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문제작 『다빈치 코드』를 다시 읽는다

석기자미술관(251) 댄 브라운 『다빈치 코드』(문학수첩, 2013)

by 김석
9788983925015.jpg


미국의 소설가 댄 브라운이 2003년에 발표한 소설 『다빈치 코드』는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그리스도의 잔, 신성한 잔으로 불리는 ‘성배’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저 유명한 벽화 <최후의 만찬>에 그려져 있다, 벽화는 성배의 수수께끼를 푸는 완벽한 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성배는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다음은 한국어판 『다빈치 코드』 2권 앞부분에 나오는 결정적 대화.


스크린샷 2026-01-09 152249.png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1495-1498, 템페라, 매스틱, 젯소, 피치, 700×880cm,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밀라노


“알고 보면 <최후의 만찬>에는 실제로 성배가 그려져 있어요. 레오나르도가 아주 눈에 잘 뜨이게 그려 놓았으니까요.”

“잠깐만요.”

소피가 말했다.

“아까는 성배가 여자라고 했잖아요. <최후의 만찬>은 열세 명의 남자를 그린 그림이에요.”

“그런가?”

티빙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봐요.”

소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림을 향해 다가서며 열세 명의 인물을 훑어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 여섯, 오른쪽에 나머지 여섯 명의 제자들이 그려져 있었다.

“다들 남자잖아요.”

소피가 단언했다.

“그래요?”

티빙이 말했다.

“주님 바로 오른쪽, 주빈석에 앉은 사람은 어떻소”

소피는 예수의 바로 오른쪽에 그려진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얼굴과 몸을 찬찬히 살피던 그녀의 얼굴에 경악의 파도가 휘몰아쳤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빨강 머리, 얌전하게 모아 쥔 손은 물론, 봉긋한 젖가슴의 암시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여자였다.

“여자예요!”


물론 실수일 리가 없다. 다빈치는 남녀의 차이를 묘사하는 솜씨가 누구보다 뛰어난 화가였으니까. 『스탕달의 이탈리아 미술 편력』(이마고, 2002)에서 스탕달은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자세하고도 입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다빈치의 창작 태도를 보여주는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콩트작가 지랄디의 책에 언급된 내용을 인용했다.


레오나르도는 예수와 11제자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었지만 유다를 그리는 데는 무척 고심했다. 무엇보다 유다의 얼굴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가 막막했다. 이 부분에서 막혀 작업이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식당이 온통 그림 도구로 어질러져 있는 것에 짜증이 난 수도원장이 마침내 로도비코에게 불평을 털어놓았다. 레오나르도에게 그림값을 두둑이 지불했던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를 불러들여 작업이 그렇게 지체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레오나르도는 하루에 꼬박 2시간씩 그림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의 말을 믿었다. 그래서 수도원장을 불러 레오나르도의 대답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자 수도원장은 “폐하, 그는 한 사람의 얼굴, 그러니까 유다의 얼굴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후로 거의 1년 이상을 붓조차 잡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식당에 얼굴조차 비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수도원장의 대답을 듣고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화를 버럭 내면서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이렇게 대답했다.

“수도자들이 그림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습니까? 물론 수도원장의 말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수도원에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씩 그 작품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수도원장이 말했다는 그 말은 틀린 것입니다.”

로도비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 수도원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하루에 두 시간씩이나 그림을 생각했단 말인가?”

레오나르도가 대답했다.

“이제 유다의 얼굴만이 남아 있습니다. 폐하께서도 잘 알고 계시듯이 유다는 천하의 못된 불한당입니다. 그의 얼굴은 악랄하고 간악하게 그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1년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매일 아침저녁으로 밀라노의 불량배들이 모여 살고 있는 보르게토를 뒤지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얼굴과 딱 맞아떨어지는 간악한 얼굴을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얼굴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하루 만에 그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얼굴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제 문제로 폐하께 불평을 터뜨린 수도원장의 얼굴로 유대를 그려볼 생각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도원장이 제가 생각하는 얼굴의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만족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도원장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의 이런 대답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로도비코는 유다의 얼굴만이 남은 그림에 모든 수도자가 감탄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레오나르도가 하나의 그림을 완벽하게 그려내기 위해서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지를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레오나르도는 찾아 헤매던 얼굴을 마침내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얼굴의 특징을 스케치한 후 <최후의 만찬>에 옮겨 그렸다.

유다.jpg <최후의 만찬>의 유다



하나의 그림을 완벽하게 그려내기 위해 누구보다 깊이 고민하는 다빈치의 창작 태도를 생생하게 증언한 대목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유다는 몸을 뒤로 젖혀 뭔가를 경계하는 듯한 자세를 한 채 왼손으로는 빵을 집으려 하고, 오른손으론 뭔가를 꽉 움켜쥐고 있다. 비밀스러운 뭔가를 둘둘 말아 움켜쥔 저 손이 바로 예수를 배신하는 유다를 가리키는 회화적 장치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최후의 만찬>은 덕지덕지 쌓인 먼지가 워낙 많았던 데다가 18세기에 형편없는 솜씨를 지닌 이가 복구를 한다고 물감을 잔뜩 덧칠해 놓은 까닭에 그림의 세세한 부분이 오래도록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제대로 된 복원을 거친 덕분에 다빈치의 원래 그림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자, 그렇다면 예수의 오른편에 앉은 여인의 정체는 뭘까. 『다빈치 코드』의 해당 대목은 이렇다.


마리아.jpg

“누구예요?”

소피가 물었다.

“그 사람은…….”

티빙이 대답했다.

“마리아 막달레나요.”

소피가 흠칫 그를 돌아보았다.

“창녀 말이에요?”

티빙은 그 말에 상처를 받은 사람처럼 짧은 숨을 들이쉬었다.

“막달레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오. 그 불행한 오해는 초기 교회의 음해 공작이 낳은 유산일 뿐이지. 교회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안고 있는 위험한 비밀, 즉 성배로서의 역할을 은폐하려고 어떻게든 그녀를 깎아내려야 했거든.”


뒤에 이어지는 대화는 마리아라는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였고 심지어 예수의 자식까지 낳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신성 모독’ 논란을 불렀다.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2006년 국내에서 시사회를 생략한 채 전 세계 동시 개봉일에 맞춰 공개된 이유가 있었던 것. 그런 논란을 의식하지 않았을 리 없는 소설가는 초기 기독교 기록 가운데 하나인 빌립의 복음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인용해 놓았다.


구세주의 동반자는 마리아 막달레나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제자들보다 더 그 여인을 사랑하였고, 종종 그 여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곤 하였다. 나머지 제자들은 화를 내며 불만을 표하였다. 그들이 예수에게 말하였다.

“왜 당신은 우리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시나이까?”


그걸론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는지 소설가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복음서에 나오는 구절도 인용했다.

베드로가 말했다.

“구세주께서 정말 우리 모르게 여인과 말씀을 나누었단 말인가? 이제 우리는 그 여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구세주께서 우리보다 그 여인을 더 좋아하셨단 말인가?”

레위가 대답했다.

“베드로, 자네는 그 불같은 성격이 탈일세. 그 여인을 마치 원수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로군. 구세주가 그 여인을 인정하신 마당에, 자네가 어떻게 그 여인을 내칠 수 있겠는가? 구세주께서 그 여인을 잘 알고 계신 건 분명하네. 그래서 우리보다 그 여인을 더 사랑하신 것이야.”


스승이 마리아를 편애하는 게 몹시도 못마땅했던 베드로의 불만을 소설은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에 그린 베드로의 모습으로 연결한다.


베드로.jpg


그림 속의 베드로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향해 위협하듯 몸을 기울인 채 손으로 그녀의 목을 긋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암굴의 마돈나>에 등장했던 바로 그 자세였다.

“여기도 마찬가지에요.”

랭던은 베드로 근처의 다른 제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약간 불길한 느낌이 들지 않아요?”

자세히 보니 제자들 사이에서 손이 하나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저 손이 단검을 들고 있는 건가요?”

“그래요. 더 이상한 것은, 팔의 숫자를 세어 보면 알겠지만 이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는 점입니다. 손만 있고 몸뚱이는 없어요. 익명의 손인 셈이지요.”


단검.jpg

그림을 자세히 뜯어 보면 문제가 있는 해석이다. 단검을 든 손은 베드로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궁금한 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베드로가 왜 한 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인지, 소설에서 마리아로 지목된 인물에게 바짝 붙어서 귀에 대고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옆 사람의 목 가까이 뻗은 베드로의 왼손은 위협의 몸짓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가리키는 건지다. 소설 내용과 상관없이 다빈치의 그림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가톨릭에서 마리아 막달레나(Mary Magdalene)라 부르는 막달라 마리아(기독교의 표현)가 예수의 제자였던 것은 분명하다. 마리아 복음서의 존재가 그 증거다.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신약전서의 기록은 4대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 출신의 여성으로 귀신에 들렸다가 예수에게 치유 받은 뒤 그의 뒤를 따랐다. 이와 관련해선 마가, 누가 두 복음서에 아주 짧게 기록돼 있을 뿐이다. 마가복음 16장 9절에 ‘예수께서 (…)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 누가복음 8장 2절에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신약전서에 막달라 마리아의 정체를 알려주는 다른 기록은 없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예수를 섬기며 따르는 여자가 많았는데, 막달라 마리아도 그중 한 명이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모습은 물론, 예수의 시신이 바위 안에 안치되는 모습도 봤다. 안식일이 지나 장사 지낸 지 사흘째 되던 날 새벽,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시신에 바를 향유를 사 들고 무덤에 갔다가, 입구가 열린 무덤 안에서 천사로부터 예수가 살아났으니 가서 제자들에게 알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황급히 제자들에게 향하던 길에 부활한 예수를 만난다.


960px-Noli-me-tangere-titien.jpg 티치아노, <나를 만지지 말라>, 1514년경, 캔버스에 유채, 111×92cm, 런던 내셔널갤러리


요한복음의 내용은 세 복음서와 결이 조금 다르다. 예수가 십자가가 달렸을 때,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 장사 지낸 지 사흘째 되던 날 새벽, 무덤에 갔다가 입구를 막은 돌이 옮겨진 걸 본 막달라 마리아는 황급히 제자들에게 가 시신이 안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고는 다시 무덤 앞으로 돌아와 우는데 천사들이 나타나고, 이윽고 부활한 예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엔 예수인지 못 알아본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가 살아났음을 알고 제자들에게 가 예수의 부활을 알린다.


조토.jpg 조토, <십자가에 못 박히심 Crucifixion>, 1303-1305, 프레스코, 200×185cm, 스크로베니 예배당, 파도바


예수의 십자가형(crucifixion)은 당연하게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화가에 의해 수없이 많이 그려졌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의 그림에서 십자가 아래 무릎 꿇은 채 차디차게 식은 예수의 발을 붙잡고 우는 여인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다. 복음서에 적힌 것처럼,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애통해한 인물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부활의 최초 목격자란 점이다. 앞에서 본 대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한 예수를 보고도 처음엔 그가 예수인지 못 알아본다. 누가복음 20장 14~15절이다.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참고문헌.png


얼마 전에 읽은 이택광의 책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아트북스, 2008)의 한 장인 <예수의 육체가 중세의 허물을 벗다>에서 『다빈치 코드』를 언급해 놓았기에 몇 년 만에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고, 신약전서를 비롯해 성배 이야기를 담은 중세 문학의 고전 『그라알 이야기』,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의 이탈리아 미술 기행 『스탕달의 이탈리아 미술 편력』까지 독서의 범위를 넓혀봤다.


9788964477700.jpg

특히 이 글을 쓰면서 1945년 이집트 나일강 변에서 발굴된 ‘나그함마디 문서’로 불리는 고대 기독교 문서가 한국어로 정식 번역됐다는 사실을 알고 책을 구했다. 2022년에 출간된 『나그함마디 문서』(동연, 2022)가 그것이다. 번역자는 2021년에 작고한 재야 신학자 이규호라는 분인데, 책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규호 선생은 충남대학교 사학과와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대전상업고등학교 강사로 일하다가 1981년 전두환 정권의 공안조작사건인 ‘한울회’ 사건 주동자로 구속돼 2년 6개월간 억울하게 옥살이했다. 그때 받은 고문으로 얻은 병고와 가난 속에서도 이규호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신비주의에 매료돼 혼자 힘으로 연구에 전념했고, 이 과정에서 나그함마디 문서의 중요성을 인식해 2002년 영어판과 독일어판을 비교해서 우리말로 옮긴 뒤 ‘이서하’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공개했다. 나그함마디 문서 전체를 오로지 혼자 힘으로 번역한 집념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이규호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번역이 책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걸 끝내 보지 못했다. 다만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정순 목원대학교 교수에게 20여 년 전에 자신이 번역한 나그함마디 문서를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고, 이정순 교수가 이규호의 번역을 현대 우리말 어법에 맞게 교정하고, 용어 등을 통일해 2022년 드디어 책으로 내놓았다. 나그함마디 문서 52편을 발견된 지 80여 년 만에 국내 최초로 완역한 것이다. 이규호의 집념 어린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이 귀한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석기자미술관 #다빈치코드 #댄브라운 #다빈치 #최후의만찬 #성배 #마리아막달레나 #막달라마리아 #이택광 #그라알이야기 #스탕달 #나그함마디 #이규호

작가의 이전글조각의 본고장에서 인정받은 세계적인 작가 박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