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시는 ‘좋은 작품’으로 말한다.

석기자미술관(253) 샌디에이고미술관 특별전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by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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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전시를 놓칠 뻔했다. 여러 경로로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딱히 구미가 당기지 않아 관람 리스트에 올려놓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몇 유튜브 채널에서 전시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화가들의 그림이 여러 점 눈에 띄었다. 주의를 기울여 꼼꼼하게 보지 않은 탓이다. 다행히 전시 기간이 넉넉하게 남아 있었으니 망정이지, 더 늦게 알고 나서 땅을 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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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좋은 전시는 ‘좋은 작품’으로 말한다.


미국 서부 해안 최남단에 있는 유명한 휴양도시 샌디에이고(San Diego)를 대표하는 샌디에이고 미술관(The San Diego Museum of Art)은 올해 건립 100주년을 맞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소장품 65점이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단순히 ‘최초’라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65점 가운데 25점이 미술관 건립 이래 최초로 해외에 반출되는 상설 전시품(permanent collection)이다.


대개 해외 미술관의 유명 컬렉션이 ‘최초 공개’라는 이름을 달고 한국에서 전시되는 일이야 많지만, 전시 포스터에 담긴 한두 점을 뺀 나머지는 수장고에서 꺼내온 것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미술관이 자랑하는 좋은 작품을 잘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다르다. 보험가액이 무려 2조 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관람객들이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큼 좋은 작품이 많이 왔다. 좋은 전시는 ‘좋은 작품’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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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짜임새와 배려가 관람객을 흡족하게 한다.


세종문화회관 1층과 지하 1층을 쓰고 있는 세종미술관이 전시 공간으로 훌륭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간의 가치는 운용의 묘(妙)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안다. 전시장 2개 층에 걸쳐 선보이는 작품은 앞에서도 말했듯 65점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그림과 조각이 딱 적당한 공간에 여유 있게 배치돼, 전시 제목처럼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 시대별 주요 작품을 쾌적한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샌디에이고 미술관장의 소개 영상이 가장 먼저 나오고, 각 전시실에선 미술관 서양 미술 담당 큐레이터의 주요 작품 해설 영상을 볼 수 있다.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된 이 영상물들은 전시의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또 하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품과 없는 작품을 구분해 놓으면서, 이 전시를 대표할 만한 작품들은 대부분 사진 촬영을 허락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서 좋다.


20260114_153506.jpg 베르나르디노 루이니,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 (겸손과 허영의 우화)>, 패널에 유채, 1520년경



③ 다빈치의 제자가 그린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한 명으로,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가장 먼저 목격한 인물이다. 기독교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에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막달라 마리아는 기독교의 표기로, 가톨릭에선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한다. 종교개혁 이전의 그림이니 마리아 막달레나로 표기하는 것이 옳겠지만, 개신교의 막강한 영향이 그림 제목에도 반영됐다. 사소한 것 같아도 그 차이가 자못 크다.


몸 파는 창녀로 잘못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이전까지의 비루했던 삶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니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구원받은 영혼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인식됐고, 그런 이유로 르네상스 시대 이래 화가들의 그림 소재로 널리 사랑받았다. 이번 전시에만 막달라 마리아가 등장하는 그림이 여러 점이다. 이 그림은 오랫동안 다빈치의 작품으로 여겨졌다가, 최근에야 다빈치의 제자인 베르나르디노 루이니(Bernardino Luini, 1480/1485~1532)의 작품으로 판명됐다. 오른쪽 여인의 얼굴에서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0260114_154853.jpg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스페인 왕자(필리페 2세 추정)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573년
20260114_155259.jpg 히에로니무스 보스, <그리스도의 체포>, 패널에 유채, 1515년경



④ 중세의 비참을 그린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리스도


네덜란드 출신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년경)의 그림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다. 보스는 중세인이면서도 중세 미술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신비롭고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연 보기 드문 화가였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된 수수께끼 같은 그림 <세속적 쾌락의 정원>으로 유명하다.


<그리스도의 체포>는 4대 복음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가 체포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미 두 손에 붙들린 예수 그리스도를 각양각색의 자세와 표정을 한 인물들이 에워싸고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인간적으로 보일 뿐, 나머지는 무슨 서커스나 우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탐욕스러운 모습이다. 지상에 펼쳐진 인간 지옥의 한가운데서 구원자 예수는 말없이 붙잡혀 끌려간다. 중세의 비참을 시각화한 보스의 그림이 선구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를 보여준다.


20260114_155651.jpg 앤서니 반 다이크, <영국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 캔버스에 유채, 1636~1638년경
20260114_160516.jpg 라헬 뤼스흐, <화병의 꽃>, 캔버스에 유채, 1689
20260114_160745.jpg 엘 그레코, <참회하는 성 베드로>, 캔버스에 유채, 1590-1595년경



⑤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참회


앞에서 본 막달라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제자 베드로의 눈물 또한 화가들이 성경에서 즐겨 그린 소재 가운데 하나였다. 신약의 4대 복음서에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하고, 뒤늦게 그 말씀이 생각나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중세의 화가들이 이 주제를 즐겨 그린 이유는 회개를 통한 구원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소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론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가 문제 삼은 가톨릭의 고해성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베드로는 가톨릭교회의 초대 교황이며, 그 이름을 딴 성당이 오늘날 가톨릭의 총본산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과 함께 근세 스페인을 대표하는 3대 화가로 꼽히는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참회하는 성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한 뒤 뒤늦게 참회하며 눈물 흘리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면 왼쪽에는 천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얘기를 듣고 제자 베드로에게 달려가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이 보인다. 엘 그레코는 인체 비례를 무시한 인물 묘사로 유명해서, 이 그림의 베드로 또한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긴 데다가 두 팔뚝의 근육이 지나칠 정도로 과장되게 그려졌다.


20260114_160956.jpg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하느님의 어린 양>, 캔버스에 유채, 1635-164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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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4_161730.jpg 프란시스코 데 고야, <라 로카 공작 비센테 마리아 데 베라 데 아라곤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795년경



⑥ 들을 수 없게 된 고야의 ‘말하는 초상화’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이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같은 그림을 먼저 떠올릴 이들에게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라 로카 공작 비센테 마리아 데 베라 데 아라곤의 초상>이라는 긴 제목의 그림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야는 어엿한 궁정화가 출신으로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을 비롯해 왕가의 초상을 많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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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가 지독한 콜레라에 걸려 청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지 2년여 뒤에 그린 이 초상화의 특별함은 그림 속 주인공이 입을 살짝 벌려 말하는 순간을 스냅사진처럼 포착하고 있다는 데서 온다. 고야는 청력을 잃은 뒤 이런 ‘말하는 초상화’를 실험적으로 시도했다고 한다. 경위야 어떻든 고야 이전의 어느 화가도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마치 그림 속 인물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200여 년 전 인물을 2026년의 오늘 눈앞에서 실제로 대면하는 것 같은 생동감을 주는 놀라운 그림이다.


20260114_161905.jpg 베르나르도 벨로토, <베네치아, 산 마르코 분지에서 본 몰로 부두>, 캔버스에 유채, 1740년경
20260114_162450.jpg 마리 기유민 브누아, <여인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799년경
20260114_162613.jpg 클로드 모네, <샤이의 건초더미>, 캔버스에 유채, 1865년



⑦ 인상주의의 거장 모네가 초창기에 그린 건초 더미


무엇이 아름다운가. 이 질문에 대한 화가들의 대답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져 왔다. 위에 도판으로 소개한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풍경화 <베네치아, 산 마르코 분지에서 본 몰로 부두>는 17세기 중반 이후 영국을 필두로 한 유럽 상류 사회에서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는 여행 붐이 폭발적으로 유행하던 시절,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한 곳이었던 이탈리아의 수상 도시 베네치아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 했다.


하지만 모네가 그린 건 추수가 끝난 들판 위의 흔하디흔한 건초 더미였다. 멀리 교회의 첨탑을 배경으로 들판에서 일하던 두 농부가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해도 좋을 만큼 모네의 건초 더미에선 어떤 인격마저 느껴진다. 저 특별할 것 없는 해 질 녘 풍경에서 모네는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위대한 것이 반드시 크고 값비싸고 화려하고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의 일상에 깃들어 있다는 것. 모네의 그림은 그걸 여실히 보여준다. 훗날 모네가 그린 건초더미 연작의 모태가 되는 작품이다.


20260114_162835.jpg 메리 카사트, <푸른 보닛을 쓴 시몬느>, 캔버스에 유채, 1903년경
20260114_163004.jpg 에드가 드가, <발레리나>, 캔버스에 유채, 1876년경
20260114_163031.jpg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엘리제 몽마르뜨르의 가면무도회>, 캔버스에 유채, 1887년경
20260114_163114.jpg 막시밀리앙 뤼스, <노트르담 대성당>, 캔버스에 유채, 1900년경
20260114_163253.jpg 피에르 보나르, <몽퇴 씨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915년
20260114_163323.jpg 라울 뒤피, <파리의 센 강>, 캔버스에 유채, 1904년경
20260114_163544.jpg 마리 로랑생, <나나>, 캔버스에 유채, 1927년
20260114_163757.jpg 호아킨 소로야, <나 그랑하의 마리아>, 캔버스에 유채, 1907년



⑧ 정장 입고 야외로 나간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


호아킨 소로야(Joaquin Sorolla, 1863~1923)는 스페인의 항구 도시 발렌시아 출신의 화가다. 두 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아이가 없던 이모 부부에게 입양돼 자랐다. 유명 화가들이 그렇듯 일찌감치 미술에 재능을 보여 공예학교에서 야간 그림 수업을 받았다. 열다섯에 발렌시아의 산카를로스 미술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감복해 그를 스승으로 삼고 꾸준히 벨라스케스의 예술을 탐구했다.


소로야 역시 당시 세계 미술을 휩쓴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회화 세계를 개척했다. 소로야는 천생 화가였다. 갓난아기 때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 걸 빼면 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커다란 시련 없이 화가로서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뇌출혈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될 때까지 40년 동안 4천 점에 이르는 그림을 그렸다. 고국 스페인은 물론 세계 미술의 중심 파리, 그리고 지중해 건너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살아서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행복한 화가였다.


2024년 에이치비 프레스(HB PRESS)라는 출판사가 펴낸 호아킨 소로야 화집 『호아킨 소로야 인생의 그림』을 읽었다. 소로야의 그림은 해외 반출이 안 되기로 유명해서 국내에선 원화를 접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 소로야의 원화 한 점이 나왔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소로야의 딸 마리아. 결핵에 오래 앓은 딸 마리아가 가까스로 회복해 바깥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되자,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집 밖으로 나선 딸의 모습을 화폭에 옮긴 아버지의 애정이 읽히는 그림이다. 무려 100년도 더 된 그림인데도 모델의 패션 감각이 지금 사람의 그것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산뜻하고 아름답다. 샌디에이고 미술관 소장품으로 공식 등록된 첫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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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4_164023.jpg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양치기 소녀>, 보드에 캔버스 부착, 1885년



그 옆에 나란히 걸린 비슷한 크기의 작품이 있다. 19세기 프랑스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부그로의 <양치기 소녀>. 소로야의 그림과 나란히 놓고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두드러진다. 재미있는 건 미술관이 관람객들을 상대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뭐냐고 물었더니 다른 수많은 그림을 제치고 바로 이 그림 <양치기 소녀>가 1위를 차지했다고. 고개를 돌려 관람자를 바라보는 소녀의 저 시선을 누군들 못 본 척 외면할 수 있겠는가.


20260114_163931.jpg 조르주 브라크, <개양귀비>, 캔버스에 유채, 1946년
20260114_164110.jpg 수잔 발라동, <창문 앞에 있는 젊은 여인>, 캔버스에 유채, 1930년
20260114_164306.jpg 라울 뒤피, <화가의 집>, 캔버스에 유채, 1935년
20260114_164355.jpg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파란 눈의 소년>, 캔버스에 유채, 1916년



전시장에 직접 가볼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사진 촬영이 허락된 모든 작품을 여기에 한 점도 빼놓지 않고 모두 소개했다. 2만 3천 원이란 입장료가 조금도 아깝지 않을 만큼 유익한 전시였다. 워낙에 입소문을 많이 탔는지 평일 오후 늦은 시간에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다. 전시를 보러 가실 분들은 유튜브 채널 ‘장르만 여의도’에서 김찬용 도슨트의 전시 소개 영상을 먼저 보시길 추천한다.


■전시 정보

제목: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기간: 2025년 11월 5일(화)~2026년 2월 22일(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75)

문의: 1661-1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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