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258) 무나씨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BTS의 리더 RM(김남준)이 소문난 미술품 소장가라는 사실을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몇 년 전부터 RM이 다녀갔거나 RM의 소장품이 나온 전시는 어김없이 ‘대박’을 쳤다. 사람들은 RM의 흔적을 쫓아 미술관으로, 갤러리로 마치 성지 순례하듯 몰려다녔고, 그 효과에 놀란 미술관과 갤러리는 너도나도 RM과 전시를 연결하는 마케팅 전략을 경쟁적으로 활용했고, 미술 기자들은 기사 제목을 ‘RM이 사랑한’, ‘RM이 소장한’ 등의 수식어로 시작하면 예외없이 조회수가 ‘떡상’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RM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면, 그 작가는 단숨에 인기 작가로 떠올랐다. 미술계에서 RM은 명실공히 실패 없는 ‘흥행 보증 수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술계에서 오래 취재 현장을 누빈 나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RM이 다녀갔다거나 RM의 소장품이 전시장에 걸렸다는 얘기를 꽤 많이 들었다. 물론 어느 전시장에서 우연히라도 RM을 마주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몇 해 전,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조선 백자 달항아리를 취재하러 갔다가, 우리를 발견하곤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자리를 피하는 RM의 뒷모습을 먼발치에서 딱 한 번 봤을 뿐이다. 방송국 카메라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게다.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우연에 기대 인사라도 나눴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보다 그 바쁜 시간을 쪼개 경매에 출품된 달항아리를 보러 온 그 부지런함과 열의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RM 얘기로 서두를 연 까닭은 무나씨라는 생소한 작가의 개인전에 그의 소장품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어느 글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쳐 몇 마디 적은 것일 뿐, 사실 내가 전시를 선택하고 감상하는 데 김남준 씨의 존재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RM은 전시회를 본 뒤 방명록에 김남준이란 본명을 적는다.) 전시회를 보고 나서 한참 뒤에야 그의 소장품이 뭔지 찾아봤으니 말이다. RM이 소장했다는 무나씨의 그림은 <영원의 소리>(2023)라는 작품이다.
내가 무나씨라는 작가를 궁금해했던 까닭은 홍익대학교에서 한국화를 배운 젊은 화가(1980년생)라는 점이 하나였고, 온통 검정으로만 일관된 무채색의 화면을 고집한다는 점이 둘이었고, 요즘 보는 젊은 작가답지 않게 규모가 상당한 대작에 거침없이 도전한다는 점이었다.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 서울’은 1층과 2층을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1층에서 작품을 보고 난 뒤 2층에서 상영되는 작가 인터뷰 영상을 보면 무나씨라는 작가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에 이를 수 있다.
무나씨(본명 김대현)는 종이 위에 한 번 그으면 되돌릴 수 없는 먹의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 사전에 3D 프로그램으로 자기가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와 구도를 완벽하게 설계한 뒤에 비로소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확실한 건 처음부터 ‘검정’이라는 색에 끌렸다는 점인데, 처음에는 먹만을 사용하다가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해 검정 아크릴물감을 같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같은 검정으로 보여도 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색이 나올 뿐 아니라, 아크릴에 비해 먹은 다루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재료라는 점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무나씨 그림의 특징을 두 가지 표현으로 요약하면 ‘무채색’과 ‘무표정’이다. 부처 또는 불보살의 얼굴을 한 남자에겐 표정이 없다. 그러니 감상자는 그림 속 남자가 보여주는 행동과 자세에 자연스레 주목할 수밖에 없다. 무나씨 그림의 주인공을 편의상 ‘검정 내복’이라 부르기로 하자. 그림 안에 검정 내복을 입은,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있다. ‘검정 내복’은 혼자 있기도, 둘 이상 같이 있기도 하다. ‘검정 내복’은 혼자서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거나 골똘히 자기만의 생각에 잠기거나 한다. 하지만 무나씨의 그림에서 ‘검정 내복’이 혼자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림 속에는 둘 이상의 ‘검정 내복’이 등장한다. 그 둘의 관계를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그로부터 솟아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게 무나씨 그림의 핵심이다. 그림 안에서 관계 맺는 두 사람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떠올리거나 어떤 감정에 이르는 건 순전히 감상자의 몫이다. ‘검정 내복’들은 둘 사이에 가로놓인 경계를 허물고 마음을 나누는 공감에 이를 수 있을까. 무나씨 그림의 가장 큰 장점은 어렵지 않게 자기만의 내밀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는 점일 게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1층 전시장 가장 안쪽 깊은 곳에 있는 대형 작품 <고사관수도>(2025)와 <마음을 담아>(2025) 두 점이다. 두 그림의 배치 또한 무나씨의 작품 세계와 결을 같이한다. 전통에서 끌어온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하는 동시에 병풍이라는 틀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하는 작가의 기량이 예사롭지 않다. 방석에 앉아 자연스럽게 사색과 명상을 유도하는 이 공간에서 한동안 서성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불보살의 얼굴을 한 고사(高士)의 얼굴을 넌지시 올려다본다. 그러다 문득 조선 전기 화가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고사관수도> 속 인물을 새삼 떠올렸다.
전시가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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