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276) 박영택 『오직, 그림』(마음산책, 2024)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몇 번을 머뭇거렸다. 독서라는 게 그렇다. 어떤 계기로 확 끌리다가도 다시 생각해 보면 굳이, 하며 떨구게 되는 것. 하지만 어떤 책에 다가서는 계기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서경식의 책 『청춘의 사신』(창비, 2002)을 읽다가 알게 된 한 화가의 존재가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이름도 생소한 프랑스 야수파 화가 알베르 마르케(Albert Marquet, 1875~1947)였다. 그 화가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마음에 자료를 뒤적거리다 보니 박영택의 책이 나왔다. 더는 미룰 이유가 없었다.
내가 알베르 마르케라는 화가에게 끌린 이유는 그의 사람됨이었다. 나는 마르케의 작품을 직접 본 일이 없다. 그러니 그의 예술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서경식의 책에서 읽은 마르케의 성품은 실로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특권을 거부했고, 부끄러움을 알았으며, 무엇보다 겸손했다. 그래서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는 서경식만큼이나 나 또한 그의 그림이 몹시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책에 바로 그 알베르 마르케의 그림 한 점이 수록돼 있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이 세계 미술사의 획기적인 그림 51점 가운데 하나로 꼽은 <그랑 오귀스탱 강변 길>(1905)이다.
박영택은 왜 이 풍경화에 끌렸을까.
“마치 아이들의 그림처럼 어눌한 솜씨로 그려진 이 풍경은 흐려지고 뭉개진 얼룩들과 감각적인 선들의 질주만으로도 그림의 어느 경지를 경이롭게 구현한다. (…) 독창적인 미술 세계를 완성시킨 마르케의 풍경화는 가장 매력적인 그림에 속한다. 그는 담백한 색감의 서정적인 바닷가와 하구 풍경을 많이 그렸다. 나는 그가 센강변을 따라 그린 일련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 마르케는 색을 심리적 표현으로 전환시킨다. 쓸쓸해 보이는 추운 겨울 새벽 풍경이다. 좋은 그림은 미처 보지 못했던 세계의 단면을 이렇게 느닷없이, 너무나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미술책을 읽어 왔지만, 이렇듯 자기만의 시선으로 솔직한 감상을 숨김없이 드러낸 글을 읽은 기억이 없다. 언젠가 어느 후배와 나눈 대화가 문득 떠오른다. 국내에서 열리는 어느 전시회에 온,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화가의 유명한 그림 이야기였다. 작품을 직접 본 감격을 털어놓는 내게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그 그림이 유명한 건 알겠는데, 봐도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저한테는 와닿지 않아요. 미술이라는 걸 잘 모르겠어요.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나는 솔직하게 말해줬다. 유명하다고 해서 꼭 좋은 그림은 아냐. 네 마음을 움직이고, 너한테 감동을 주는 바로 그 그림이 좋은 그림이지.
결국, 취향의 문제다. 물론 좋은 그림은 분명히 있다. 좋은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하지만 그건 미술 전문가의 일이지, 평범한 감상자의 몫은 아니다. 문제는 미술 전문가라는 이들조차도 좋은 그림을 판별하지 못하거나, 좋은 그림을 판별하는 일을 애써 외면하는 일이 다반사란 점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좋은 미술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다. 그리고 당연히 좋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건 그 책을 읽는 이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박영택의 책 『오직, 그림』을 정말 오랜만에 읽은 좋은 미술책이라 말하고 싶다. 솔직한 자기 감상을 진솔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박영택이 골라낸 그림 51점 가운데 유독 내 마음을 붙든 몇 작품이 있다. 도판과 함께 감상, 그리고 설명을 읽어보자.
“이 그림에서 모든 세부는 저마다의 피부와 질감, 부피와 양감을 집요하고 세밀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너무 기교적이거나 강박적이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소박함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나는 이 여인의 더없이 진중한 표정과 감정을 자제하는 분위기, 반듯하고 정숙한 미모에 압도된다. (…)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동한 캄팽은 인물화에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는데, 그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사람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그린 최초의 화가에 속한다. 또한 45도 각도에서 얼굴을 묘사한 최초의 화가이자 당시 유채 물감을 가장 완벽히 활용한 존재 중의 하나다. 유화가 이제 막 등장하던 시기에 이렇게 놀랍도록 사실적인 그림이 그려졌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깊숙이 들어간 눈두덩과 선하고 사려 깊어 보이는 검은 눈동자, 날카롭게 솟은 커다란 귀, 조금은 벗어진 넓은 이마를 지닌 이 남자는 여전히 살아서 내게 다가오는 것 같다. 검은 옷을 걸치고 황금색 검을 들고 있는 기사로서 그는 직립해 우리와 눈을 마주치고, 저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진심으로 우리에게 무엇인가 호소하려는 듯하다. 잘생긴 오른손이 압권이다. 손의 중지와 약지를 붙인 포즈인데 이는 신에게 맹세한다는 수인과도 같다. 손은 인간이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최전선에 놓인 기관이다. 나는 저 손가락의 표현이 그 어떤 그림보다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손이자 말을 건네는 손이며 한 개인의 모든 것을 응축하고 있는 너무나 진실되고 솔직한 손이다. 뼈와 살과 핏줄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저 손가락은 검은 옷을 뚫고 불거지는, 어두운 내부로부터 불쑥 태동된, 부정할 수 없는 개인성으로 빛난다.”
“이 그림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물을 독대하게 한다. 사물의 어느 한 부분을 오랫동안 응시하게 해준다. 주변 공간이 제거되고 오로지 사물, 보고자 하는 부분만을 응집시킨다. 바짝 조여진 시선과 거리는 세상의 나-너와 그 사물만을 대면하게 해준다 그러는 순간, 그 사물은 온전히 주인공이 되어 보는 이의 시선을 다 받아낸다. 이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다! 버려지거나 시선에서 제외되거나 너무 익숙해서 쉽게 간과되는 것에 주목시키는 이 그림은 사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과 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물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일상과 감각에 대한 단호한 몰입을 말한다. 이 그림은 더없이 감각적이고 촉각적이다. 한 개인의 눈과 몸, 감각에 신경이 집중된 이미지다. 그래서 보는 이의 망막에 와닿는다. 그러는 순간 우리 몸은 거대한 더듬이가 되어 저 사물의 관능적인 피부 위에서 조심스레 떨린다.”
“이 자화상에서 베크만은 굵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으로 자신을 묘사해놓았다. 말쑥하면서도 엄격해 보이는 그의 표정은 심리적 초조함을 온후하게 드러낸다. 완전히 미화시키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냉정한 시선으로 자기를 탐사하는 이른바 신즉물주의의 전형인 이 초상화는 예술가를 지적이고도 자기 확신에 찬 이상적인 남자로 제시한다. 화가가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는 시선으로 그렸으므로 인물은 더 커 보인다. 그 결과는 이른바 가차 없는 자기 질문이다. 베크만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한다. 그림은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소녀는 일광욕을 하듯이 눈을 감고 두 팔을 위로 올린 모습이다. 초록색 쿠션에 등을 기댄 소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데 들어 올린 다리 사이로 흰색 속옷이 드러난다. 고전적인 구도에 갈색 계열의 색감과 보색대비를 이루는 청록색 천이 돋보인다. 의자 바로 밑에는 접시를 긴 혀로 핥아대는 고양이가 있다. 발튀는 어린 시절 미츄라는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었다. 그에게 고양이는 기억과 향수의 대상이다. 좌측 테이블 위에는 길고 뾰족한 원통형의 병들이 도열해 있다. 쏟아질 것 같은 구겨진 천과 빈 의자, 그리고 뒤로 몸을 젖힌 소녀 등의 구성으로 다분히 성적인 연상과 관음증을 자극하는 그림이다. 동시에 단단한 밀도로 채워진, 매력적이고 완성도 높은 그림이다.”
“나는 모란디의 정물 그림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그의 화집을 종류별로 구비해서 틈나는 대로 본다. 특히 이 그림은 배경과 바닥, 그리고 사물로 이루어진 단출한 구성과 전체를 감싼 절묘한 색채의 뉘앙스로 봤을 때 최고의 수작이다. ‘저 색’이라고밖에는 말하기 어려운 회색 톤의 색채는 미묘한 차이를 지니면서 벽과 바닥을 이루고 그 사이에 놓인 기물과의 관계성을 조준한다. 붓을 ‘휘휘’ 저어서 칠해버린 바닥은 우측 하단으로 몰려 ‘모란디 Morandi’라는 서명을 조심스레 각인하고는 사라진다. 매력적인 서체의 서명은 홀연 자취를 감춘다. 아니 배경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내가 이 책을 신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저자가 쓴 서문에 담겨 있다. 평소 내 생각과 같은 일리 있는 지적이므로, 조금 길더라도 핵심 논지를 여기에 옮긴다.
“시중에는 서양미술에 관한 상당한 양의 책들이 쏟아져 나와 있다. 미술사가나 평론가뿐만 아니라 인문학자, 철학자, 미술기자, 도슨트 내지 열정적으로 그림을 사랑하는 이들이 저마다 그림을 고르고 이에 대해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있다. 그러나 그림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해설서 내지 그림을 빌린 문학적인 에세이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생각이다. 그림을 보는 안목보다는 이야기가 될 만한 것들을 가져다가 다소 장황하게 서술하는 식이다. 작가의 삶과 그의 행적, 에피소드, 그리고 익히 알려진 상식들을 반복하면서 결론적으로 기존의 사실들을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경우다. 한편 당대의 철학자나 인문학자들이 그림을 통해 자신들의 사유를 소개하는 경우 제한된 작가, 작품만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아울러 작품 자체의 질에 대한 논의보다는 인문학적인 의미만이 도해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미술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히고 작품 해석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가능하게 해주는 반면 특정 논리의 체계안에서 한정된 그림만을 읽게 한다는 생각이 이 책을 쓰게 한 또 다른 동기다.”
저자의 이런 의도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독자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본문의 어느 대목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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