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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로 Jul 12. 2021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기로 했다


아마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만 키우기 시작한 그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마치 사람이라면 응당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한다는 듯이,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그렇게.


그때마다 나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얼버무리곤 했는데, 그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속이 상했다. 왜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는지, 꿈 많던 어린 나는 어디 갔는지,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는지, 혹시 내가 도태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 겁을 주길래 잔뜩 받아먹었더랬다.


그런 날도 있었다. 그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발 디뎌지는 대로 걸었던 날. 오랜만에 만나 함께 정처 없이 걷고 있던 친구가 물었다.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친구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래서였을까? 그토록 얼버무리고 주저하던 마음을 그저 툭 내놓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있잖아.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걸 하고 싶어."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안 할 때 행복한 사람과 아무것도 안 할 때 불안한 사람. 나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아니, 우리 툭 까놓고 얘기해보자. 꼭 뭘 해야 하는 거야? 그냥 쉬면 안 돼? 온라인에 떠도는 우스갯소리처럼 To-do list에 '숨쉬기'가 있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럼 체크박스에 V자를 맨날맨날 그려 넣을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도대체 '어디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지다. 그 답은 아주 명쾌하다. 내게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이다. (물론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역시 포함한다.)


내 인생이고 내 시간이며 그걸 사용하는 건 당연히 나다. 그런데 우리는 왜 기준만큼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 두는 걸까? 나는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어떤 이는 나를 두고 '집에서 애만 보는 경단녀'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의지대로 내 삶을 꾸려가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좋은 기회가 생겨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아무도 내게 '제발 다시 일하라'고 하지 않았고 온전히 나의 의지였다. 일을 시작했으니 어떤 이는 나를 두고 '뭔가 하긴 하는 사람'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누가 등 떠밀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쉬움은 남는 날들이었다. 외출했는데 집에서 뭔가 빠뜨리고 나온 느낌이 드는 것처럼 자꾸 맘에 가시가 걸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상에 틈이 생길 때엔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계속 마음을 쓰다 보면, 친구 앞에서 주저하던 마음을 내놓았을 때처럼 내 마음속 가시 역시 툭 내뱉어질지도 모를 일이라.






그동안 내 브런치 서랍엔 머뭇거리는 글들이 가득했다. 언제 마무리할지는 몰라도 좋은 문장이 떠오르거나 재밌는 얘깃거리가 머릿속에 그려지면 브런치에 들어와 적어두었다. 아마 그 글들이 마음에 걸린 가시였겠지. 오늘 그 글들을 분리수거했고 이 글은 재활용 글 중 하나다.


오랜 아쉬움 끝에 남은 딱 하나,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여지없이 글쓰기라니. 그것만큼은 참 다행인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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