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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로 Nov 30. 2021

하늘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추석에 찍었던 달. 어쩐지 CCTV의 불빛 같다.



  어제는 할머니 오는 날이었다. 덕분에 일 년도 더 넘게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났다. 제한이 풀려 가능했던 일이다. 둘째는 낯을 가렸다. 둘째가 낯을 가린다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 많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낯을 가린다는 사실을 알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반면 인싸 기질이 다분한 첫째는 며칠 전부터 밤을 세며 D-day를 체크했다. 하룻밤 잤으니까 두 밤 남았고, 두 밤 잤으니까 한 밤 남았고 하면서.


  할머니는 우리 아빠와 같은 곳에 계신다. 그래서 할머니 오는 날엔 할머니를 먼저 본 다음 아빠를 만나고, 아빠 오는 날엔 아빠를 먼저 보고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어제도 그랬다. 할머니를 먼저 보러 가서 온 가족이 묵념을 한 채 자기만의 편지를 읽었다. 첫째 아이도 가족들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다음엔 아빠를 만났다. 올해 2월쯤 마지막으로 봤으니, 거의 열 달이 지난 셈이었다. 아빠에게 둘째 얼굴도 보여줬다. 첫 만남이었다. 첫째는 아빠의 이름을 읽었다. 옆에서 고모가 나더러 천재를 낳았다고 했다. 온 가족이 아빠 앞에서 웃었다. 이젠 그럴 수 있다. 다시 한번 눈을 감고 모두 각자의 편지를 마음으로 읽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물었다. 아까 첫째가 묵념할 때 뭐라고 기도했는지 아느냐고 말이다. 어른들을 따라서 눈만 감고 있는 줄 알았지 진짜 기도했으리라곤 생각지 못해서 전혀 모르겠다 답했더니, 남편이 답을 알려줬다.


  할머님께는 사랑한다 말하고, 장인어른께는 정말 정말 사랑한다고 했대.


  울컥했다. 누구 하나 지금 이 순간엔 눈을 감고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라고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묵념을 했을 뿐인데 아이는 알아차린 것이다. 아, 지금 이렇게 눈을 감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구나- 하고. 그리고 아이가 선택한 말은 사랑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번 본 적도 없는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다니.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아까 묵념할 때 뭐라고 기도했느냐고. 아이는 남편이 알려준 것과 똑같은 대답을 들려줬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엄마, 그거 알아? 하늘할아버지는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CCTV로 다 보고 있어~~


  눈물이 쏙 들어갔다. 하늘에서 CCTV로 보고 있다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첫째가 그렇게 말한 걸 보면 진짜 CCTV로 보고 있든, 맨눈으로 보고 있든. 아빠가 우리를 다 지켜보고 있긴 한가보다. 어쩐지 든든하고, 어쩐지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밤.


  바르게 살게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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