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돈키호테 삽화

석기자미술관(254)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1』(문예출판사, 2021)

by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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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Don Quijote), 산초(Sancho Panza), 그리고 로시난테(Rocinante).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은 동화책과 텔레비전 만화 주인공들의 이름은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소설 돈키호테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한들 위의 세 이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2021년 김충식의 번역으로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Miguel de Cervantes Saavedra, 1547~1616)의 『돈키호테』 제1권을 읽었다. 원전을 향한 갈망을 이렇게 또 하나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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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손에 넣은 이유는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 1904~1989)의 삽화가 실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린 삽화는 1946년 미국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명성이 자자한 라만차의 돈키호테의 일생과 업적 제1부』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돈키호테 1』 살바도르 달리 에디션에 처음 실린 것이다. 컬러 삽화 10점을 포함해 총 54점이다. 근대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위대한 작가 세르반테스 소설과 20세기 초현실주의 미술의 거장 달리의 삽화가 35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한자리에서 만난 건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라만차 지방의 한 마을에서 사는 돈키호테는 나이 쉰 살 남짓으로, 큰 키에 말라비틀어진 몸과 야윈 얼굴을 한 그저 그런 한미한 시골 귀족이다. 당시에 크게 유행하던 기사도 소설에 흠뻑 빠져 미친 듯이 책을 사 모아선 밤낮 없이 탐독한 결과, 어느 순간 자기가 읽은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신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더 나아가 아예 온 세상을 떠돌며 기사도를 실천하는 ‘편력 기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스스로 ‘라만차의 돈키호테’라 이름 붙인 뒤 자기만큼이나 비루먹은 말 로시난테를 타고 보무도 당당하게 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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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무모한 첫 출향(出鄕)은 얼마 못 돼 처절한 실패로 끝난다. 돈키호테의 광증을 본 장사꾼 일행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쓰러졌다가 우연히 같은 마을 농부에게 발견돼 초주검이 된 채 집으로 돌아온다. 돈키호테의 친한 친구였던 마을 신부와 이발사는 돈키호테를 그 지경으로 만든 기사도 책을 모조리 불태우기로 하고, 중요한 책 몇 권만 남겨둔 채 화형식을 열어 돈키호테가 아끼는 책들을 대부분 불살라버린다. 집에서 쉬며 몸을 회복한 돈키호테는 이번엔 여행 경비를 마련하고 같은 동네에 사는 산초라는 이름의 철없는 농사꾼을 꼬드겨 종자로 삼은 뒤 쥐도 새도 모르게 마을을 떠나 두 번째 출정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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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이야기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는 풍차와의 대결 장면. 두 번째 모험을 떠난 돈키호테는 어느 들판에서 풍차를 보고는 흉악한 거인으로 착각해 산초의 만류에도 애마 로시난테를 몰고 거침없이 적을 향해 돌진한다. 그 결과는?


방패로 몸을 단단히 가리고 겨드랑이에 창을 낀 채 로시난테를 들입다 휘몰아 맨 앞에 있는 풍차에게로 맹렬하게 육박해 들어갔다. 그가 창을 들어서 날개를 쳤을 때, 난데없이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서슬에 그만 창은 부러지고, 말과 그 위에 탄 사람까지 공중으로 몽땅 휩쓸려 올라갔다가 저편 뒤로 내동댕이쳐지니, 기사는 심한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산초 판사는 있는 힘을 다해서 당나귀를 빨리 몰아 그를 구하러 달려왔으나, 막상 닿아서 보니 그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있었다. 궁중에서 떨어질 때 로시난테가 준 충격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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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여행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모험이다. 하지만 철저한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돈키호테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꺾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 황당한 광기에 열불이 난 사람들에게 갖은 폭행과 모욕을 당하는가 하면, 그를 측은히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살뜰한 배려와 보살핌을 받기도 한다. 장장 8백 쪽이 넘는 1권은 그런저런 사건 사고를 겪은 끝에 돈키호테 일행이 여러 달에 걸친 모험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끝난다. 돈키호테의 세 번째 출정 이야기를 담은 후속작을 예고하면서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 삽화에서 살바도르 달리는 드디어 돈키호테의 얼굴을 구체적으로 그렸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깨진 데다가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마른 돈키호테의 상념 어린 눈동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엉뚱한 기사의 새로운 편력을 소설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상징물로 등장하는 ‘풍차’를 통해 암시한다. 초현실주의의 거장답게 달리의 삽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특유의 강렬한 독창성과 개성이 넘친다. 그래서 읽는 즐거움 못지않게 보는 즐거움이 크다.


자, 이제 2권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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