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의 초상

5대 종합일간지 기사로 그린 아재의 윤곽선

by 김단

*대학원에서 레포트로 제출했던 글을 편집하였음.



‘나는 아재 마흔 넘은 아재/결혼도 안 했고 집도 없지만/걱정은 No 나만 믿어 봐/한 번만 털어주면 다 쓰러지니까… 내가 부끄럽니/내가 실수했니/나는 너희가 좋아/우리랑 계속 놀아 주라.’ (그룹 노라조의 노래 ‘아재’ 중에서)



그들은 "아재"라고 불렸다

이 글은 2016년 한국 사회에서 30~50대 남성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의미가 규정되는 객체이자 주체로 재등장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올해(2016년), 그들은 ‘아재’라고 불렸다1).


아재는 지난해를 시작으로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저씨의 낮춤말’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확장되어 특정한 속성을 가진 중년 남성을 가리키는 복합적 의미를 획득했다. 그리고 이 용어의 유행은 이제 ‘아재시대’를 열기에 이르렀다2). 그 시작은 2015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오세득 쉐프가 “형만을(마늘) 위해 살아갈릭(garlic)”과 같은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을 즐겨하면서 ‘아재 개그’가 주목을 받으면서부터였다(최진숙, 2016). 아재 개그는 동음이의어를 활용해 실없는 개그를 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썰렁 개그’와 유사하지만, 단어 자체에 개그를 발화하는 ‘아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아재 개그는 TV 예능프로그램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었고, 그와 함께 ‘아재’라는 용어도 무수히 사용되기 시작했다3). 신문에서는 지난 해 12월 112건의 기사에서 ‘아재’가 등장했던 것에 비해, 올해 1월에는 200여 건, 5월에는 1000여 건, 7월에는 2000여 건이 넘는 기사에서 ‘아재’가 등장했다4).


이제 ‘아재’는 대중문화계의 인기 소재이자 주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아재 프로’로 분류되는 ‘아재목장’, ‘인생술집’, ‘아는형님’, ‘미운 우리 새끼’5)와 같은 TV 예능프로그램은 다양한 방식으로 아재들을 내세운다. 여기서 아재는 삭막한 도시생활에 찌든 중년 남성이자, 술 한 잔 기울이며 속 깊은 이야기를 포근하게 들어줄 줄 아는 인생 선배이고, 거친 과거를 지나 이제 뭘 좀 아는 짓궂은 형님이며, 어머니의 여전한 철없는 아들이다.


젊은 세대가 다양한 담론을 활발히 공유하는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아재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과 어우러져 부정의 어감을 띠기도 하지만 ‘꼰대’처럼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낼 만한 존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아재의 속성을 하나의 놀이로 삼아 ‘버스요금 130원 기억하면 아재’, ‘문자할 때 물결무늬 표시 많이 하면 아재’, ‘1970년 당시 칠성 콜라병 기억하면 아재’ 등과 같이 ‘…하면 아재’ 식의 아재 검증 놀이가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최진숙, 2016).


이처럼 아재가 그려내는 상(像)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언론에서는 ‘친근하면서도 구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촌스럽지만, 다소 측은한 이미지가 담겨 있는 성인 남성’부터 단순히 ‘최신 트렌드에 뒤떨어진 사람’을 희화화한 표현까지 다양한 폭으로 아재를 규정한다6).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아재가 지칭하는 대상은 매우 광범위하고, 그 의미는 복합적이며, 때로는 모순되는 의미를 품고 있다. 따라서 아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재가 실제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규명하기보다 아재가 표상하는 일련의 이미지들을 추출해 정리하고 해석하면서 사회학적 징후를 읽어내는 작업을 해보고자 했다. 좀 더 심도 있는 분석틀을 형성해 담론으로서의 아재를 논하기 전에, 경험적 자료를 바탕으로 ‘아재’라는 단어가 사회에 띄우는 복합적인 중년 남성의 상(像)들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 오늘날 한국 남성의 주체 형성 방식의 일면을 이해하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재가 단순히 ‘꼰대’의 다른 이름으로서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 중년 남성으로 전형화되었다고 보기에 실제로 아재는 그보다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실없는 개그를 하지만 결국 ‘아재’도 똑같은 권위주의적 중년 남성이라는 논리는 실제에서 다층적 의미를 보이는 ‘아재’에 대한 평면적이고 단선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성세대의 권위와 가부장의 일면으로서만 아재를 비판적으로 보기보다는 실제로 아재 개그와 아재라는 용어가 놓여 있는 복합적인 맥락에 대한 더 구체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아재’를 차분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분석 대상을 2016년 1월 1일부터 2016년 11월 30일까지 발행된 종합일간지의 기사들로 한정하였으며, 그중에서도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경향신문의 기사로 범위를 좁혀 ‘아재’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들을 추렸다7). 분석대상을 종합일간지의 기사로 정한 이유는 우선 자료가 텍스트이기 때문에 분석이 용이하다는 점, 사회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매체라는 점, 언론의 성향에 따라서, 그리고 언론이 같더라도 기자에 따라 다양한 담론과 비평이 생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보도, 비평, 칼럼 등을 포함한 총 263건의 기사를 통해 2016년 동안 빚어진 ‘아재’의 여러 가지 상을 그려보고자 했다.



첫번째 아재, 취향으로서의 인간

세대론을 휩쓸었던 88만원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보자. 자본주의의 이윤 축적 방식이 변동하면서 경제적으로 소외된 청년들을 가리키는 ‘88만원 세대’(한윤형, 2011)에는 세대 간 소득 불균형과 착취와 같은 경제와 사회구조의 테마가 묻어 있다. 1970~80년대에 학생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선도하고 2000년대에 지배 엘리트로 변모한 기성세대를 가리키는 ‘민주화 세대(386 세대)'(김정한, 2006)에는 시대와 정치의 테마가 배어 있다. 이와 달리, ‘아재’의 축은 다른 곳에 있다. 세대로 보면 아재는 “70,80,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로 그 스펙트럼이 꽤 넓다. 고깃집에서 물수건으로 목덜미를 닦는 아버지 세대부터 홍대 앞 노래 주점인 ‘밤과 음악 사이’에서 1990년대 히트곡이 나오면 뛰쳐나가는 오빠뻘 사람까지”9) 모두 아재에 해당할 수 있다. 민주화 세대와 88만원 세대도 모두 아재일 수 있으며, 실제로 이들은 ‘아재’의 이름으로 다시 사회에 등장하고 있다.


‘아재’에서는 연령이나 시대적 구분뿐 아니라,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위치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아재’가 소환하는 인간은 경제의 장, 정치의 장, 시민운동의 장에서 행위하는 인간이 아닌, 세련되지 못한 취향을 가진 정적 인간이다. 철지난 말장난 개그를 좋아하거나, 내장탕, 천엽, 생간 등을 즐겨 먹는 걸걸한 입맛을 갖고 있거나10), 평소에는 “어깨가 축 늘어진 헐렁한 양복 상의에 배 위까지 끌어올린 정장바지”11)를 입고, 야유회나 주말에는 등산복이나 바람막이 입기를 선호하는 이가 아재이다. 오디오가 취미여도 아재이고12), 헤비메탈 음악도 아재의 상징이다13).


‘아재’를 구분하는 일종의 취향으로서의 기준은 계급이나 계층과 직결되어 있지 않다14). ‘아재’에는 청년 세대를 착취하는 이들도 없고, 지배 엘리트가 된 이들도 없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시대의 주체 형성 경험을 품고 있거나 90년대 이후의 ‘진정성의 에토스’를 통과한 존재도 없고, IMF 이후 노골적으로 ‘생존’의 문제를 추구하는 존재도 보이지 않는다. 아재는 세대와 세대의식을 형성하는 계기로서의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를 품고 있지 않은 몰역사적 존재이다. 아재는 그저 촌스러운, 나이듦의 텅 빈 표상이다. 이 표상은 주로 청년들에 의해 주조되고 호명된다는 점에서 아재의 몰역사성에는 오늘의 30~50대가 지나온 근대에 대한 청년 세대의 몰이해, 그리고 급격하게 과거를 허물로 여기고 현재에만 몰두하는 한국 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종합일간지의 기사에서 ‘아재’는 벗어나야 하는 이름이자 취향으로 그려진다. 아재의 반대쪽에는 젊은 취향을 갖춘 새로운 존재의 형상, ‘아재파탈’이 제시된다. ‘아재’를 벗어나 ‘아재파탈’이 되는 다소 역설적인 길에서 페달을 굴리는 방법은 세련된 취향으로의 전환이며, 이는 많은 기사들을 통해 꾸준히 권장된다. 스킨에 만족하지 않고 적절한 자외선차단제와 BB크림을 바르고15), 데님 패션상품을 입고 발목을 드러내는 과감한 패션도 수용하며16), 인기 있는 걸그룹에 관심을 보이면17) 아재는 아재파탈로 변모할 수 있다. 아재는 문화적 취향으로서 부정되고, 취향으로서 긍정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재가 추구해야 하는 취향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일종의 유행의 기호들이고, 이것은 청년세대의 전유물이다. 근대에 대한 ‘망각의 자유’를 누리는 청년들 앞에서 과거를 갖지 못한 아재는 청년 세대와 같이 치열하게 유행을 따르며 자기 통치를 하도록 종용당하는 존재이다. 여기서 자기 통치는 취향의 탈을 쓴 유행의 기호들을 획득하는 행위이다. 30~50대 남성은 아재가 아닌 다른 모양새의 주체를 끊임없이 형성해야 한다는 의무가 기사를 통해 끊임없이 환기된다. ‘젊음’, ‘유행’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취향들이 하나의 문화권력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재는 유행과 젊음의 기호에 익숙하지 못한 이들, 익숙하려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청년들의 냉소다.



두번째 아재, 조롱과 연민 사이의 객체

아재라는 하나의 가상적 주체를 그리는 과정에는 종종 아재에 대한 조롱과 연민의 감정이 함께 서술된다. 이러한 태도는 ‘아재 개그’에 대한 기사에서 잘 드러난다. 모든 기사들은 아재 개그를 ‘아저씨들이 하는 재미없는 개그’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아재가 아재 개그를 발화하는 행위와 그 맥락에 대해서는 상반된 감정을 보인다. 먼저, 아재가 재미없는 아재 개그를 시도하는 것이 타인과 소통하려 애쓰는 “처연한 몸부림”18)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아재 개그는 아재가 아닌 자들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이 연민은 나아가 아재 개그를 “대단히 웃기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나[아재]도 잘 알고 있지만, 당신에게 웃음을 주려는 나의 의도를 귀엽게 봐달라는 뜻을 담은 애교 비슷”19)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여기서 아재 개그는 고독한 중년이 소외되지 않으려 재미없는 개그라도 던지는 안쓰러운 시도이며, 아재와 아재 아닌 자를 이어주는 허술하지만 촌스러운 소통의 통로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재미없는 개그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부장님 개그’가 ‘아재 개그’로 바뀌어 불릴 뿐이라고 여긴다. “한두 번만 반복하면 똑같이 재미없다는 점과 듣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 즐겁다는 점,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점, 그리고 성별이나 나이로 웃기려다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을 수 있다는 점, 그만해야 할 때를 잘 모른다는 점”20)에서 아재 개그는 권력을 쥐고 자기중심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난과 조롱의 어조를 띤다. 아재 개그의 핵심이 “주변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자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농담을 끈질기게 하는 것21)”이라는 설명은, 아재 개그가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불통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민하는 이들의 ‘아재’는 삐걱대면서도 소통하려는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들의 지지나 긍정의 의미일 수 있고, 조롱하는 이들의 ‘아재’는 불통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 세대의 반항적 냉소이자 언어적 차별화의 수단일 수 있다. 이러한 상반된 뉘앙스는 언론의 구분 없이 기사에서 동시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열심히 아재 개그를 시도하는 중년 남성은 아재로서 캐릭터화 또는 대상화되어 대중매체를 통해 제시되며, 그럼으로써 다른 세대의 자의적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제 한국 중년 남성이 ‘아재’로서 ‘된장녀’, ‘김치녀’ 등과 같이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젠더와 연령에 기반한 하나의 평가 대상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더불어 연민과 조롱은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취하는 감정이나 태도라는 점에서, 중년 남성의 가부장적 권력은 해체되고 그들은 이 사회에 행위하는 주체가 아닌 전형화된 객체로 떠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번째 아재, 반성하는 주체

아재는 ‘내가 꼰대인가?’ ‘개저씨인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반성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주체성을 가진 인간상으로 그려진다. 여기서 아재는 반성함으로써 아재일 수 있다.


아재는 꼰대와 개저씨의 대립항으로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소통하는 아재이기를 요청받는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무조건 가르치려 드는 꼰대, 아랫사람에게 차별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세대와 성의 권력을 휘두르는 개저씨가 되지 않으려면 혹시 자기 자신이 꼰대나 개저씨는 아닌지 항상 의심하고 반성하는 주체로서의 아재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아재는 아재파탈은 되지 못하지만 적어도 꼰대나 개저씨는 되지 않겠다는 차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22). 이제 중년 남성은 마치 아재파탈 아니면 아재, 아재 아니면 꼰대나 개저씨인 것처럼 묘사되며, 30~50대의 성인 남성이 개저씨-꼰대-아재-아재파탈의 차원으로 분화되는, 일종의 세대 내 풍경이 그려진다.


꼰대는 “나이만 많은 게 아니라 그 많은 나이를 흡사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시대착오적 족속”23)이고, “젊은 세대에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불통의 대명사”다. 개저씨는 불통을 넘어 폭언과 폭력을 일삼고 “자신의 지위를 무기로 여성과 약자에게 권력을 휘두르는”24) 남성으로, 꼰대보다 더 과격한 의미를 가진다. 개저씨와 꼰대에 비해 “아재는 사랑스럽다.25)” 아재는 강압적인 태도를 버리고 젊은 세대나 후배들과 소통하려는 자세로 부드럽게 대화를 시작하는 중년 남성이다26). 자기 생각을 앞세워 상대를 억누르는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나름의 소통을 시도하는 아재는, 대중이 개저씨를 욕하면서 마음속으로 ‘이 정도만 됐으면’ 하고 바라던27) 중년 남성의 모습이다. 권위적인 위 세대와 개방적인 아래 세대에 끼어 눈치를 보지만, 부모 세대의 행동양식을 답습하지 않으려 변화하는 존재다. 역설적이게도, 꼰대와 개저씨에서 벗어나는 최소한의 방법은 바로 아재 개그다28).


반성하는 주체로서의 아재는 기존의 불통하는 이기적인 기성세대에서 새롭게 등장한 대안적 주체이다. 반성과 소통을 할 줄 아는, 혹은 할 의지가 있는 아재는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의 경계에 끊임없이 발을 걸치고자 하는 자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재로서 요구되는 반성은 청년 세대와의 관계와 소통을 중심으로 한 성찰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아재의 반성은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아랫세대와의 관계에 대한 반성이라는 점에서 아재는 한정된 주체성을 갖는다.



아재 바깥에서

이 글은 30~50대 남성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에 등장시킨 ‘아재’라는 용어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아재’가 청년 세대와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그 의미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세대로서의 관점을 견지하며 ‘아재’가 주요 종합일간지의 기사를 통해 그려지는 일련의 상들을 읽어보고자 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거칠게 분류한 1) 취향으로서의 인간 2) 조롱과 연민 사이의 객체 3) 반성하는 주체로서의 아재를 병렬시켰을 때, 아재는 부정되는 동시에 긍정되며, 탈피해야 하는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모순적 존재 방식이라는 점이다. 중년 남성은 아재이면서 아재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러한 중년 남성의 초상에는 타자에 의해 끊임없이 규정되고 충돌하는 ‘청춘 담론’ 사이에서 부유하는 청년 세대의 초상이 겹쳐진다.


또 ‘아재’는 대부분 청년 세대와 그들의 기호에 따라 규정된 의미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청년 세대에 의해 발화되고 있었다. 타인에 대한 호명은 대상을 타자화하여 응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주체가 전유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아재’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약자이자 객체로 존재했던 청년 세대를, 중년 남성을 명명하는 주체로서 등장시키는 기호이다.


이 글은 2016년을 기준으로 나타난 아재의 여러 모습들을 읽어내고자 하였으나 많은 한계를 가진다. 우선 신문은 매체적 특성상 그 배후에 지식계급에 속하는 기성세대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 자료를 중심으로 한 ‘아재’ 의미 분석은 기성세대가 재생산하는 아재 담론에 편향되어 있을 수 있다. ‘아재’를 실제로 발화하는 주체인 청년 세대가 활발히 상호작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에서의 관점을 제대로 담지 못했으므로 이는 다소 빈곤한 분석일 수 있다. 또 의미 분석에 머물렀기 때문에 ‘아재’의 단어 바깥, 즉 ‘아재’가 사용되는 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고찰하지 못했다. ‘아재’는 청년 세대들이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심리적 반작용으로 중년 남성들에게 드러내는 혐오의 감정에서 동작되는 담론일 수도 있고, 반대로 대중문화를 점령한 중년 남성들의 자기 미화이자 자조이며, 이는 여전한 남성 중심 권력으로 청년과 여성은 여전히 배제시키는 기호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서는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더 필요할 것이다. (2016.12)



1) 지난 12월 사회학이론연구 수업에서 김홍중 교수님은 한국 사회의 남성성의 유형을 세대에 따라 크게 ‘일베―386세대―할배’로 구분해 설명하셨는데, 나는 최근 들어 일베와 386세대의 그 사이 어디쯤부터 386세대와 할배 그 어디쯤까지가 ‘아재’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이를 좀 더 분석해보기로 했다.

2) “지금은 ‘아재’ 시대? 찢어진 청바지 입는 중년남성들”. 경향신문. 2016.5.16; “귀요미 매력 장착한아저씨들 아재라고 불러다오”. 매일경제. 2016.8.24; “지금은 아재시대”. YTN. 2016.10.14.

3) 다음소프트가 SNS 상에서 ‘아재’라는 단어의 언급량을 분석한 결과, 2011년 1만8천390회 언급되었던 것이 지난해에는 48만3천186회를 기록해 27배 증가했다(조선일보, 2016.6.7).

4) “환상 속의 아재”. 경향신문. 2016.12.6.

5) 위의 기사.

6) “뼛속까지 아재? 중년들 스트레스”. 조선일보. 2016.5.30; ““하라면 해” 하면 꼰대···“하라면 할래?”하면 아재”. 중앙일보. 2016.8.24; “유통업계 ‘병신년’ 최대 성과는 ‘아재시장’ 개척…내년은 더 맑음”. 조선일보. 2016.11.28.

7)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데이터분석 서비스 ‘카인즈(http://www.kinds.or.kr)’와 해당 서비스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뉴스 사이트에서 ‘아재’라는 키워드를 넣고 2016년 1월 1일부터 2016년 11월 30일까지의 각 일간지 기사를 검색한 결과, 월등히 기사 수가 많은 세계일보(113건)를 제외하고는 중앙일보 (62건), 경향신문(59건), 조선일보(50건), 동아일보(50건), 한겨레(42건)순으로 기사 수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8) “뼛속까지 아재? 중년들 스트레스”. 조선일보. 2016.5.30.

9) ““하라면 해” 하면 꼰대···“하라면 할래?”하면 아재”. 중앙일보. 2016.8.24.

10) “뼛속까지 아재? 중년들 스트레스”. 조선일보. 2016.5.30.

11) “아저씨들이여, 옷마저 ‘아재’스럽게 입을텐가”. 조선일보. 2016.4.13.

12) “오디오, 돈질과 덕질 사이”. 한겨레. 2016.9.7.

13) “너희가 헤비메탈을 아느냐”. 한겨레. 2016.10.14.

14) 2016년 8월, 이데일리는 당시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트럼프가 명품 양복을 헐렁하게 입었다는 이유로 그를 ‘아재’로 칭한 바 있다(최진숙, 2016).

15) “스킨만 바르던 ‘아재’의 변신…“훈남 되기, 어렵지 않네요”. 경향신문. 2016.8.18.

16) “아재파탈? 중년남성들, 청년 패션에 홀리다”. 한겨레. 2016.5.16.

17) “”하라면 해” 하면 꼰대···”하라면 할래?”하면 아재”. 중앙일보. 2016.8.24.

18) 위의 기사.

19) “신곡 배우랴, SNS 하랴 “우리도 괴롭습니다””. 조선일보. 2016.8.30.

20) “선거캠페인들과 ‘부장님 개그’”. 한겨레. 2016.4.1.

21) “이혼 얘기, 도박 얘기, 그만 하시죠”. 한겨레. 2016.6.24.

22) “오빠 아닌 아저씨 아닌 ‘아재’라 불리는 사람들”. 조선일보. 2016.6.7.

23) “세상의 꼰대들과 결별하는 방법”. 중앙일보. 2016.8.2.

24) “당신 개저씨인가, 젠틀맨인가”. 경향신문. 2016.6.16.

25) ““하라면 해” 하면 꼰대··””하라면 할래?”하면 아재”. 중앙일보. 2016.8.24.

26) “우리 땐 안 그랬다고? 너나 잘하세요~”. 한겨레. 2016.11.24.; ”겉은 아름답게, 속은 알차게 가꾸는 신사“. 중앙일보. 2016.7.19.

27) “아, 이게 뭐야…안 웃긴데 웃기네 ‘아재 개그’”. 중앙일보. 2016.4.15.

28) “세상의 꼰대들과 결별하는 방법”. 중앙일보. 2016.8.2.


*참고문헌

1) 국내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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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문 기사

“겉은 아름답게, 속은 알차게 가꾸는 신사”. 중앙일보. 2016.7.19.

“귀요미 매력 장착한 아저씨들 아재라고 불러다오”. 매일경제. 2016.8.24.

“꼰대? 난 개그로 소통하는 ‘아재’요”. 조선일보. 2016.3.8

“너희가 헤비메탈을 아느냐”. 한겨레. 2016.10.14.

“당신 개저씨인가, 젠틀맨인가”. 경향신문. 2016.6.16.

“뼛속까지 아재? 중년들 스트레스”. 조선일보. 2016.5.30.

“아재파탈? 중년남성들, 청년 패션에 홀리다”. 한겨레. 2016.5.16.

“아저씨들이여, 옷마저 ‘아재’스럽게 입을텐가”. 조선일보. 2016.4.13.

“오디오, 돈질과 덕질 사이”. 한겨레. 2016.9.7.

“오빠 아닌 아저씨 아닌 ‘아재’라 불리는 사람들”. 조선일보. 2016.06.07.

“우리 땐 안 그랬다고? 너나 잘하세요~”. 한겨레. 2016.11.24.

“유통업계 ‘병신년’ 최대 성과는 ‘아재시장’ 개척…내년은 더 맑음”. 조선일보. 2016.11.28.

“이혼 얘기, 도박 얘기, 그만 하시죠”. 한겨레. 2016.6.24.

“선거캠페인들과 ‘부장님 개그’”. 한겨레. 2016.4.1.

“스킨만 바르던 ‘아재’의 변신…“훈남 되기, 어렵지 않네요”. 경향신문. 2016.8.18.

“신곡 배우랴, SNS 하랴 “우리도 괴롭습니다””. 조선일보. 2016.8.30.

“지금은 아재시대”. YTN. 2016.10.14.

“지금은 ‘아재’ 시대? 찢어진 청바지 입는 중년남성들”. 경향신문. 2016.05.16.

“”하라면 해” 하면 꼰대···”하라면 할래?”하면 아재”. 중앙일보. 2016.8.24.

“환상 속의 아재”. 경향신문. 2016.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