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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Nov 29. 2019

희대의 명작이 현대 팝아트를 만나면?

아트놈 개인전 <파티 팝>(슈페리어갤러리, 2019.11.11.~12.1

아트(예술)하는 놈(가). 그래서 본명 대신 아트놈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 아트놈을 처음 만난 건 2015년이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팝아트 작가로 이름을 알렸죠. 아트놈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낱말은 ‘유쾌함’입니다. 고단한 일상에 작별을 고하듯 즐겁고 행복한 이미지가 화폭에 넘쳐흐른답니다.


<나폴레옹>, 130.3×97.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백마를 탄 늠름한 남자. 어디서 많이 본 이미지죠?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의 명작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Napoleon Crossing the Alps>입니다. 야심만만한 정복 군주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한껏 치켜세워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금색 바탕에 유명 고가 브랜드 상표를 규칙적인 패턴처럼 빼곡하게 그려 넣었습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는 작가가 창조해낸 앙증맞은 캐릭터들과 꽃송이가 어우러져 있고요. 언뜻 보면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러 요소들이 화사한 색감의 화폭 안에서 유쾌하게 만났습니다.


<다비드>, 193.9×130.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8


이 그림의 주인공도 낯설지 않죠?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적 예술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손끝에서 탄생한 불멸의 조각상 <다비드>입니다. 강렬한 빨강을 배경으로 골리앗을 물리친 위대한 영웅 다윗의 늠름한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았군요. 그런 다윗을 호위하듯 권총 네 자루가 근사한 장식품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비너스의 탄생>, 193.9×130.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8


르네상스 시대를 빛낸 또 다른 화가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가 남긴 명작 <비너스의 탄생>은 또 어떤가요? 이번엔 배경처리가 한결 다채로워졌습니다. 각양각색의 색 띠를 세로로 균일하게 그려 넣고 화폭 한가운데 주인공 비너스를 돋보이게 배치했네요. 발밑에 조개가 있던 자리는 귀여운 동물들 차지가 됐습니다.


이 그림에서 특히 주목해봐야 할 것은 비너스 양옆으로 보이는 커다란 모란 꽃송이입니다. 꽃의 왕으로 불리는 모란은 전통적으로 우리 옛 그림에 많이 등장하는 소재죠. 비너스 뒤에 있는 후광 역시 원작에는 없는 겁니다. 이런 한국적 미감이 아트놈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입니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아트놈은 한국적인 팝아트를 그리는 데 늘 고심합니다. 우리 전통 오방색을 위주로 색을 고르고, 한국화를 특징짓는 소재들을 화폭에 그려 넣죠. 특히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선을 그릴 때는 반드시 한국화 붓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미감이 느껴지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로봇 태권브이441_Robot Taekwon V_130.3x193.9cm(120호)_acrylic on canvas_2019


이름난 명작을 그림의 소재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건 2년 전쯤부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명작을 차용한다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작가 자신에겐 결과물만큼이나 그 과정에 큰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작품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유쾌하고 즐겁지만 그 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 작가가 겪어낸 심적 고뇌는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한 번, 두 번 더 들여다보면 남다른 깊이가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리타분한 전통이 아닌 한국적 요소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그려내는 이유는 서양작가가 아닌 한국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트놈에게 아트란 세상과 가장 재밌게 대화하는 방식이자 온전한 자신으로 살게 해주는 행복한 매개체인 것이다. 오늘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작가의 임무라면, 지금 이 자리에 선 아트놈의 행보는 작품이 만들어진 오늘의 흔적이 아닐까.” - 안현정(미술평론가)의 평론 <스마트한 자기유희, 아트놈의 ART-POP> 중에서


이번 전시회에는 작가가 그렇게 2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신작 26점이 걸렸습니다. 고전 명작이 주는 친근함에 색채의 향연을 더한 아트놈의 작품들은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일상에 유쾌함과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전시 제목처럼 아트놈이 전시장에 풀어놓은 그림들에 둘러싸여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파티 속으로 함께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전시 정보

제목: 아트놈 개인전 <Party POP: TAKE ME, I AM THE DRUG>

기간: 2019년 12월 18일까지

장소: 서울시 강남구 슈페리어갤러리

작품: 회화 26점


<프로세르피나의 겁탈(이것이 미국이다)>, 193.9×130.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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