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새해에도 달린다…그림 속으로 들어온 ‘말’

석기자미술관(267) 이천시립월전미술관 기획전 《띠그림전: 말馬》

by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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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립월전미술관이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를 기념하는 《띠그림전: 말馬》을 2월 12일부터 4월 19일까지 연다. 장우성, 이석구, 정종해, 이민주, 허진, 임만혁, 송형노, 김태형, 권지은, 김은형, 김혜영, 기명현까지 총 13인의 작가가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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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병오년(丙午年)은 불의 기운을 지닌 ‘병(丙)’과 십이간지 중 말에 대응되는 ‘오(午)’가 만나 새로운 움직임과 도약을 연상시키는 해이다. 말은 기원전 약 4,000~5,000년경부터 가축화되기 시작해 오랜 시간 인간의 삶과 함께하며 이동 수단이자 노동, 전쟁과 교역의 현장에서 문명의 형성과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천리마(千里馬)는 탁월한 인재를, 새옹지마(塞翁之馬)는 예측할 수 없는 길흉화복을, 역마(驛馬)는 이동과 변화를 상징하며 우리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말 그림은 4세기에서 7세기 초에 걸쳐 축조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확인될 만큼 그 역사가 깊다. 조선 중기 이후 문인들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회화소재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말은 예술 작품 속에서 여전히 다양한 의미를 품고 등장한다. 이번 전시는 월전 장우성과 현대 작가 13인의 개성 있는 시각을 통해 십이지의 형상에서 시작하여 말이 지닌 본연의 기운을 나타내는가 하면, 인간의 내면, 일상의 서사, 꿈과 환상에 이르기까지 말을 다양한 층위에서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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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속에 피어난 말


나형민은 문자 기호인 한글을 조형 언어로 확장하며 ‘한글 문자도’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 왔다. 조선 후기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와 같은 유교적 덕목을 담은 문자도가 크게 유행했는데, 그는 이러한 문자도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한자가 아닌 한글을 조형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한글 최초의 글씨체인 판본체를 활용·변형하고 그 안에 다양한 상징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글자를 읽으면서 동시에 그림을 보는 독특한 경험을 이끌어낸다. <십이지-말>은 한글 ‘말’ 안에 역동적으로 질주하는 적색의 말을 형상화하고 태양을 향하는 속성을 지닌 해바라기를 배치했다. 적토(赤兎)의 붉은 색상과 해바라기의 상징인 해(日)는 강한 생명력과 뜨거운 열정을 함축하는 것으로 적토마의 전진성과 미래를 향한 도약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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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_144339.jpg 나형민, <십이지 한글문자도>, 각 59.4×42cm, 한지에 채색, 2025
20260225_144358.jpg 나형민, <십이지-말>, 59.4×42cm, 한지에 채색, 2025


■생동하는 순간


장우성·이석구·정종해는 ‘말’의 생명력과 역동적인 기운을 포착한다. 발묵(潑墨)과 채색 기법으로 기본으로 하면서도 각자의 개성 있는 방식을 더해 표현의 영역을 확장한다. 장우성은 초본에서 확보한 정확성을 바탕으로 말이 지닌 생명력과 기세를 보여준다. 이석구는 강렬한 붉은색과 거침없는 붓질로 군마의 에너지를 화면 전체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한편, 정종해는 수묵의 농담과 과감한 붓 터치로 질주의 순간을 포착한다. 이들에게 말은 단순한 재현의 대상이 아니다. 작품 속 말은 본연의 생명력과 원초적 에너지를 시각화하며 화면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살아있는 기운 그 자체로 존재한다.


20260225_144457.jpg 장우성, <말>, 74×44cm, 한지에 수묵채색, 연도미상, 개인소장



蹄似追風去 말발굽은 바람을 쫓아가고

影如逐雷來 그림자 전광석처럼 달려온다.

白水老石室主人 月田寫 백수노석실주인 월전 그리다.


20260225_144607.jpg 장우성, <말 초본>, 76×46cm, 한지에 먹, 연도미상, 이천시립월전미술관
20260225_144752.jpg 이석구, <광마 狂馬>, 117×94cm, 한지에 수묵담채,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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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_144850.jpg 이석구, <주마 走馬>, 90×119cm, 종이에 수묵채색,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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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_144638.jpg 정종해, <질주 疾走>, 109×300cm, 면(綿)에 수묵, 2011
20260225_144715.jpg 정종해, <절규>, 106×140cm, 목면에 수묵, 2019



■내면을 비추다


이민주·허진·권지은에게 ‘말’은 인간의 감정과 욕망이 투영된 존재이다. 이들은 말을 통해 각자의 표현 방식으로 현대인의 심리와 감각을 드러낸다. 이민주의 말은 ‘공명필선(共鳴筆線)’으로 표현되며 비어 있는 듯한 내면 속에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허진의 말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으로 습관과 타성에 길든 일상을 넘어서 자유를 향해 내달린다. 반면 권지은의 얼룩말은 현대인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근원적 공포를 직시하게 하며 이를 제거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감정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들은 말이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 내면의 욕망과 상처, 불안과 해방의 갈망을 시각화하며 현대인의 불안정한 감정과 정체성을 탐색한다.


20260225_145226.jpg 이민주, <두바이의 달빛>, 91×116.8cm, 캔버스에 아크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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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_145253.jpg 이민주, <삼라만상의 공명 1>, 307×100cm, 한지에 먹, 2018
20260225_145314.jpg 이민주, <그대와>, 91×116.8cm, 캔버스에 혼합매체, 2022
20260225_145120.jpg 허진, <유목동물+인간2010-7(강진의 추억)>, 162×130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10
20260225_145155.jpg (좌) 허진, <유목동물2011-4>, 2011 (우) <유목동물2011-6>, 2011
20260225_144957.jpg 권지은, <불어오는 바람소리 #1, #2>, 90×90cm, 장지에 채색, 2017
20260225_145020.jpg 권지은, <夢幻-유령나무>, 91×117cm, 장지에 혼합재료, 2020
20260225_145044.jpg 권지은, <두 개의 달_침묵의 시간>, 80×117cm, 장지에 채색, 2024
20260225_145102.jpg 권지은, <夢幻-기다림의 다른 이름>, 91×117cm, 장지에 채색,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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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건너는 시간


임만혁·김태형·김은형은 ‘말’을 통해 인간의 삶과 인생 여정을 이야기한다. 임만혁의 말은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친구이자 동반자로 가족 관계를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김태형의 말은 불만족스러운 일상의 압력을 벗어나게 하는 존재로 현실을 벗어나 탈주하려는 욕망을 싣고 달린다. 김은형의 작품 속 말과 당나귀는 전통 회화를 재해석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시간여행의 이동 수단으로 인간의 번뇌를 상징한다. 이들은 말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치유와 위안, 유대와 탈주, 순환과 지속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20260225_145641.jpg 임만혁, <말과 가족 21-4>, 132×84cm, 한지에 목탄채색, 2021
20260225_145804.jpg 임만혁, <말과 가족 23-1>, 176×133cm, 한지에 목탄채색, 2023
20260225_145826.jpg 임만혁, <말과 가족 21-3>, 67×135cm, 한지에 목탄채색, 2021
20260225_145843.jpg 임만혁, <가족 이야기 25-1>, 151×213cm, 한지에 목탄, 2025
20260225_145717.jpg 김태형, <달리는 아빠>, 120×160cm, 장지에 먹, 아크릴잉크, 2022
20260225_145741.jpg 김태형, <놀이가 끝나고 난 뒤 No.2>, 117×182cm, 장지에 먹, 아크릴과슈, 아크릴잉크, 2023
20260225_145904.jpg 김은형, <뇌행성 정류장>, 200×420cm, 한지에 먹, 2021
20260225_145931.jpg 김은형, <장과로와 타임머신>, 162×130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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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머무는 자리


송형노·김혜영·겸영현의 작품에서 ‘말’은 오랜 시간 고정되었던 기존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로 등장한다. 이들에게 말은 단순히 에너지 넘치는 동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시화하는 심리적 매개체로 작용한다. 송형노의 말은 삶의 의지를 투영한 자아의 대리인 역할을 하며, 김혜영의 말은 고요한 정적 속에서 내면을 응시하게 하는 자아성찰의 안내자이다. 또한, 김영현의 말은 환영된 학습이 허구임을 드러내며 믿음과 허구의 경계를 물어보게 만드는 상징적 도상이다. 현대적 상징물로 재해석된 말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냄으로써 관객을 익숙한 현실로부터 분리하고 환상과 성찰의 세계로 이끌며 신념을 되돌아보게 한다.


20260225_150209.jpg 송형노, <Dream (White Horse & Rabbit)> , 80×80cm, 캔버스에 아크릴, 유화, 2017
20260225_150231.jpg 송형노, <Dream of White Horse>, 162×130cm, 캔버스에 아크릴, 유화, 2013
20260225_150256.jpg 송형노, <The Race>, 388×130cm, 캔버스에 아크릴, 유화, 2012, 수호갤러리
20260225_150330.jpg 송형노, <Dream of White Horse>, 130×194cm, 캔버스에 아크릴, 유화, 2024
20260225_150354.jpg 김혜영, <혼잣, 말>, 90.0×65.1cm, 세목에 아크릴, 유화, 2025, 개인소장
20260225_150407.jpg 김혜영, <어디에도 닿지 않는 문>, 130×162.2cm, 세목에 아크릴, 유화, 2025
20260225_150129.jpg 김영현, <숨바꼭질>, 103×154cm, 광목에 채색, 2024
20260225_150150.jpg 김영현, <붉은 말>, 72.7×60.6cm, 광목에 채색, 호분, 2024
20260225_150437.jpg 김영현, <잠자는 말>, 122×82cm, 광목에 채색, 호분, 2022



■전시 정보

제목: 이천시립월전미술관 기획전 《띠그림전: 말馬》

기간: 2026년 2월 12일~4월 19일

장소: 이천시립월전미술관 (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 2709번길 185)

문의: 031-637-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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