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고 촌스럽다고? ‘이발소 그림’을 위한 변명

석기자미술관(268) 박석우 『이발소그림』(동연, 1999)

by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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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래방 그림


내가 즐겨 찾는 노래방에는 출입구부터 복도, 방 안에까지 제법 그럴싸한 그림들이 걸려 있다. 세련되게 차려입은 우아한 여성들이 야외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부터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기타 반주에 맞춰 신명 나게 춤추는 장면을 담은 그림들. 그런데 자세히 뜯어 보면 물감으로 그린 실제 그림이 아니라 시트지 같은 데다가 인쇄해서 붙여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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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에 늘 동행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이 그림 어때?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잘 그렸는데요. 처음엔 미술을 모르는 친구이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노래방에 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그림에 서서히 정이 든 걸까. 원화가 아닌 인쇄물에 불과했지만, 노래방이란 공간에 제법 잘 어울렸다. 주인에게 물었더니 유래는 잘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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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발소에 걸린 서양 명화


근대의 물결이 서서히 밀려 들어오면서 도시 곳곳에 서구식 가게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이발소다. 돈 받고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봉건 시대를 지나 국가가 단발령을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긴 머리를 자르도록 했다. 머리털 길이가 짧아지자, 스스로 관리하기가 어렵게 됐다. 그래서 생겨난 게 이발소다. 이발소는 새롭게 도래한 시대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에서 그 시절 이발소 풍경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이발소라는 하드웨어만 들어온 게 아니었다. 이발소라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공간에 어울리는 그림이 벽을 장식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근사한 서양 그림들이었다. 이 땅에 미술 문화란 게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 같은 그림을 난생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겠는가. 그렇게 이발소는 단순히 머리털을 자르는 공간만이 아니라, 이렇다 할 문화생활이 없는 서민들의 문화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문화가 죽 이어지면서 어느 시점엔가 그런 그림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말이 생겼다. ‘이발소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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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발소 그림


취재진: 그림이 여러 장 있는데, 왜 붙여 놓으신 겁니까?

이발사: 그림이요? 보기 좋으라고 붙여 놓은 거지.

취재진: 직접 고르셨나요?

이발사: 예. 내가 직접 골랐어요.

취재진: 어떤 걸 고르셨어요? 어떤 기준으로?

이발사: 실내는 풍경이 좋잖아. 풍경 그림이 좋으니까 골라서 내가 붙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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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월, KBS 1TV에서 방영된 <문화탐험 오늘의 현장 ‘이발소 그림’을 다시본다> 편에 나오는 대화 장면이다. 밀레니엄을 불과 한 해 앞둔 1999년에도 오래된 이발소에 가면 예의 풍경화나 복돼지 그림 따위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1990년대에 20대 시절을 통과하던 나도 머리털을 자르려 이발소에 들락거리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비단 이발소뿐이겠는가. 예컨대 교회에 가면 어김없이 예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들을 누가 그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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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버스나 택시를 타면 겸허하게 무릎 꿇고 앉아 가지런히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소녀 옆에 ‘오늘도 무사히’라 적힌 작은 그림을 부적처럼 붙여 놓고 다니는 걸 볼 수 있다. 시골 냄새 물씬 나는 전통 음식점에 가면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가 걸려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 생활 공간 곳곳에서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는 그런 그림들을 지금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딱지 그림’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꽃 그림이 붙어 있다. 나는 심지어 어느 건물 화장실에서 이왈종의 그림을 본 적도 있다. 물론 인쇄본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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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발소 그림 전시회


1999년 예술의전당에서 《이발소 명화 – 대중미술 바로보기》(1999.7.16.~8.22)라는 전시회가 열려 화제가 됐다. 말 그대로 ‘이발소 그림’만 모아서 보여주는 사상 첫 전시였다. 내가 이런 전시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전에 다녀온 사비나미술관 개관 30주년 전시회 《1만 일의 시간: 미술이 묻고 사비나가 답하다》(2026.2.6.~4.19)에서였다. 예술의전당에서 ‘이발소 그림’을 전시한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로썬 대단한 파격이었을 게다. 이 전시를 기획한 주체가 바로 사비나미술관의 전신인 갤러리사비나였다. 당시 전시를 소개한 문구를 그대로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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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전시는 오랫동안 미술 제도권의 시야 밖에 머물렀던 ‘이발소 그림’을 대중미술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한 기획이다. 동네 이발소는 한때 밀레의 <이삭줍기> 복제화부터 이름 모를 풍경화까지 일반 대중이 가장 손쉽게 그림을 만나는 장소였다. 대량 생산된 값싼 장식화로 폄하되어 온 이발소 그림이지만, 이를 고른 사람들에게 그림은 집안을 단정히 꾸미고자 하는 욕망, 행운과 안녕을 빌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려는 마음이 담긴 이미지였다. 이 전시는 이발소 벽에 걸린 그림의 변화를 통해 20세기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사회사 아카이브로서의 의미도 부여한다. 해방 전후 이발소를 통해 처음 접한 서양 명화 복제는 대중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고, 기독교 문화와 결합하며 빠르게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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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에는 이농과 도시화 속에서 고향과 자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전원 풍경이 유행했고, 이후에는 복돼지·호랑이·학 등 기복과 수호의 상징이 널리 유통되며 시대의 욕망과 불안을 반영했다.


전시는 당구장·다방·영화관·이발소 등 대중 공간에 걸려 있던 그림들을 미술관 내부로 옮겨와 이를 저급한 장식이 아니라 대중적 미술로 호명한다. 관람객은 실제 이발소에 걸려 있던 그림을 통해 골목 풍경과 당시 정서를 떠올리며 작품 감상이 곧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환기시키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이발소 명화》는 고급 미술과 대중 취향의 위계를 재검토하게 만들며 그림에 담긴 행운·기원·위안의 정서에 주목함으로써 대중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묻는다. 전문 수집가나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주요 관람자로 상정한 이 전시는 대중미술이 오랫동안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지켜온 가장 가까운 이미지였음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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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술 교사의 이발소 그림 연구


이 전시회가 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가 있다. 고등학교 미술 교사 박석우 씨다. 박씨는 ‘이발소 그림’으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고, 그 연장선에서 1999년 2월에 『이발소그림』이란 책을 냈다. 당시까지 10여 년 동안 전국 각지를 찾아다니며 현장을 조사하고 직접 수집한 그림들이 《이발소 명화》라는 전시회로까지 이어졌다. 박석우의 『이발소그림』은 지금까지도 ‘이발소 그림’을 주제로 한 단행본으로는 유일무이한 책이다. 최근 나는 이 책을 중고서점에서 구해 읽었다. 박석우는 책을 쓴 이유를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중미술은 바로 조선시대 민화의 연장인 것이다. 이러한 그림들이야말로 오랫동안 대중의 주변에서 풀뿌리처럼 모질게 자생했다. 막걸리처럼 밀주처럼 민초 속에서 만들어져 민초들에게 사랑받았다. 그것은 바로 생활 속의 미술, 생명의 미술, 살아 숨 쉬는 미술이다.


책 출간과 같은 시기에 KBS에서 방영된 <문화탐험 오늘의 현장 ‘이발소 그림’을 다시본다> 역시 박석우 씨의 연구와 수집품,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어느덧 사반세기가 흘렀다. 최근 행적을 찾아보니 박석우 씨는 지난해 10월 『바람의 붓질』이라는 시집을 냈다. 그는 텃밭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지금도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는 대중미술을 연구하는지는 모르겠다. 1999년 KBS와 인터뷰할 당시 박씨는 젊고 의욕 넘치는 미술 교사였다.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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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 아줌마 손잡고 같이 미술관에 들어가면 하품밖에 안 나온다 이럽니다. 그런데 시장통의 아줌마한테 돼지 그림 설명하라고 하면 설명할 수 있어요. 현대미술은 생산자가 주인공이 되는 미술이지만, 대중미술은 소비자가 주인공이 되는, 나 이런 그림이 필요하다고 하면, 이런 그림이 만들어져서 걸리고 쓰이고 소통되는, 이런 구조를 가진 게 바로 대중미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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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삼각지와 민정기


1999년 KBS가 방영한 <문화탐험 오늘의 현장 ‘이발소 그림’을 다시본다>는 그런 대중미술의 전모를 본격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다. 이발소 그림은 물론 혁필화, 극장 간판 그림, 그리고 기지촌 그림까지 대중미술 범주에 포함되는 모든 분야를 골고루 화면에 담았다. 특히 지금은 시골 장터에서조차 만나기 힘든 혁필화가들과 어느 순간 아예 사라지고 없는 극장 간판 화가들의 생전 모습과 육성은 문화유산이 필적할 만큼 귀한 자료다. 아울러 월드컵이 열린 2002년 11월에 KBS가 제작 방송한 <디지털 미술관 삼각지 비망록>은 지금은 자취를 감춘, 수많은 대중화가가 모여 그림을 그리던 서울 삼각지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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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기 포옹.png 민정기 <포옹>
민정기 돼지.png 민정기 <돼지>



여기서 우리는 ‘이발소 그림’의 역사에서 절대 빼놓아선 안 될 한 화가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이었던 민정기 화백이다. 민 화백은 1979년에 서울 삼각지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그 일대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상업적 그림을 접한다. 민정기는 그런 그림을 유화로 정성스럽게 모사해 전시회에 내놓음으로써 당시 화단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이발소 그림’에서 주목한 건 대중과의 ‘소통’이었다. 대중미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민정기는 일찌감치 간파했다.

대중미술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이들의 노력은 그림으로, 전시회로, TV 프로그램으로, 책으로 남았다. 하여 두루 조사하고 정리해 여기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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