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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Dec 02. 2019

‘132억 최고가 기록’ 김환기 <우주>에 얽힌 사연

이 그림은 어떻게 ‘우주’란 이름을 얻었을까?

화가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건 참 드문 일이죠. 김환기의 작품 <우주>에 쏠린 관심이 그만큼 컸던 걸까요. 2019년 11월 23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출품된 김환기의 작품 <우주>가 33차례에 걸친 치열한 경합 끝에 131억 8천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한국 미술품 사상 역대 최고가 기록이자 김환기 작가 역대 최고가 기록이었죠.


이번 경매에 거는 미술계의 기대는 자못 컸습니다. 워낙 미술시장이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다들 뭔가 획기적인 반등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데 생각을 같이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유일하게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김환기였습니다. 최근 몇 년 새 1~2년을 주기로 계속해서 경매 최고가 기록을 새로 써왔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김환기 <05-IV-71 #200 (Universe)>,  코튼에 유채, 각 254 x 127cm, 1971


다들 궁금해 했습니다. 한국 미술품이 국제 미술시장에서 과연 세 자릿수 판매가 기록을 찍을 수 있을까. 100억 원이란 숫자의 벽을 과연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결과는 아시다시피 대성공이었죠. 구매자 수수료를 포함한 이 작품의 최종 판매 가격은 우리 돈으로 153억 4,930만 원입니다. 당분간 다시 깨지기 어려운 기록입니다.


김환기가 뉴욕 시절에 완성한 이른바 ‘전면점화’는 사실 경매에 나올 만 한 물건이 더 있을까 싶을 정도로 웬만한 작품은 다 나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우주’라는 이름의 대작이 경매에 나왔으니 비상한 관심이 쏠릴 수밖에요. 운 좋게도 저는 경매 전에 그림을 직접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책 한 권을 손에 넣었죠.



김환기의 <우주>를 표지 그림으로 쓴 이 책은 김환기의 주치의이자 후원자였던 마태 김정준 씨가 2012년에 낸 회고록입니다. 두 사람은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처음 만나 교분을 쌓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1953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지만, 훗날 김환기가 뉴욕으로 건너가면서 각별한 인연을 이어가게 됩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외과의사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저자는 당시 뉴욕을 찾아든 예술가들의 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김환기도 그런 예술가 중 한 명이었죠. 김환기 부부는 미국에서 대단히 궁핍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김환기는 공사판에서, 아내는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다죠. 부부는 미국 생활 내내 끝없는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환기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했던 저자가 김환기의 작품을 구매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우주>였던 거죠. 1971년 뉴욕의 포인덱스터 화랑에서 김환기의 전시회가 열립니다. 당시 〈뉴욕타임스〉에 “드물게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선율의 회화”라는 평론이 실리기도 했죠. 하지만 이 그림이 처음부터 ‘우주’로 불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향안은 그 작품을 <너와 나>라고 불렀다. 두 분의 생의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현 환기미술관 관장인 박미정은 이 그림을 우주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우리도 동참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주라는 제목을 붙였다.”


<우주>는 세로 254cm, 가로 127cm 패널 두 개를 나란히 붙인 작품입니다. 전체 크기가 가로 세로 각각 254cm의 정사각형을 이루죠. 현재까지 확인된 김환기의 가장 큰 작품일 뿐 아니라, 패널 2개로 이뤄진 ‘두폭화’로는 극히 드문 예입니다. 저자는 그림이 완성된 이듬해인 1972년에 이 그림을 구매하면서 그림 값으로 당시에 새로 출시된 최신형 뷰익스테이션 왜건 자동차를 김환기에게 줍니다.


이미지 출처: 마태 김정준 <마태 김의 메모아>(지와 사랑, 2012)


이 사진은 당시 저자의 거실에 걸린 작품 앞에 앉아 있는 김환기의 모습을 찍은 겁니다. 그런데 원작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죠. 거실에 걸기엔 작품이 워낙 크다 보니 원형 무늬가 서로 머리를 맞대도록 패널을 옆으로 뉘어서 건 겁니다. 이 그림은 이후 2004년까지 30여 년 동안 김환기의 주치의이자 후원자였던 저자의 집 벽을 장식했습니다.


얼마 전 환기미술관에서 이 작품 앞에 섰을 때의 그 경외감을 잊을 수가 없군요. 부인 김향안 여사가 <너와 나>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한 쪽은 김환기 자신, 다른 한 쪽은 아내 김향안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두 사람이 다정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둘이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그곳이야말로 참된 ‘우주’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뒤 1976년부터 이 그림은 세계 각지의 전시회에 얼굴을 내밉니다. 그러다 2004년 서울 부암동에 있는 환기미술관에 장기 대여 형식으로 소장되죠. 저자는 그 이유를 책에 이렇게 밝혀 놓았습니다.


“<우주>는 한국 현대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므로, 우리 집에 개인 소장품으로 걸려 있는 것보다는 한국의 미술관에 전시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미술관에 깃든지 꼭 15년 만에 <우주>는 경매에 나와 한국 미술사에 길이 남을 새 기록을 썼습니다. 새 주인을 찾은 거죠. 132억 원이라는 비현실적인 숫자가 주는 일시적 관심은 늘 그렇듯 반짝 소동으로 끝났지만, 이제 이 작품을 과연 공개적인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걸작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닌 만인의 것이 될 때 그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는 법이니까요.


이미지 출처: 크리스티 경매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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