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 화가 조돈영이 성냥개비만 그린 이유

석기자미술관(275) 조돈영 추모전 《삼사라 Transmigration》

by 김석

평생 한 가지 소재에 집착한 화가들이 있다. 파리로 건너간 한국 화가로는 ‘물방울’의 김창열이 대표적이다. 나에게 유독 울림을 주는 것, 그러면서도 남들이 다루지 않은 걸 잘 찾아야 했다. 조돈영(1939~2023) 또한 그랬다. 서울예술고등학교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나온 조돈영은 1979년 파리로 갔다. 그해 7월 개인전을 열기 위해 파리에 처음 간 조돈영은 세계적인 박물관, 미술관에서 서양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단호하게 파리행을 결심한다. 훗날 조돈영은 파리로 건너간 이유가 뭐였냐는 질문에 “체질을 바꾸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작업 세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조돈영, <삼사라 Transmigration>, 1978, 캔버스에 유채, 54×65cm



그렇다면 조돈영은 어떤 계기로 성냥개비를 그리게 됐을까.


조돈영은 생전에 친분을 맺은 호진스님, 법정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태우며 짧은 순간 세상을 밝히고 소멸하는 성냥개비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한다. 물론 그전부터 새로운 소재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성냥개비를 마음속에 두고 있었겠지만, 선승들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그렇게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돈영은 불타버린 성냥개비를 소재로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이 다 소진된 열반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전시 제목 <삼사라 Transmigration>는 ‘윤회’를 상징하는 불교 용어로, 조돈영의 작품 속 성냥개비가 삶과 죽음을 동시에 뜻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돈영, <관계 Relation>, 1987, 캔버스에 유채, 96.5×130cm
조돈영, <횡단 Traversée>, 1988, 캔버스에 유채와 파스텔, 130×162cm


그때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돈영은 성냥개비를 의인화해 인간 세상의 희로애락을 회화로 탐구했다.

“성냥개비는 단 한 번 불을 일으켰을 때 그 생명이 확인되는 것이고 그 순간 생명은 끝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극적인 삶입니까? 불꽃에서 생명과 희생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조돈영, <횡단 Traversée>, 1991, 캔버스에 아크릴릭, 73×92cm


하지만 파리에서의 작업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전시 이력을 보면 조돈영은 파리로 건너간 1979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모나코, 로스앤젤레스, 함부르크, 부다페스트 등 각지에서 개인전을 열고 단체전에 참여했다. 1985년에는 제20회 모나코 미술전에서 3위에 오른 경력이 있다. 국내에서는 1976년부터 개인전을 열었고, 1987년부터는 주로 선화랑과 손잡고 작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눈에 띄게 활동이 줄어, 2005년 선화랑 개인전 이후 2008년 미르갤러리, 2911년 갤러리 우덕 개인전 이후로는 아예 전시 자체가 없었다. 딱히 주목받지 못하고 그렇게 조용히 잊혔다. 심지어 2023년에 작고한 사실조차 이번 추모전이 아니었다면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리라.


조돈영, <횡단 VI Traversée VI>, 2000, 캔버스에 아크릴릭, 65×108cm
조돈영, , 2013, 캔버스에 아크릴릭, 54×65cm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이렇게 썼다.


“대부분의 경우, 해외로 진출했던 작가들이 말년에 고국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는 것을 보아 오는데, 조돈영은 그가 진출한 파리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치었다. 그가 고국에 돌아와 여생을 좀 더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면, 그의 예술을 정리하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사람은 가고 그의 예술만이 남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삶의 무상함과 회한을 지니면서도 그의 예술이 우리 속에 남아 그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될 뿐이다.”


전시장에 걸린 조돈영의 그림은 16점이다. 초창기 조돈영의 그림에서 성냥개비는 다 타버린 모습으로, 또는 타고 있는 모습으로, 또는 아직 타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로 화면 속에서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줄지어 서 있다. 그러다 1980년대 말이 되면 성냥개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이응노의 군상처럼 수많은 성냥개비가 모여 커다란 흐름을 만드는 형태도 등장한다. 파란색, 초록색 등으로 성냥개비 색이 변주되고, 색면 위에 성냥개비가 그려지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화려한 색채 사용이 두드러졌고, 성냥개비가 더 자유롭게 배치되고 크기도 작아졌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는 화면에 성냥개비가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많지 않은 그림에서 그런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안쪽 전시 공간에는 조돈영이 생전에 모은 이런저런 성냥갑과 더불어 스케치북과 각종 미술도구, 드로잉, 전시 리플렛, 신문 기사, 전시 도록 등이 놓였다. 조촐한 삶처럼 보였다. 다만 그중에서 하나 눈에 띈 건 물감 통 뚜껑 안쪽에 조돈영이 직접 적어 놓은 시(詩)였다. 퇴계 이황이 지은 연시조 「도산십이곡」 12수 가운데 유명한 제11곡이다.



청산(靑山)은 어찌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르며

유수(流水)는 어찌하여 주야(晝夜)에 그치지 않는가.

우리도 그치지 말아 만고상청(萬古常靑) 하리라.

변함없이 푸르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구절이다. 화가는 세상을 떠나고, 그의 예술도 어느새 잊혔다. 작고 3년이 지난 시점에 비로소 열리는 이 소박한 추모전이 작은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듯 조돈영의 예술 세계를 재조명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전시 정보

제목: 조돈영 추모전 《삼사라 Transmigration》

기간: 2026년 3월 13일(금)~4월 5일(일)

장소: 가나아트센터 스페이스 97 (서울시 종로구 평창30길 28 가나아트센터 1층)

문의: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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