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판화가’ 폴 자쿨레의 그림엽서

석기자미술관(255) 서울옥션 <제189회 미술품 경매> 프리뷰

by 김석
폴 자쿨레.jpg 폴 자쿨레(Paul Jacoulet, 1896~1960)



한국을 사랑했던 화가 폴 자쿨레(Paul Jacoulet, 1896~1960).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으로 3살 때 아버지가 일본 도쿄 외국어대학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했다. 25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32살 때 어머니가 경성제대(서울대학교의 전신)에 재직하던 일본인 의학박사와 재혼하면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생애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내면서도 어머니를 만나러 수시로 서울을 다녀갔고, 그때마다 한국인들의 모습을 판화로 제작했다.


이것이 폴 자쿨레라는 화가의 생애에 관해 알려진 대강의 이력이다. 자쿨레가 한국인을 소재로 완성한 다색목판화는 지금까지 확인된 작품만 대략 40점 가까이 된다. 이 밖에도 100점이 넘는 수채화와 드로잉도 남겼다고 한다.


폴 자쿨레 작품 1.jpg 폴 자쿨레 〈수박 Les Pasteques〉



어머니가 서울에서 살았다는 점 말고도 한국과의 또 다른 인연이 있었다. 자쿨레는 1931년 당시 일본의 야간학교에 다니던 유학생 나영환을 조수로 채용한다. 그리고 1934년에 서울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폴 자쿨레 판화전》을 열었다. 1939년에는 조수 나영환의 동생 나용환도 조수로 채용했고, 1949년에는 나영환의 딸 나성순을 입양한다.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각별한 인연을 맺은 것. 그래서 자쿨레의 판화에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에서 배운 우키요에라는 다색 목판화 기법을 쓴 까닭에 표현 양식은 대단히 일본적이면서 이국적이다.


국내에서 자쿨레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곳은 뜻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양아버지로부터 소유권을 물려받은 재일교포 나성순 씨가 2005년 12월 그동안 보관해 오던 작품 165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기 때문. 이때 기증된 작품들은 이듬해인 2006년 4월부터 6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아시아의 색채: 폴 자쿨레 판화》에서 공개됐다.


■재일교포 나성순씨 佛 자크레 판화 109점 기증 (경향신문 2005.07.20.)

https://www.khan.co.kr/article/20050720175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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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쿨레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2018년 11월부터 2019년 4월 말까지 열린 서울미술관 신관 개관 기획전 《다색조선: 폴 자쿨레》였다. 이때 공개된 자쿨레의 작품은 20여 점이었다. 목판화로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크기에 특유의 다채로운 색이 살아 있는 작품들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전시를 계기로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특별전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당시에는 미술과의 접점이 없었고, 폴 자쿨레라는 화가의 존재도 몰랐으니.


서울옥션 1.jpg 2020년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폴 자쿨레의 작품
서울옥션 2.jpg


그 뒤로 2020년 12월, 자쿨레의 판화 37점이 한꺼번에 서울옥션 경매에 나왔다. 자쿨레가 한국을 소재로 완성한 판화가 정확히 몇 점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경매에 나온 37점 모두 한국을 소개로 한 작품이었다. 작품 한쪽에 작가의 서명과 도장이 남아 있고, 윤곽선 바깥에 작품 제목이 적혀 있었다. 폴 자쿨레의 한국 시리즈 전작으로 봐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최종 낙찰가는 1억 2천만 원이었다.


폴 자쿨레 작품 2.jpg 폴 자쿨레 〈도자기 장인 Le Maitre Potier〉



출품작 가운데 탕건을 쓴 젊은 장인이 붓으로 표주박 모양의 도자기 표면에 유약을 바르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있다. 색깔만 봐도 청자(靑瓷)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표면에 베풀어진 무늬는 모란당초문으로, 청자에 많이 등장하는 그 무늬다. 모양으로 보나, 무늬로 보나 고려청자의 전통을 충실하게 그림에 담았다.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김영사, 2011)의 저자 이충렬은 이 그림을 소개하면서 “근대 우리나라 도공의 청자 재현 작업을 보여주는 유일한 작품”이라고 썼다. 그게 사실이라면 조선의 도자기 장인이 청자를 만드는 모습을 그린 유일한 화가는 조선인이 아닌 외국인이었던 셈. 또 하나 흥미로운 건 그림에 보이는 작업 과정이 앞뒤가 안 맞는다는 점이다. 이충렬은 이렇게 설명했다.


“판화에서 보이는 상태는 초벌구이 전인데, 그때는 도자기에 푸른빛이 돌지 않는다. 도자기에 푸른색이 나타나는 건 유약이 착색되는 재벌구이가 끝난 후인데, 그때는 이미 색이 나왔기 때문에 판화에서처럼 안료를 칠할 필요가 없다. 자쿨레는 아마도 청자에 고유한 비색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가상의 푸른색을 표현한 것 같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프랑스 태생인 건 맞지만, 평생을 동양인으로 산 자쿨레가 도자기 제작 과정을 몰랐을 리 없다. 여러모로 흥미롭기 그지없는 그림이다. 파스텔톤의 색채가 무척 화려하면서, 세부적인 표현을 보면 사람도, 풍경도 전통적인 우리네 모습과는 꽤 거리가 있다. 자쿨레의 그림이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게다가 왜색이 짙다. 이렇게 이해하면 좋겠다. 프랑스인으로 태어나서, 일본인으로 살며, 한국을 그린 화가의 그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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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5년여 만에 서울옥션 경매에 폴 자쿨레의 그림엽서 6점과 스케치 1점, 2018년 서울미술관의 《다색조선: 폴 자쿨레》 전시 도록을 포함한 자료집 10권이 일괄로 나왔다. 추정가는 5백만 원에서 2천만 원. 출품작은 1월 27일(화)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Lot. 109, 폴 자쿨레1910–1994 French, [엽서 6점, 스케치 1점 外 자료 일괄]_1.jpg
Lot. 109, 폴 자쿨레1910–1994 French, [엽서 6점, 스케치 1점 外 자료 일괄]_2.jpg
Lot. 109, 폴 자쿨레1910–1994 French, [엽서 6점, 스케치 1점 外 자료 일괄]_3.jpg


■경매 및 전시 정보

제목: 서울옥션 <제189회 미술품 경매>

경매: 2026년 1월 27일(화) 오후 4시

전시: 2026년 1월 16일(금)~27일(화)

장소: 서울옥션 강남센터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864)

문의: 02-39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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