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263) 서울옥션 <제190회 미술품 경매> 프리뷰
<해바라기>라는 제목이 없었다면 이 그림이 해바라기를 그린 거라고 알아챌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까지 내가 본 해바라기 가운데 가장 기이한 그림이다. 둥근 행성들과 그 행성들을 연결하는 빛줄기가 얽힌 우주 공간을 보는 듯하다. 태양, 즉 해를 바라본대서 해바라기라 이름하지 않았던가. 흙빛으로 가득한 화면에선 아무런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월남에 성공한 김창열이 1955년에 그린 그림. 전쟁의 상흔과 후유증에서 벗어나 꺼져가던 생의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너도나도 몸부림치던 시절이었다. 해바라기를 온전한 해바라기로 볼 수도, 그릴 수도 없었던 시대. 꽃을 꽃답게 그리는 일조차 미안했던 시대. 그래서였을까. 김창열의 해바라기는 어둡고, 외롭다.
1955년 제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이 그림은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김창열 회고전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물론 나는 그 전시를 봤다. 한데 어쩐 일인지 이 그림을 본 기억이 전혀 안 난다. 1955년이면 지금까지 확인된 김창열의 그림으론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대체 그땐 이 그림을 왜 주목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 그림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처음 얼굴을 내민 뒤 곧바로 서울옥션 2월 경매에 나왔다. 국전 출품작이었던 만큼 당시로선 꽤 큰 화면이다. 하지만 좋은 시절에 좋은 재료로 그리지 못한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상처가 많다. 캔버스가 살짝 뒤틀려 모서리가 정확한 직각을 이루지 못하고, 군데군데 물감이 갈라져 떨어져 나간 게 보인다.
필시 화가가 그린 뒤 단 한 번도 수리 복원을 위해 손을 대지 않은 원형 그대로다. 만약 소장자가 손을 댔다면 그림이 주는 감동이 퇴색했을 게 분명하다. 71년. 족히 한 사람이 태어나고 죽을 만한 그 시간을 견딘 그림이다. 그러므로 그림에 남은 상처까지도 그림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그 그림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리라.
김창열 하면 물방울만 전부인 것처럼 돼버렸지만, 나는 젊은 김창열의 고투가 깃든 이 그림이 훨씬 더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싸구려 붓에 싸구려 물감을, 그것도 아까워서 아주 조금씩만 묻혀, 싸구려 캔버스에 얇게 펴 발랐을 화가의 모습을 가만히 상상해 본다. 이런 그림은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게 마땅하다.
요즘 인물화로 주목받는 젊은 화가 이목하의 작은 그림 <웃음 잃은 종달새>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을 보는 순간, 2014년 퓰리처상을 받은 도나 타트의 소설 『황금방울새』로 유명해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카렐 파브리티위스(Carel Fabritius, 1622~1654)의 그림 <황금방울새>가 불현듯 떠올랐다. 웃음을 잃어버린 새, 그리고 발이 묶여버린 새. 어떤 연상 작용으로 한 그림이 다른 그림을 불러냈다. 다만 지나치게 직접적인 그림 제목이 조금 거슬린다. <황금방울새>처럼 그냥 <종달새>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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