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257) 서경식 『나의 일본미술 순례 2』
2025년 3월, 지금은 고인이 된 재일조선인 2세 출신의 디아스포라 지식인 서경식 전 도쿄경제대 교수의 책 『나의 일본미술 순례 1』(연립서가, 2022)를 읽었다. 서경식 선생이 미술 잡지 『월간미술』 2020년 6월호부터 2021년 12월호까지 연재한 기사를 다듬어 묶은 책이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나카무라 쓰네(中村彝, 1887~1924), 사에키 유조(佐伯祐三, 1898~1928), 세키네 쇼지(関根正二, 1899~1919), 아이미쓰(靉光, 1907~1946), 오기와라 로쿠잔(荻原碌山, 1879~1910), 노다 히데오(野田英夫, 1908~1939), 마쓰모토 슌스케(松本竣介, 1912~1948) 등 일본 근대미술가 7명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했다.
일본 근대미술을 제대로 소개해 주는 책이 그동안 없었으므로 이 책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게다가 미술을 통해 자기 삶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이만큼 넓고도 깊게 드러내 보여준 이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얻었다. 그래서 2025년 3월, 서경식의 다른 책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읽고 나서 이렇게 썼다. 제목에 <1>이라고 적었을 만큼 후속 작업에 열의를 불태우던 저자가 2023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나의 일본미술 순례』가 한 권으로 끝난 게 몹시도 아쉽다고. 당시 내 글을 읽은 출판사가 다음과 같은 답을 줬다. 2025년 연말, 저자의 2주기에 즈음해 2권을 출간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원고 꼭지는 4장이라 아쉽지만, 정성껏 묶어내겠다고 했다.
출판사가 그 약속을 지켰다. 서경식 선생이 생전에 쓴 귀한 글을 모은 책이 『나의 일본미술 순례 2 + 이 한 장의 그림엽서』란 이름으로 2025년 12월 세상에 나왔다. 출판사가 얘기한 원고 꼭지 4개란 이 책의 1~4장을 이른 것으로, 『월간미술』 2022년 2월 호부터 2023년 2월 호에 실린 연재 기사를 바탕으로 가필, 수정한 것이다. 그 뒤에 다른 잡지에 실린 서경식의 글 한 편, 또 다른 계간 소식지에 「이 한 장의 그림엽서」라는 이름으로 실린 짧은 에세이 22편을 덧붙였다. 책 제목이 《나의 일본미술 순례 2 + 이 한 장의 그림엽서》인 건 그 때문이다.
메이지 시대에 전개된 일본 근대회화의 낭만주의 경향을 대표하는 화가 아오키 시게루(靑木繁, 1882~1991), 일본 근대회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독창적인 화가 기시다 류세이(岸田劉生, 1891~1929), <원폭도> 연작으로 일본 근대회화사에 진한 발자취를 남긴 부부 화가 마루키 이리(丸本位里, 1901~1955)와 마루키 도시(丸本俊, 1912~2000). 지금까지 어느 미술책에서도 본 적 없는 일본 근대화가들의 그림을 도판으로나마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서경식이라는 사려 깊은 이의 감상과 사색을 통해 그림이 주는 의미와 감동에 함께 공명할 수 있었다.
마지막 방한이 된 2023년 가을, 출판사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의 일본미술 순례』의 후속편에서 다룰 화가로 요로즈 데쓰고로, 하세가와 도시유키, 가모이 레이 등을 선정했던 사실이 책 뒤에 실린 「옮긴이의 글」에 적혀 있다. 하지만 선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글은 완성되지 못했다. 자택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던 화집과 자료들은 후속편을 향한 선생의 의지와 애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였으리라. 저자의 황망한 죽음 이후 책을 내겠다는 과업을 자기들의 책무로 받아들이고 약속대로 이뤄낸 출판사의 노고에 독자로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 뜻에 보답하는 길은 누구보다 성실한 독자가 되는 일이리라.
서경식의 글은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훌륭한 해답이다. 나는 서경식의 글에서 내가 미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비로소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출간된 지 불과 한 달 남짓밖에 안 된 책이라 자세한 내용은 옮겨오지 않기로 한다. 다만 내 글을 읽은 분들이 이 귀한 책을 함께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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