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274) 이우성 개인전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봄이다. 좋은 전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계절이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보도자료의 홍수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이미지만으로도 비상한 호기심을 부르는 작품이 있다. 내겐 생소한 이우성이라는 젊은 화가가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연다. 가깝게는 2017년과 2023년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이력이 있는데, 그때는 화가의 존재가 그다지 매력적이거나 참신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경매나 아트페어 같은 미술시장에서도 이우성의 작품을 본 기억은 없다.
내가 어떤 화가의 그림에 주목하는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는 요즘 내가 골똘히 생각하고 공부하는 특정한 주제와의 연관성이다. 근 2년 동안 나는 줄곧 ‘풍경화’라는 주제를 놓고 책을 쓰고, 전시를 보고, 글을 쓰고, 자료를 찾는 일을 꾸준히 이어왔다. 얼마 전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를 굳이 찾아가 이만나 작가의 개인전을 본 이유도 바로 그 ‘풍경’ 때문이었다. 지금은 풍경화를 진지하게 그리는 화가를, 그것도 젊은 화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갤러리에서 보내준 보도자료를 빠르게 훑은 뒤 작품 이미지를 하나하나 넘겨본다. 그러다가 서울 올림픽대로에서 63빌딩이 우뚝 서 있는 여의도 방향을 바라본 그림에 눈길이 멎었다. 해 질 무렵, 분홍빛으로 곱게 물든 하늘 아래 황금빛 햇살에 뒤덮인 도시가 그렇게나 정겨울 수가 없었다. 이우성의 그 그림은 황혼 녘에 그 아련한 색채의 향연에 가슴이 두근거리던 내 경험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감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림을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할 이유였다.
갤러리현대 지하 1층 전시장에 걸린 그림을 봤다. 단단한 묘사와 눈부신 색감이 어우러진 이우성의 작품은 보기에 심히 좋았다. 재미있는 건 화가가 붙인 제목이다. <핑크빛과 황금색으로 이 도시를 그려볼 거야>. 이우성은 이런 식으로 전시장에 건 다른 여러 작품에도 질문이나 대화, 독백 형식의 제목을 붙여 놓았다. 관람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다. 딱딱하고 재미없이 제목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그리고 또 하나. 자고로 그림은 현장에서 직접 봐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포인트가 있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자동차 안에 앉아 있는 인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건 완전히 만화 캐릭터가 아닌가. 동그란 얼굴에 점과 선으로 그려 넣은 눈코입. 표현은 단순한데 표정은 생생하다. 자연스럽게 그림에 바짝 다가가 인물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그 뜻밖의 재밋거리가 그림 앞에 조금 더 머물게 한다. 나는 거기서 관람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화가의 의지를 읽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풍경 작품들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다. 화가가 일상에서 직접 마주했던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과거와 현재, 개인 또는 단체의 경험과 기억 등 여러 시간의 층위와 감각들이 중첩되고 충돌하여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한 아름다움을 은유한다. 이우성의 그림에는 한강대교, 종로3가역, 뚝섬유원지, 경포 해변과 같은 특정 장소에서부터 골목길과 주차장 같은 도시 공간, 논과 밭, 바다와 계곡, 폭포 등의 자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가 등장한다. 직접 마주했던 장소에서 촬영하거나 기록한 장면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이후 기억과 감각, 상상을 보태 화면을 재구성했다. 현실을 기반으로 세밀하게 묘사된 풍경에 바다와 강, 하늘과 구름, 빛이 초현실적으로 표현되고 만화적인 인물들이 포개지며, 사실적인 현실과 감각, 기억이 뒤섞인 꿈, 그사이 경계로, 영원할 것 같은 현재로 관객을 초대한다.
“아주 길고, 다양한 시간이 담긴 그림들이거든요. 주제를 설정하고 집중해서 한 번에 나온 게 아니에요. 오래된 동네 풍경, 지금과는 사뭇 다른 과거의 풍경이기도 하고요. 풍경이 가진 시간의 얼룩을 표현하고자 한 부분도 있거든요. 누구나 장소들에 대한 사연이 있으니까요. 자연 풍경이든 도시 풍경이든 물리적으로 과거로 밀려나고 또 새로운 현재가 오잖아요. 제 작업을 보며, 풍경의 상징이나 그 장소에 대한 해석을 해보는 것도 좋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포착할 수 있는 시간의 밀도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우성(1983년생)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2008년 첫 그룹전 참여를 시작으로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 한국 주요 국공립미술관에서 전시했다. 갤러리현대(2026), 학고재 갤러리(2023, 2017), 아마도 예술공간(2017), 아트 스페이스 풀(2015), OCI 미술관(2013), 서교예술실험센터(2012), 175 갤러리(2012)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3년 OCI 영 크리에이티브 수상 작가이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OCI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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