간결성’, ‘삼가듯 조촐한 아름다움’을 봤다. 이제 누가복음을 펼친다.


Fra_Angelico_-_The_Annunciation_-_WGA00555.jpg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32-1434, 패널에 템페라, 175×180cm, 산 마르코 수도원


[누가복음 1장 26~38절]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이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예술은 끊임없이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피카소의 저 유명한 <게르니카>는 전쟁 속에서 끔찍하게 죽어간 이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었다. <게르니카>에 관한 장에서 서경식은 1989년 일본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쇼와(昭和)의 미술전》을 관람한 일을 소개한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은 일본의 쟁쟁한 화가들이 그린 전쟁화였다.


미야모또 사부로오(宮本三郞)의 「야마시다 퍼씨발 장군 회견도」, 후지따 쯔구하루(藤田嗣治)의 「12월 8일의 진주만」과 「싸이판섬 동포들 신절(臣節)을 다함」, 하시모또 칸세쯔(橋本關雪)의 「방공호」 등, 요새는 여간해서 볼 수 없는 명인대가(名人大家)들의 전쟁화(戰爭畵)가 한곳에 모여 공개됨으로써 화제가 되고 있었다. 이 미술관에는 전후에 미군에게 접수된 전쟁화 153점이 ‘오랜 외교교섭 결과 … 영구대여라는 형식으로’ 보관되어 있는데, 이번에 그중 7점이 전시되었다. 이 미술관에서 발행한 카탈로그에는, 이 전쟁화들을 전시키로 한 것은 ‘순전히 미술상의 관점에서’라고 신경질적으로 변명하고 있다.


536011043_18321170731237938_7448844283871150977_n.jpg 코이소 료오헤이 「낭자관(娘子關) 행군」


이 전시에 걸린 그림 가운데 서경식은 코이소 료오헤이(小磯良平)의 「낭자관(娘子關) 행군」에 주목했다. 이 그림은 1941년 제2회 성전미술전(聖戰美術展)에서 제국예술원상(帝國藝術院賞)을 받았다. 서경식은 비장감이나 영웅주의를 조금도 환기하지 못하는 이 그림이 전쟁화로서는 실패작이란 사실에 주목하면서, 자기 화풍과 명백하게 단절된 그림을 그린 후지따 쓰구하루의 전쟁화가 예술 작품으로서는 명백하게 실패작이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전쟁화로서는 호소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본이니 1989년에 이런 전시를 ‘순전히 미술상의 관점에서’라는 뻔히 보이는 변명과 함께 국립미술관에 걸 수 있었지, 식민 치하에서 마찬가지로 일본의 승전을 위한 선전 도구로 동원된 조선 화가들의 그림은 지금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 그림들이 화가들을 ‘친일파’로 낙인 찍는 결정적인 근거가 됐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 내내 화가들은 그렇게 자의로, 타의로 일제에 부역했다. 더 비극적인 건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화가들 가운데 ‘저항 화가’는 단 한 명도 없고, 심지어 저항 의식을 담은 그림조차 단 한 점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미술의 부끄러운 역사이자 비극이다. 서경식은 <게르니카>를 보고 이렇게 썼다.


일본에는 전쟁에 협력한 그림은 있어도 「게르니까」에 비길 만한 것은 없다. 전쟁 찬미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한다하는 명인대가들이 전쟁에 협력한 그림을 그린 그 자체를 ‘없었던 일’처럼 괄호 속에 묶어넣어둔 채 능청거리고 있는 퇴영적(退嬰的) 정신에서는 「게르니까」가 태어나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순전히 미술상의 관점’에서 말해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니, 일본이야 어떻든 나는 차라리 내 민족을 한탄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서경식은 피카소의 <게르니까>에서 무엇을 보았던가.

guernica3.jpg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 캔버스에 유채, 349.3×776.5cm,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군국주의 스페인 5백년의 전통, 그 중후하면서도 저열하기 이를 데 없는 정신에 대하여 한 사람의 그림장이의 거대한 불기(不羈)의 정신이 대항하고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마침내 승리하는 모습이다.


멀리 마드리드에까지 달려와서 「게르니까」를 마주하고 선 그때 나의 가슴에 되살아나는 것은, 아직도 생생한 ‘광주 사건’의 기억이었다. 이때로부터 불과 3년 전, 1980년 5월 한국 광주시에서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다수의 학생과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학살되었던 것이다.


굴욕을 당하고, 수탈을 당하고, 살육을 당해온 우리 민족은 과연 우리들 자신의 「게르니까」를 산출해냈는가. 군국 스페인 5백 년의 공포와 중압이 삐까쏘를 낳았다고 할 때, 우리 민족에게 가해지고 있는 고통은 아직 가볍단 말인가.


El_Tres_de_Mayo,_by_Francisco_de_Goya,_from_Prado_thin_black_margin.jpg 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 1814, 캔버스에 유채, 268×347cm, 프라도 미술관


이어지는 글에서 서경식은 고야의 저 유명한 그림 <1808년 5월 3일>에 얽힌 웃지 못할 일화를 소개한다. 프라도미술관에서 산 고야의 그림 복제품을 들고 김포공항으로 들어오다가 세관에서 문제가 돼 곤욕을 치른 것이다. 1990년 2월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아직 대한민국은 그런 상황이었다.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위대한 예술은 동시에 위대한 선전물이다. 거의 2세기 전에 그려진 한 장의 그림이 그 작가하고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극동의 한 나라의 관헌들로 하여금 자국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부당하고도 잔혹한 일들을 연상케 하고, 그래서 불안한 기분을 일으키게 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그림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도무지 신명 나지 않는 이러한 상황에서 분열과 모순을 자신 속에 끌어안으면서, 으드득 이빨이라도 가는 심정으로 가진바 전능력을 쏟아 고야는 전쟁의 잔혹과 역사의 비정을 그려냈다. 그렇기 때문에 「5월 3일」은 한 나라 한 시대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현대 한국의 세관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까지 하는 힘을 얻은 것이다.


Goya_Dog.jpg 프란시스코 고야, <개>, 1819–1823, 131.5×79.3cm, 프라도 미술관


그리고 고야가 가진 또 한 점의 그림을 소개했다. 고야의 판화집 「전쟁의 참화」에 수록된 개 그림이다.

‘검은 그림’ 씨리즈 속에 한 점의 이색적인 개 그림이 있다. 「물살을 거스르는 개」 또는 「모래에 묻히는 개」라고 불린다. 보기에 따라서 급류를 허겁지겁 헤엄쳐 건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유사(流砂)의 개미 지옥에 삼켜져 구제불능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개는 고야 자신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 개가 나라고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은 그림이 그럴싸한 상품으로 예쁘게 포장돼 미술 시장에서 고가에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대수롭지 않은 미술책이 그럴싸한 물건으로 예쁘게 포장돼 서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아이러니를 지금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가짜가 진짜를 가린다. 미술을 알면 알수록 이런 내 생각은 더 깊어지고 확고해진다. 안타깝게도.


결국, 그 사람이 미술을 전공했느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미술을 전공해서 안다는 사람들의 글 가운데 서경식의 책만큼 사색의 깊이를 보여주는 글이 있는가. 그림이라는 것, 미술이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 삶, 우리가 사는 세계와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어야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지,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것이며, 하다못해 어떤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한 대목을 옮겨온다.


지나간 20년의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희망의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다.


2014120301000388100028391.jpg 사진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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