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마지막 날들

석기자미술관(269) KBS 역사스페셜 <사라진 왕의 눈 단원 김홍도>

by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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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단원 김홍도의 죽음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전기 작가 이충렬 선생이 1999년에 발표한 김홍도 전기 『천년의 화가 김홍도』(메디치, 1999)를 읽으면서였다. 미술에도 상당히 해박한 이충렬 작가는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그동안 물음표로 남았던 김홍도의 출생과 사망을 남아 있는 자료를 근거로 추적해 전기에 담았다. 특히 치밀한 고증을 통해 김홍도의 출생지를 처음으로 밝힌 건 의미 있는 성과였고, 당시 나는 이충렬 작가와 현장을 동행 취재해 9시 뉴스 기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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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화가’ 김홍도 출생지 처음 밝혀냈다 (KBS 뉴스9 2019.12.0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4336960


그렇다면 김홍도는 언제, 어디서 세상을 떠났을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김홍도의 사망 연도가 ‘1806년(순조 6) 추정’으로 적혀 있다. 위키백과도 마찬가지로 ‘1806년경’으로 돼 있다. 이렇게 보는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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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순조 4년), 59세가 된 김홍도는 손주뻘이라고 해도 좋을 새파랗게 젊은 화원들과 똑같이 시험을 쳐 제자 박유성과 함께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이 됐다. 하지만 고질병인 천식으로 몸이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다. 1805년(순조 5년), 제자 박유성이 전주 전라감영의 군관으로 전출됐다. 병이 악화하자 김홍도는 그해 9월 사표를 냈다. 제자 박유성이 편지를 보내 전주에 내려와서 지내시라고 권유했다. 김홍도는 곧장 전주로 내려갔다. 당시 전라감사였던 심상규는 과거 김홍도가 시모임에서 안면을 튼 사이였다. 심상규의 배려 덕분에 김홍도는 서울보다 한결 따뜻한 전주에서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 집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이 걱정이었다. 그림을 그려야 했다. 오랜만에 붓을 든 김홍도는 송나라 문인 구양수가 생을 돌아보며 쓴 <추성부 秋聲賦>의 시구를 떠올렸다.


슬프다! 초목은 감정이 없어 때가 되면 날리어 떨어지지만, 사람은 동물이고 오직 만물의 영장이다. 온갖 근심을 마음에 느껴 수많은 일이 그 몸을 수고롭게 하여, 마음속에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정신을 동요시킨다. 하물며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바를 생각하고 자신의 지혜가 할 수 없는 바를 근심하는 경우이겠는가. 짙게 붉던 얼굴이 마른 나무처럼 되고, 까맣게 검던 머리가 허옇게 되는 것이 마땅하다. 어찌하여 금석의 재질도 아닌데 초목과 더불어 무성함을 다투고자 하는가? 누가 이것에 대해 상하게 하고 해치는가를 생각해보면 또한 어찌 가을 소리를 한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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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탄생한 그림이 바로 김홍도 최후의 걸작으로 불리는 <추성부도>였다. 그림을 완성한 김홍도는 제자 박유성에게 부탁해 이 그림을 서울에 있는 둘도 없는 친구 이인문에게 보냈다. 곧 그림을 팔아 돈을 마련해 처자식에게 줄 것이었다. 김홍도는 나이 들어 어렵사리 얻은 귀한 아들 김양기에게 편지를 썼다.

아들 연록아 보아라.

날씨가 이처럼 차가운데 집안 모두 편안히 지내며 너의 독서 공부는 한결같으냐.

나의 병세는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에 이미 다 말했으므로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너의 훈장 선생 댁에 갈 월사금을 찾아 보내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럽구나.

정신이 어지러워 더 쓰지 않는다.

을축년 섣달 십구일에 아버지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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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양기가 아버지의 글씨와 그림을 모아 묶은 서첩 《단원유묵첩》 34번째 면에 실려 있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이 한 통뿐이다. 김홍도가 편지를 쓴 시기는 1805년 12월 19일이다. 이것 말고도 기록이 하나 더 있다. 김홍도의 전주 생활을 도와준 당시 전라감사 심상규의 문집 《두실존고 斗室存稿》 척독(尺牘) 편에 심상규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 가운데 김홍도를 언급한 대목이 있다.


화사 김홍도가 굶주리고 병들어 먹을 것을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이 사람은 이 시대에 재주가 훌륭한 사람인데 그 곤궁함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인재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그에게 작은 부채에 매화 한 가지를 그리게 하고 스무 자 절구를 써서 보냅니다.


두실존고.png 심상규의 《두실존고 斗室存稿》 척독(尺牘) 편



심상규가 이 편지를 쓴 시점이 1805년 12월 30일. 이것이 김홍도에 관한 마지막 기록이다. 김홍도의 이후를 알려주는 기록은 남아 있는 게 없다. 김홍도가 세상을 떠난 해를 1806년으로 보는 합리적인 근거다. 말년의 김홍도는 가난과 병마로 고생했다. 당대 최고로 불린 화가 치고는 그 인생의 끝이 실로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소설가 김탁환은 『참 좋았더라』(남해의봄날, 2024)에서 불행으로 점철된 화가 이중섭이 가장 좋았던 통영 시절을 이중섭의 화양연화로 봤다. 김홍도의 화양연화는 언제일까? 정조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도화서 최고의 화가로 한껏 명성을 날리던 그 시절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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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2일(일) 방송된 KBS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 <사라진 왕의 눈 단원 김홍도> 편은 김홍도 생애 가장 빛나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1795년(정조 19년)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는 동시에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현륭원(顯隆園)에 참배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수원으로 간다. 그리고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성대했던 8일 간의 행차를 그림으로 남겨 기념하게 했다. 등장인물만 6천여 명, 말이 1천여 필에 이르는 기념비적 대작 <화성원행도>였다. 이 그림의 제작을 총괄 감독한 이가 바로 김홍도였다.


붓을 잡으면 천기가 흘러나와 만물이 살아 움직였다. - 18세기 문인 호산 조희룡

필법이 이미 법을 벗어나 신묘에 이르렀다. - 18세기 서화가 표암 강세황

비슷하게 그린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게 그렸다. - 18세기 거부 경렴 김한태

그가 그림 한장을 낼 때마다 곧 임금의 눈에 들었다. - 18세기 서화가 표암 강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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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는 생전에 현감(縣監)이 되는 성은을 누렸다. 하지만 파직 상소로 인해 임기 5년을 못 채우고 3년 만에 쫓겨났다. 어쩔 수 없이 김홍도를 파직해야 했던 정조는 대신 10여 일 만에 김홍도를 사면하고 다시 도화서로 불러들인다. 화성 원행이란 초대형 이벤트를 감당할 수 있는 최고의 화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다시 정조의 부름을 받은 김홍도는 화성 원행의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원행도> 제작을 총지휘해 정조 시대 최고의 정치 이벤트를 역사에 기록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하지만 1800년 6월 정조의 죽음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방송은 김홍도의 가장 화려했던 화양연화로부터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말년의 모습까지를 생생하게 재구성해 보여준다. 역사스페셜을 보면서 눈발 휘날리던 어느 날, 『천년의 화가 김홍도』의 저자 이충렬 선생과 함께 안산과 인왕산을 다니며 김홍도의 흔적을 더듬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해 12월 브런치에 쓴 <‘불멸의 화가’ 김홍도가 아들에게 쓴 마지막 편지>라는 글을 다시 읽었다. 다시 돌아온 KBS 역사스페셜이 더없이 반갑고 고맙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건 공영방송 KBS뿐이라는 걸 많은 분이 인정하고 기억했으면 한다.


■[다시보기] KBS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 <사라진 왕의 눈 단원 김홍도>(2026.2.22.)

https://www.youtube.com/watch?v=1oW7xKybU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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