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247) KBS <모던코리아> 한국미술 2부작 ①민족기록화
1967년에서 1979년 사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사의 주요 장면들과 급격한 경제발전의 풍경을 담은 150여 점의 대형 회화가 정부 주도로 제작된다. 이 그림들은 이후 교과서에 수록되는 등 공적인 이미지로 널리 활용되며 당대 한국인들의 시각적인 기억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러나 이 그림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이 대거 참여한 국가적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그림들을 통틀어 ‘민족기록화’라 부른다.
화가 박광진. 올해 아흔이 된 그는 아직도 어엿한 현역 화가다. 하지만 박광진의 진가는 화가로서보다 미술 행정가로서의 면모에서 단연 두드러진다. 박광진은 대형 건물을 지을 때 조형 작품을 설치하도록 한 법 조항을 권고에서 의무로 바꿨고,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으로 한국관을 지을 때 물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65년, 아마추어 화가들의 동호인 모임인 ‘일요화가회’를 처음 만든 이도 박광진이었다.
김종필. 당시 유력 정치인이었던 그는 박광진에게 그림을 배웠고, 훗날 일요화가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광진의 증언이다.
“그래서 일요화가회가 널리 알려지고, 널리 관심을 갖게 되고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저절로 정치인들하고 접촉을 하게 되면서 내가 제안을 합니다. ‘5‧16’이라고 하는 혁명(군사정변)으로 오늘 이런 과정이 생겼는데 그걸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아니냐. 그래서 ‘기록화’ 제안을 제가 합니다. 그렇게 해서 ‘민족기록화’라고 하는 게 1967년에 전시를 하거든요. 그때 박통(박정희 대통령)이 테이프 끊고 그랬는데.”
이렇게 해서 구상화가, 추상화가를 가리지 않고 당대의 이름난 화가 55명이 한꺼번에 동원된 정부 주도의 대규모 미술 프로젝트가 시행됐으니 바로 ‘민족기록화 사업’이었다. 정부는 일본에서 질 좋은 캔버스와 물감, 붓 등 미술 재료를 대량으로 공수해 화가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건 물론 작업 공간까지 제공했다.
그 결과물을 공개한 《민족기록화전》이 1967년 7월 12일부터 8월 31일까지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렸다. 단군신화부터 동학농민혁명, 독립운동, 해방과 6‧25 전쟁, 베트남전 파병까지 한국사에서 중요한 55가지 장면이 500호, 1,000호짜리 초대형 캔버스에 담겼다. 정권의 입장에서 본 ‘민족사’를 그림으로 총망라한 ‘블록버스터’급 전시였다.
“그 당시 한국 화가들이 500호를 그려본 적이 거의 없어요. 거의 없는 게 아니라 전혀 없다고 봐도 돼요. 그 이유가, 재료가 없어요. 500호를 그릴 수 있는 캔버스, 물감, 이런 재료가. (그러니) 화가들도 상당히 흥분된 상태지. 500호, 1000호짜리를 한 번 그려본다고 하는, 쉬운 말로 하면 하나의 그 흥분된 감정이 거의 다 있었거든. 그러니까 모두가 다 ‘나도 한 번 해야지’ 하는 그런 어떤 욕심들은 다 가지고 있었어. 그 후에 이제 ‘산업기록화’, ‘경제기록화’, 또 ‘구국기록화’, 기록화가 상당히 유행처럼 됐는데….”
2025년 12월 27일(토) 밤 11시, KBS 1TV에서 방영된 KBS <모던코리아> ‘한국 미술 2부작’의 1부 ‘민족기록화’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정부 주도의 대규모 미술 프로젝트 ‘민족기록화 사업’의 전모를 당시 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영상 자료를 이용해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앞에서도 언급했듯, 1960~70년대 미술계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증언자인 박광진 화백의 생생한 육성은 프로그램 제작에 결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한국 미술사에 중요한 자료로 남을 것이다.
미술, 즉 시각 예술은 한 시대를 들여다보는 좋은 ‘창’이다. ‘민족기록화’를 통해 우리는 유신 시대의 ‘얼굴’을 보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KBS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시 볼 수 있다.
■KBS 모던코리아 한국미술 2부작 1. 민족 / 기록 /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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