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석기자미술관(259) 서경식 『청춘의 사신』(창비, 2002)

by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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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2세 출신의 디아스포라 지식인 서경식 전 도쿄경제대 교수의 책 『청춘의 사신』을 읽었다.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저자가 일본 마이니치신문사가 펴낸 『20세기의 기억』 시리즈에 「미술 이야기」로 집필한 짧은 에세이 31편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서경식 선생은 머리말에서 예술에 빠져들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은 절절한 문장으로 밝혀놓았다.


나에게 예술은 그 숨 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었다. 이제 와서는 그렇게 생각한다. 작은 창문은 벽 높은 곳에 있어서 바깥 경치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의 색깔 변화나 공기가 흐르는 기미는 느낄 수 있었다. 손은 닿지 않고, 창문으로 도망칠 수도 없지만, 그 작은 창문 덕에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고야는 궁정화가이면서 자유주의를 신봉했고, 그 자유주의를 조국 스페인에 가져다줄 줄 알았던 나폴레옹 군대의 잔학함을 보다 못해 「전쟁의 참화」 연작을 제작했다. ‘근대’의 문턱에 서서 그 밝음과 어둠을 응시하고 묘사해낸 고야, 그리고 자신도 찢기듯 죽어간 고야는 나에게 지하실 벽에 뚫린 작은 ‘창(窓)’이었다. 고야처럼 괴로워하고, 고야처럼 싸우고, 고야처럼 죽자. 그 동경이 곧 ‘창’이다.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고흐…… 이들은 모두 나에게 이런 ‘창’이었다.


20260202_152956.png 알베르 마르케, <그랑-오귀스탱 강변, 파리>, 1905



이 책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글은 이름도 생소한 프랑스 야수파 화가 알베르 마르케의 그림 <그랑-조귀스탱 강변, 파리>(1905)를 소개한 서경식의 에세이 「조용한 야수」였다. 알베르 마르케(Albert Marquet, 1875~1947)는 생몰년에서 보듯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화가다. 초기에는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의 대비와 대담한 묘사를 통해 야수파의 일원으로 꼽혔지만, 마르케는 ‘야수’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있는 온화한 화풍을 구사했다.


마르케의 작품을 직접 본 적이 없으므로 그의 예술 세계를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순 없지만, 서경식 선생이 소개한 마르케의 사람됨은 실로 존경할 만한 것이어서, 나 또한 알베르 마르케라는 화가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는 저자의 고백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됐다.


Self-Portrait_Albert_Marquet_(1904).jpg 알베르 마르케, <자화상>, 1904



마르케는 화가로서 일가를 이룬 뒤에도 보통사람과 똑같이 입장료를 내고 루브르 미술관에 다녔다고 한다.

“남편은 특권이나 우대받을 권리를 자신에게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속에 묻히려 했고, 특별취급을 받으면 오히려 불편해했다. 거창한 신앙고백이나 어떤 형태의 웅변에도 끌리지 않고, 미묘한 뉘앙스와 억눌린 감정에 민감했다. 나는 그런 것에 민감하지 않은 그이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마르셀 마르케)


마르케에게도 제2차 세계대전은 고난의 시기였다. 1940년 6월, 나치에 항의하는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반나치즘 포스터에 서명했기 때문에, 그와 아내 마르셀은 독일군의 입성이 임박한 파리에서 도망쳐야 했다. “두 달이나 길어야 여름이 끝날 때까지만” 피신해 있을 작정이었지만, 결국 알제리에서 5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파리로 돌아온 마르케가 한 말은 정말로 마르케답다. “우리는 특권을 가진 인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고통받은 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근대 이후의 예술가에게는 드문 일이지만, 마르케는 자신의 독창성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작렬하는 불꽃 같은 고흐나 에곤 실레의 작품은 훌륭하다. 당당하게 마지막까지 왕도를 걸은 피카소나 마티스도 훌륭하다. 하지만 나는 이 마르케 같은 화가도 남몰래 사랑하고 싶다.


서경식 선생의 책을 읽는 게 즐거운 이유는 흔한 미술책에선 본 적 없는 그림들을 주로 소개한다는 점이다. 그중 일본 근대미술 작품은 특히 더 귀하다. 이 책에 실린 글 31편 가운데 일본 근대 화가의 그림을 다룬 게 7편이다. 세키네 쇼지, 이케다 요손, 사에키 유조, 노다 히데오, 하세가와 토시유키, 아이미쓰, 후지타 쓰구하루. 이 화가들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서경식 선생의 다른 책 『나의 일본미술 순례 1』을 참고하면 된다. 이 가운데 내가 가장 눈여겨 본 그림은 이케다 요손(池田遙邨, 1895~1988)의 <재화의 흔적>(1924)이라는 작품이다.


20260202_155016.png 이케다 요손, <재화의 흔적>, 1924



저자가 ‘일본화 역사에 홀연히 나타난 이단의 명작’이라 소개한 이 그림은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의 참상을 세로 167cm, 가로 375cm에 이르는 여섯 폭 병풍에 담아낸 대작이다. 대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27살이었던 이케다 요손은 지진 피해 지역의 실상을 그리기 위해 한 달여 동안 피해 지역을 다니며 400점이 넘는 스케치를 그렸다고 한다. 서경식 선생은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림도구는 물론 먹을 것과 잠잘 곳을 구하기도 어려웠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대단한 기록정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화가는 이 그림을 1924년 제5회 제국미술전람회에 출품했지만, 보기 좋게 낙선했다. 저자말마따나 “이 작품은 화조풍월(花鳥風月)만을 주제로 삼아온 일본화의 울타리를 깨뜨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세계에서 일가족으로 보이는 네 사람의 몸짓과 표정은 한없이 쓸쓸하다. 근처 나무도 줄기와 가지와 모조리 잘려 나간 채 유령처럼 서 있고, 화면 오른쪽 아래에는 죽은 나무보다 더 앙상하게 뼈만 남은 개가 먹이를 찾아 덧없이 헤매고 있다. 1920년대에 이런 소재를 병풍에 그렸으니, 당시로써는 일찍이 본 적 없는 ‘파격’이요 ‘이단’이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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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기 주오에 있는 구라시키 시립 미술관 컬렉션의 중심은 구라시키 출신 화가 이케다 요손의 작품이다.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만 489점에 이른다고 한다. 언젠가 일본 구라시키 시립미술관에 가게 되면 이케다 요손의 <재화의 흔적>만큼은 반드시 두 눈으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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